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⑨축제라는 양날의 검

먹거리 축제의 성과와 지속가능한 설계

봄부터 겨울까지 주말마다 전국 어딘가에서 축제가 열린다. 그 중심에는 거의 언제나 먹거리가 있다. 지역 특산물을 알리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축제는 분명 지역 미식의 강력한 무기다. 그런데 요즘 축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반가움과 함께 걱정이 든다. 너무 많고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축제는 지역을 살리는 명약이 될 수도 예산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오늘은 먹거리 축제가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오래가는 축제가 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축제의 시대, 그러나 지갑은 닫힌다

먼저 현실을 숫자로 보자.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전국의 지역축제는 1200개를 넘어섰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884개와 비교하면 5~6년 사이 약 37%가 늘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축제 포화 시대'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투어 축제를 만들고 예산을 키웠다.

문제는 그 성적표다. 방문객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정작 지역에 떨어지는 소비는 뒷걸음질 친다. 한국관광공사의 「2025 문화관광축제 빅데이터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축제 기간의 총 소비액은 2022년 약 4887억 원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2025년 약 4639억 원으로 소폭 반등했으나 여전히 정점에 못 미친다) 방문객 1인당 평균 소비액은 2022년 약 3만 9000원에서 2025년 약 3만 2000원으로 17%가량 줄었다. 사람은 더 많이 오는데 한 사람이 쓰는 돈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는 축제가 '얼마나 많이 왔나'라는 겉보기 숫자에 취해 정작 '무엇을 남겼나'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신호다. 몇만 명이 다녀갔다는 발표 뒤에 지역 상인과 농가의 손에 실제로 무엇이 쥐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 축제는 서로 닮아 가는가

축제가 많아진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많은 축제가 서로 놀랍도록 닮았다는 데 있다. 지역 고유의 자원에서 출발하기보다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베끼는 방식으로 기획되다 보니 어느 축제를 가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무대 위 트로트 공연, 연예인 초청, 그리고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그 획일적인 먹거리 부스가 늘어선 그 장터다.

지역 축제의 이름만 다를 뿐, 정작 그 지역이 아니면 볼 수 없고 먹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흐릿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방문객은 금세 피로해진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이 쌓이면 재방문율이 떨어지고 애써 키운 예산은 브랜드가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로 흩어진다. 차별성 없는 양적 팽창이 오히려 예산 낭비와 지역 정체성의 약화를 부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위 보고서에서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지역 주민의 참여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점은 축제가 지역의 것이 아니라 외부 대행사가 차려 놓은 무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축제는 강력한 무기다

그렇다고 축제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잘 설계된 먹거리 축제가 지역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분명히 있다.

논산 강경젓갈축제가 좋은 예다. 젓갈이라는 그 지역만의 확실한 특산물을 중심에 놓고 시식과 구매, 젓갈 담그기 체험을 엮어 낸 이 축제는 나흘 동안 수십만 명을 불러 모으며 젓갈과 지역 농산물의 실제 판매로 이어졌다. 김제 지평선축제는 드넓은 평야라는 그 지역만의 풍경과 전통 농경문화를 주제로 삼아 벼 베기와 쌀밥 짓기 같은 체험으로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만들어냈다.

이들 축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남을 베낀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원래 가진 특산물과 문화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축제가 지역의 진짜 자산 위에 세워질 때, 그것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역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브랜드가 된다.

▲ 충북 괴산군 청청환경 버섯축제에 모인 야생버섯. 그 지역의 자연이 곧 축제의 콘텐츠가 된다. ⓒ프레시안(문상윤)

'빵의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유행과 특색 사이

내가 사는 대전의 빵축제도 이 대목에서 좋은 이야깃거리다. 2025년 대전 빵축제는 이틀 동안 16만 명이 넘는 인파를 불러 모았고 성심당을 비롯해 지역 빵집 100곳이 넘게 참여했다. 참가 업체가 한 해 만에 80여 곳에서 100곳 이상으로 늘 만큼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이제 대전은 '빵의 도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성심당이라는 확실한 앵커, 그리고 그 곁의 수많은 동네 빵집이라는 생태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대전이 '빵의 도시'로 널리 불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빵' 하면 오히려 다른 도시들이 먼저 떠올랐다. 대표적인 곳이 군산의 이성당이다. 1910년대 일본식 화과자점에서 출발해 광복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이어 온 이성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자주 꼽히며 단팥빵과 야채빵을 앞세워 오래전부터 전국의 '빵순례객'을 불러 모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나폴레옹, 전주의 풍년제과, 부산의 비앤씨는 성심당·이성당과 더불어 흔히 '전국 5대 빵집'으로 거론되어 왔고 대구는 옥수수빵으로 유명한 삼송빵집(1957년)을 비롯해 1980년대까지 내로라하는 빵집이 즐비했던 '제빵의 도시'였다. 안동의 맘모스베이커리(1974년)는 특유의 맘모스빵과 크림치즈빵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요컨대 '빵'이라는 자산은 여러 도시에 저마다의 역사와 함께 흩어져 있었고 대전은 그중에서 성심당의 성장과 함께 '빵의 도시'라는 서사를 가장 성공적으로 완성해 낸 도시인 셈이다.

