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 사상가가 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여성으로, 스승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게 철학을 배우고,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에게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아렌트는 프랑스로 몸을 피했고, 1937년에는 나치 독일 국적마저 박탈당해 십수 년 동안 나라 없는 사람으로 떠돌았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가서야 겨우 발붙일 곳을 찾았고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시민이 되었다. 여권도, 나라도 없이 산 그 세월 동안 그는 국가라는 울타리 밖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라 없이 떠돈 세월은 그의 사상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벗이었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나치를 피해 도망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렌트는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유가 통째로 끊기는 것을 지켜본 셈이었다. 1951년에 펴낸 『전체주의의 기원』은 나치독일과 소련이라는,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두 체제가 어떻게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는지를 파헤친 책이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가 사람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거짓말을 끝없이 반복해서 사람들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가늠할 힘조차 잃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전체주의가 휘두르는 진짜 무기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평범함
아렌트를 세계적으로 이름나게 만든 사건은 따로 있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의 재판이었다. 아이히만은 나치독일에서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열차운행을 총괄한 인물이다. 수백만 명의 죽음에 관여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잔혹하고 기이한 괴물을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승진에 목을 매던 소심한 공무원처럼 보였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고, 상부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자신은 유대인을 미워한 적도 없고, 그저 맡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려 애썼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을 지켜보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남겼다. 악은 흔히 상상하듯 뿔 달린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 일을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성실히 따르기만 하는 태도, 그 생각 없음 자체가 거대한 악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렌트의 통찰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거센 반발을 샀다. 학살자를 두둔한다는 오해까지 받았고, 오랜 벗들조차 등을 돌렸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하려 한 것은 면죄부가 아니라 정반대였다. 생각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었다.
생각한다는 것의 무거움
아렌트는 이후 저작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하는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행위, 곧 사람들이 서로 다른 존재로서 광장에 나와 말과 몸으로 관계를 맺는 정치적 삶이었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소수의 지도자가 독점하는 자리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 모여 논쟁하고 판단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이며, 그 대화를 계속하는 사람만이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가늠할 수 있다고 아렌트는 믿었다.
만년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의 경험을 곱씹으며 사유와 판단에 관한 저술에 몰두하다가 197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평생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쁜 명령 앞에서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로봇처럼 순순히 따르는가, 그리고 그 순응을 멈추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2024년 겨울, 한국이 마주한 아렌트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에서는 느닷없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우리는 아렌트가 6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목격한 장면을 낯익게 다시 보았다.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지휘관들도, 체포명단을 작성한 실무자들도 하나같이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 말했다. 상부의 명령이었으니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그 화법, 이것이야말로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바로 그 논리다. 누군가는 그저 절차를 지켰을 뿐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위에서 시킨 일이라 말한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말투지만 결국 같은 문장으로 수렴한다.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아렌트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거대한 악은 광신자 몇 명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지시를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사유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곱씹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나쁜 명령을 거부할 용기, 부당한 지시 앞에서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생각하는 습관,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다음 계엄을, 다음 아이히만을 막는 길이다. 최근 시민들이 힘을 모아 펴낸 『반헌법행위자열전』도 결국 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누가 명령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명령 앞에서 생각하기를 멈추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아렌트가 강조했듯 생각하지 않는 죄는 재판정에서만 다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매일 스스로에게 평생 물어야 할 몫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