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은 때로 한 시대의 기억이 됩니다.
일본 유학 중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고(故) 이수현 씨. 우리는 그를 ‘의인’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는 먼 나라 일본에서 갑자기 나타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곁에서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고, 거리를 걸으며 평범한 청춘의 시간을 보냈던 한 청년이었습니다.
의인 이수현은 1993년 고려대 서창캠퍼스(현 세종캠퍼스)에 입학하여 4학년 때 휴학하고 2000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가 다녔던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는 지금도 그의 뜻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매년 이수현 씨를 기리는 추모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이수현 씨를 추모했다는 소식의 글을 통해 접하면서 새삼 그의 삶을 떠올립니다.
특히 필자는 지난해 세종인문지리탐사대와 함께 조치원 왕성길을 걸었던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탐사 과정에서 우리는 이수현 씨가 대학 재학 시절 이곳 왕성길을 자주 찾았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제안들이 나왔습니다.
“이 길을 ‘의인 이수현 거리’로 명명하면 어떨까.”
참 따뜻한 제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성길은 단순한 오래된 골목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조치원의 역사와 오늘의 시간이 흐르는 길입니다.
그 길을 한때 한 청년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훗날 자신보다 타인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도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걸었던 길을 기억하고, 그가 머물렀던 공간을 기억하고, 그가 보여준 삶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살아 있는 추모일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로 힘차게 발돋움하고 있는 세종은 도시의 외형만 성장하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중요한 기관과 기능이 모이는 도시를 넘어, 사람의 가치와 기억, 공동체의 정신까지 함께 성장하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조치원 왕성길에 남아 있는 이수현 씨의 흔적은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를 던집니다.
행정수도 세종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국회, 정부기관, 산업, 교통, 도시 인프라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품격은 결국 그곳에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 이수현 거리’라는 작은 제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길을 걷는 청년들이 이수현씨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훌륭한 교육이고 추모이며 도시의 문화가 될 것입니다.
이수현 씨가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매년 이어지는 추모식에서, 그리고 그가 한때 걸었던 조치원의 길에서 말입니다.
올해도 그를 추모하며 다시 생각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남긴 가치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가치를 기억하고 이어갈 때, 한 사람의 삶은 시대를 넘어 우리 곁에 다시 살아납니다.
조치원 왕성길에서 시작된 작은 기억 하나가 훗날 세종을 대표하는 따뜻한 인문자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길에서 ‘의인 이수현’이라는 이름을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길을 걸었던 한 청년은 자신의 삶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
그 기억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도시.
사람의 삶을 기억하고,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행정수도 세종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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