한국인 중에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자도 당연히 여주에서도 아주 촌구석에 속하는 능현리(명성황후 생가로 더 유명하다)라는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성장하였다. 지금도 콩밭 매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작은 손수레에 점심밥을 싣고 가서 밭을 매시다가 점심 때가 되면 손수레 그늘 밑에서 자고 있는 필자를 깨워서 맛있는(?) 들밥을 먹여주시곤 했다. 밥을 먹으려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반드시 밥 한 술을 떠서 주변에 흩뿌리며 여지없이 ‘고시레’라고 외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시면 여전히 손수레 그늘에 필자를 눕게 하시고 다시 밭을 매셨다. 형과 같이 손수레에서 잠을 자던 필자는 어머니 혼자 밭을 매시는 것이 미안해서 손에 호미를 들고 곁에 가서 어설픈 손놀림으로 밭을 매면서 여쭈어보았다. “엄마, 왜 밭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고시레’라고 외쳐요?” 하면 어머니께서 이렇게 답을 하신다(당시 ‘고시레’를 외치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예전에 고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있었어. 가족이 없었는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베풀어서 끼니를 이어갔는데, 이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할머니에게 음식을 주었던 사람들이 죽은 고씨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밥을 먹기 전 음식을 떠서 "고씨네!"하고 밭고랑에 던졌단다. 이렇게 "고씨네!"라고 부르던 것이 “고수레”로 바뀐 것이야.“
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도 늘 일을 하다가 먹을 것이 생기면 “고시레!”를 외치고 허공에 음식을 뿌렸다.
문헌상 ‘고수레’가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사설시조집 《해동가요》이다.(나무위키 참조)
萬里滄波에 가는 덧 도라오게 고스레고스레 所望 알게 하요쇼셔.
(만리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게 고수레고수레 소망 알게 하오소서)
라는 구절이다. 여기서는 ‘구수레 고수레’ 외치기만 할 뿐이지 음식을 허공에 뿌리지는 않는다. <규원사화揆園史話> 태시기(太始紀)에는
단군의 신하로 고실(高失)이 있었는데, 농사를 처음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그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해 음식을 먹기 전에 그 신의 이름을 부르며 던져 바쳤다.(檀君時 高失敎民稼穡 故農夫於田疇間 大午饁則必先除一匙 而念呼曰 高失禮 蓋不忘敎民稼穡之意也)
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고수레’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무당이 악귀를 쫓기 위해 밥을 물에 말아 ‘고시라’라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주변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고수레’ 이야기다.
고수레의 어근은 ‘곳’이라고 본다. ‘곳’은 신(神) 또는 존장자(尊長者)를 의미한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곳’은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귓것(鬼神 : 귓것 귀<훈몽자회>)’, ‘귓것 魅(ᄆᆡ: 新增類合)’, ‘항것(주인, 상전) : 두 사라미 진실로 네 항것가?<월인석보(月印釋譜)>’, ‘항거시 모르리라(<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 등에 나오는 ‘것’이 모두 상전이나 존장자를 의미하고 있음이 이를 말한다. 그러므로 ‘곳수레’는 신에게 먼저 음식을 드린다는 의미로 본다. 이 고수레는 지역에 따라 ‘고스레, 고시레, 고씨례, 고씨네, 꼬시레’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요즘 벌초하기에 모두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벌초하기 전에 술을 올리고 무덤 가에 술을 뿌리는 것도 고수레와 근원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본다.
벌초(금초 : 금초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이다)하러 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는 한데, 고속국도가 주차장이 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참으로 우리 대한국인은 대단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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