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헌법의 노동3권을 훼손하는 작심 발언을 내놓았다. 삼성전자 노조가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단체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투자 문제를 단체교섭에서 다룰 수 없도록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해당하는 지침들을 정리해 달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노동정책의 기조 변화를 뛰어 넘는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심층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구조적 병리, 즉 '법률가의 지배(rule of lawyers)'가 어떻게 노동을 배제하고 자본의 이익을 수호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장면이다.
이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 중 하나는, 그가 정치가 마인드가 아니라 법률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법률가 마인드란, 법률이 현실 세계의 반영이라는 점을 부정하고 법률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법률을 현실 변동의 결과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법률 변동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다.
법의 지배인가, 법률가의 지배인가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저서 <대타락>에서 서구 문명 쇠퇴의 원인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법률가의 지배'로 전락한 현상을 지목했다. 현대판 제사장 계급인 법률가 집단이 법에 대한 해석 권력을 독점하여, 지배엘리트의 입맛대로 현실을 재단하는 도구로 법률을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은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단체교섭의 대상과 단체행동의 범위를 확대한 법률이다. 경영상 결정이라도 근로 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면 교섭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그러나 법률가인 이 대통령은 행정부의 '해석 지침'이라는 편법을 통해 법률의 실질적 효력을 훼손하려 한다.
이것은 '법의 지배'가 아니다. 입법부가 확정한 규범을 행정부 수반이 관계 부처의 법리 해석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권력분립을 훼손하는 명백한 '법률가의 지배'다. 법률가적 언어와 논리로 포장된 이 방식은 '법을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다(rule by law)'는 점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교묘하고 위험하다.
자본의 코드를 작성하는 '자본의 건축가'
법률가의 지배는 왜 하필 노동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그 해답은 카트리나 피스토르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의 저작 <자본의 코드>에 있다. 피스토르는 자본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들이 사법(私法) 제도를 이용해 부동산과 주식 등 특정 자산에 특권을 '코딩(coding)'함으로써 비로소 자본이 된다고 갈파했다. 이러한 코딩 작업을 수행하는 법률가들은 불평등을 낳는 자본의 건축가들이다.
삼성전자의 수백조 원 투자가 자본의 입장에서 예측 가능하게 실행되고 그 이익이 주주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려면, 투자 결정에 대한 노동의 개입을 차단하는 '법적 확실성'을 보장받는 게 중요하다. 노조가 공장 신설에 따른 근무지 변경이나 정주 여건, 성과급과 고용 안정 등 투자 문제를 교섭 의제로 삼는 것은 불확실성을 키워 자본의 이익을 위협한다.
이 대통령이 행정 지침으로 쟁의 대상을 제한하려는 것은, 바로 이 불확실성을 국가권력이 제거하여 '자본의 코드'를 보호하려는 행위다. 법률가 출신의 행정 수반이 국가 권력의 최정점에서 '자본의 코딩'을 입력하는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ILO 기본협약과의 정면 충돌
이러한 '자본의 코드'는 필연적으로 국제 노동 기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98호(단체교섭권)의 핵심은,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국가의 개입 없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할 권리를 보장·촉진하는데 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는 단체교섭의 대상과 범위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가 법률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장 이전과 신규 투자, 성과급 배분과 고용안정 등 노동자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경영권'이라는 이유로 교섭 의제에서 배제하는 것은 협약 위반의 소지가 크다.
윤석열-이재명 정권의 구조적 연속성
우리는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법률가의 지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윤석열 정권과 이재명 정권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수부 검사 윤석열은 형법을 무기 삼아 노동조합을 반체제 세력으로 매도했다. 인권 변호사 이재명은 시행령을 무기 삼아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단체교섭·단체행동을 행정 지침의 틀 안에 가두려 한다. 한쪽은 법을 억압의 도구로, 다른 한쪽은 관리와 통제의 도구로 사용한다. 두 사례는 법률가 엘리트들이 법률에 대한 해석 권력을 독점하여 노동을 배제하고 자본의 이익을 관철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외피는 이러한 구조적 병리를 은폐하는 장식에 불과하다. 한국의 법률가들은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법을 코딩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의 실질적 권리를 형해화시켜 왔다.
노동 문제에서 이 대통령의 최대 리스크는 그가 진보냐 보수냐에 있지 않다. 그의 리스크는 노동 문제를 법적 관념으로 재단하고, 헌법과 개정 노조법 취지에 어긋나는 법리 해석을 통해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현실을 창조하려는 '법률가적 사고방식'에 있다. 법이 자본을 위해 코딩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자본의 코드'에 맞서 노동의 권리를 코딩하는 힘은 '강남좌파' 진보적 법률가들의 시혜적인 법률 해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 시기 '노동의 코드' 과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있으며, 이는 국부(national wealth)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역사적으로 투쟁을 통해 쟁취한 자신들의 권리인 단체결성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온전히 향유할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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