문제는 이 성공이 하나의 '유행'이 되면서부터다. 대전 빵축제가 화제가 되자 다른 도시들도 잇따라 빵을 내세운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올해 초 천안도 빵 축제를 선보였다. 이는 빵 축제가 어느 특정 도시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느 도시든 열 수 있는 주제임을 보여준다. 빵은 전국 어디에나 있고 빵집 없는 도시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빵이라는 같은 주제 위에서 자기만의 색과 컨셉을 지닌 축제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누구나 열 수 있는 주제일수록 무엇으로 다르게 채우느냐가 축제의 성패를 가른다. 색이 없으면 어느 도시의 빵 축제든 앞서 이야기한 획일적인 축제의 복제가 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빵'이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지역의 빵이 품은 고유한 역사와 맛을 축제에 얼마나 깊이 녹여 내느냐다. 남이 성공한 소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 안에 담긴 '우리만의 것'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유행 속에서 살아남는 축제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 잣대는 정작 대전의 빵축제 자신에게도 똑같이 겨눠져야 한다. 대전 빵축제가 지금까지 성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성공이 성심당을 비롯한 몇몇 유명해진 빵집의 힘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스타 빵집을 보러 온 인파만으로는 그 축제가 '유명한 빵집이 있는 도시의 장터'를 넘어 '대전이라는 도시 고유의 빵 문화를 경험하는 자리'로 올라서기 어렵다. 유명 빵집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강력한 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축제의 컨셉이 되지 못한다. 몇 곳의 이름값이 흔들리면 축제 전체가 흔들리는 취약함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대전 빵축제는 무엇을 컨셉으로 삼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이 '대전이 왜 빵의 도시가 되었는가'라는 이야기 속에 있다고 본다. 대전의 빵은 우연이 아니라 철도가 교차하는 길목에 밀가루가 모여들고 전쟁 이후 밀가루 음식 문화가 뿌리내린 역사 위에서 자랐다. 칼국수와 국수의 도시가 곧 빵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이 '밀의 서사'야말로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대전만의 컨셉이다. 여기에 앞서 발효와 제분의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 유명 빵집만이 아니라 작은 동네 빵집과 청년 제빵인이 함께 주인공이 되는 무대, 대전의 밀가루 음식(빵·칼국수·과자)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미식 코스를 얹는다면 축제는 비로소 '성심당을 보러 가는 곳'에서 '대전의 빵 문화를 맛보러 가는 곳'으로 확장될 수 있다. 스타에 기대는 축제와 도시의 이야기 위에 선 축제는 당장은 비슷해 보여도 오래갈수록 그 깊이가 갈린다.

축제를 다시 차리다

그렇다면 먹거리 축제를 명약 쪽으로 기울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흔한 처방을 넘어 음식을 다루는 자리에서 나올 만한 제안을 몇 가지 덧붙인다.

첫째, 축제의 먹거리를 '외주 장터'에서 '지역의 상'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지금의 축제 먹거리 부스는 상당수가 전국을 도는 이동 상인의 몫이고 그 지역 농가와 식당은 구경꾼이 되기 쉽다. 축제 먹거리의 일정 비율을 지역 생산자와 지역 음식점에 배정하고 지역 식재료를 쓴 메뉴에 인센티브를 주면 축제에서 쓴 돈이 지역에 남는다. 축제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려면 무대 위 공연보다 매대 위 음식이 먼저 지역의 것이어야 한다.

둘째, 특산물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앞서 든 강경의 젓갈이 그런 예다. 젓갈을 상에 올려 파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담그는 과정을 보여주고 지역 농산물을 진열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요리로 완성해 맛보게 한다. 발효가 익어 가는 과정, 제철 재료가 조리되는 순간 같은 음식의 '과정'을 콘텐츠로 삼으면 방문객은 구매를 넘어 그 지역 음식의 이야기를 몸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다른 축제와 구별되는 깊이를 만든다.

셋째, 축제를 지역 미식의 '실험실'로 쓰는 것이다. 지역 식재료로 새 메뉴를 만들어 축제에서 처음 선보이고 방문객의 반응을 살펴 다듬는다. 앞서 이야기한 향토음식의 재해석을 축제라는 무대에서 시험하면 축제가 끝난 뒤에도 남는 상품과 브랜드가 생긴다. 스쳐 가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미식 산업의 씨앗을 뿌리는 자리가 된다.

넷째, 놓치지 말아야 할 기본이 있다. 앞선 글들에서 되풀이한 위생과 정직한 가격이다. 수십만 명이 몰리는 축제장의 임시 매대는 식중독 위험이 크므로 온도 관리와 위생 점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축제라서 비싸다'는 바가지는 그 지역의 이름값 전체를 갉아먹으므로 표준 가격과 정직한 양이 지켜져야 한다. 화려한 하루의 성공보다 다시 찾고 싶은 신뢰가 축제를 오래가게 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결국 먹거리 축제의 성패는 '몇 명이 왔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가'로 판가름 난다. 지역의 특산물과 문화라는 진짜 자산에서 출발했는가? 그 돈이 지역 생산자와 상인에게 돌아갔는가?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지역에 브랜드와 상품과 이야기가 남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축제라야 예산을 쓸 가치가 있다.

축제는 분명 지역 미식의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남을 베낀 축제, 지역이 빠진 축제, 하루만 반짝이고 사라지는 축제는 그 칼날이 오히려 지역을 향한다. 반대로 그 지역만의 것에서 출발해 사람과 돈과 이야기를 지역에 남기는 축제는 해마다 지역의 이름을 새기는 든든한 자산이 된다. 어느 쪽의 칼을 쥘 것인가는 결국 축제를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차리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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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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