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따라갈 것인가? 전북의 길을 만들 것인가?"
최병관 젊은익산 다음만들기포럼 대표가 최근에 던진 화두이다. 전북자치도 행정부지사를 지냈던 그는 "정부도 광주 반도체 산단의 용수와 전력 등 기반시설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쯤 되면 전북도 냉정하게 질문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의 반도체 산업을 따라가며 협력기업 유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전북만의 산업을 만들어갈 것인가.
반도체 산업은 팹과 협력기업 간의 거리와 신속한 공급·기술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광주에 팹이 들어서고 가까운 무안에 대규모 소부장 국가산단까지 조성된다면 같은 기업을 놓고 전북이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반도체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일, 전력반도체나 첨단패키징처럼 전북의 기존 산업과 연결할 수 있는 분야는 적극적으로 선점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발전론에 천착해온 최병관 대표의 말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업경영에서 '고슴도치 전략(Hedgehog Strategy)'이란 게 있다. 쉽게 말하면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핵심 분야에 집중해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만드는 전략'을 뜻한다.
새만금이라는 거대한 산업공간을 가진 전북은 '전북만의 고슴도치 전략'을 펼치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질적이라는 분석이다.
AI와 피지컬AI, 미래모빌리티, 이차전지와 재생에너지, 농생명·바이오 등 전북이 이미 갖고 있거나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사실 전북은 소재와 케미컬, 센서, 소자 등 50여 개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전·후방까지 합산하면 대략 160여 개의 반도체 연관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전북의 강점을 살려 수도권과 남부권 반도체 산업의 '후방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검토해 볼만 하다는 주장이다.
전북이 우선 당장 수도권과 똑같이 반도체 공장인 팹을 만들려고 한다면 투자 규모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수도권이 설계·장비·팹·수요기업이고 △충청권이 메모리·반도체 제조 생태계 구축이라면 △전북은 소재·케미컬·센서·공정용 부품으로 치고 나갈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제언이다.
역할 분담은 피를 흘리는 경쟁을 피하면서 상생의 길을 열어준다. 전북의 강점은 화학산업과 산업용 제조기반을 반도체 공급망에 연결할 수 있는 길이다.
익산지역 반도체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북에서 소재를 만들고 수도권·충청권에서 반도체로 검증한다는 공간적 분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훨씬 경쟁력이 있다"며 "다만 '수요기업과의 연결'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치사슬별 분류에서 소재기업에 속하는 회사의 중간간부인 K씨는 "우리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술개발 자체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실제 반도체 제조기업의 인증을 받는 것"이라며 "좋은 소재를 개발한다해도 팹에서 사용해 주지 않으면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북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수·충권 팹'에 성능평가와 인증·양산을 거칠 수 있는 공급망 통로를 만들어주는 과제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정부도 소재와 부품과 장비 등 이른바 '소·부·장 업체'의 양산성능평가 사업 등 공급기업과 수요기업을 직접 연결하는 공급망 안정화를 지원하고 있다.
전북은 특히 반도체 소재·케미컬 산업에 특별한 강점을 갖고 있어 수요연계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는 전류를 제어하는 핵심 전자부품이다. 스마트폰과 자동차와 AI 등 첨단산업의 기반이며 수백 회 제조공장에 사용되는 소재와 케미컬의 품질이 반도체 성능과 수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최정호 전북자치도 익산시장은 "반도체 세정 공정은 축구장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 제거하는 수준의 초정밀 공정"이라며 "미세불순물 1개도 성능과 수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초고순도 소재·케미컬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북자치도 역시 △수도권(첨단소재 공급) △대전(K-센서 전주기 자립화) △남부권(소재·패키징·전력반도체 융합) 등과 연계해 전북의 소재·케미컬 및 센서 산업을 국가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고리로 육성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전북의 도전 앞에 놓여 있는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기업이 실제로 투자할 수 있는 '경제성'을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왜 수도권이나 충청권이 아니라 전북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줘야 한다.
단순한 부지 가격이나 보조금만으로는 장기적으로 기업을 붙잡기 어렵다. 전북이 고민해야 할 패키지는 부지와 전력과 용수, 폐수처리, 인력 등과 함께 수요기업 연결과 인증지원까지 세심하면서 포괄적이어야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케미컬 산업의 가장 큰 장애물인 '안전·환경·물류'를 해결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반도체 케미컬은 일반 소재기업을 육성하는 것과 다르다.
고순도 화학물질을 생산하려면 초순수, 폐수처리, 대기오염 관리, 유해화학물질 관리, 위험물 저장시설, 특수 배관, 안전관리 등이 동시에 필요하다.
따라서 반도체 케미컬 전용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며 전북에 현존하는 기업들의 애로를 풀어주는 등 집토끼 육성 방안에도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다 익산과 군산, 새만금, 완주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어 원료와 정제, 초고순도화, 제품화, 검사, 물류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설계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전북자치도의 한 관계자는 "우선 당장은 반도체 소재·케미컬 소부장 특화단지가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나아가 K-반도체 공급망의 심장인 전북 소재·케미컬 특화단지 조성의 비전을 갖고 2031년까지 기업 집적화와 현장 수요에 맞춘 반도체 소부장 전문인력 양성체계 구축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새만금에 1000조원을 담기 위해서는 전북만의 '고슴도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하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인가?
지금부터 전북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