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강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 라면과 과자, 탄산음료, 소시지를 싸잡아 '초가공식품이 수명을 갉아먹는다'는 제목이 쏟아진다. 한편에서는 '가공식품 다 그런 거지 유난이다'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겁을 주는 쪽과 대수롭지 않다는 쪽 사이에서 정작 소비자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식품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주제야말로 '과장도 방심도 금물'인 균형이 가장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실체를 차분히 따져 본다.
'초가공식품'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자. 초가공식품은 브라질 연구진이 제안한 '노바(NOVA)'라는 분류법에서 나온 말이다. 이 분류는 식품을 성분이 아니라 '가공의 정도'에 따라 네 무리로 나눈다. 1군은 채소·과일·고기처럼 가공하지 않았거나 최소한만 손댄 것, 2군은 기름·설탕·소금 같은 조리용 재료, 3군은 치즈·통조림·갓 구운 빵처럼 비교적 단순하게 가공한 식품이다.
문제의 4군, 초가공식품은 여기서 한참 더 나아간 것을 가리킨다. 공장에서 여러 공정을 거치고 가정 부엌에서는 잘 쓰지 않는 성분인 유화제, 향미증진제, 색소,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며 대개 값싸고 오래가고 맛이 강하게 설계된 식품이다. 탄산음료, 과자, 라면, 가공육, 달콤한 시리얼 등이 여기에 든다. 요컨대 초가공식품이란 '원재료의 원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산업적으로 고도로 설계된 식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가 말하는 것, 무시할 수 없는 신호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 몸에 나쁠까. 여기서부터는 과학의 언어로 신중히 봐야 한다.
2024년, 그동안 쌓인 여러 메타분석을 한데 모아 다시 분석한 대규모 종합 검토(이른바 '엄브렐라 리뷰')가 의학저널 『BMJ』에 실렸다(Lane 등, 2024). 45개의 통합분석, 약 990만 명의 자료를 살핀 이 연구의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전체 사망, 심혈관질환 사망, 불안 등 흔한 정신적 어려움, 과체중과 비만, 제2형 당뇨 등 32개(살펴본 지표의 약 71%) 항목에서 위험이 높아지는 쪽으로 연관성이 나타났다.
특히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제2형 당뇨에 대해서는 근거가 가장 높은 등급인 '설득력 있는(convincing)' 수준으로 평가됐고 나머지 상당수는 그보다 낮은 등급이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신호다.
다만 한 가지를 꼭 짚어야 한다. 이런 연구들의 대부분은 '많이 먹는 사람'과 '적게 먹는 사람'을 비교한 관찰연구다. 관찰연구는 '연관'을 보여줄 뿐 '원인'을 확정하지 못한다.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사람은 대체로 운동을 덜 하거나 소득·생활습관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요인들이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연관이 강하다는 것과 그것이 원인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가공' 자체가 범인일까
여기서 이 주제의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나쁜 것이 '가공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일까 아니면 초가공식품이 흔히 함께 지니는 다른 특성일까.
이를 실제로 실험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진이 성인 20명을 2주씩 입원시켜 초가공식 식단과 비가공식 식단을 번갈아 마음껏 먹게 한 무작위 대조 실험이다(Hall 등, 2019). 두 식단은 제시한 열량은 물론 당·지방·나트륨·섬유까지 비슷하게 맞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초가공식 식단일 때 하루 평균 약 508㎉를 더 먹었고 2주 만에 체중이 약 0.9㎏ 늘었다(비가공식일 때는 거의 같은 만큼 빠졌다). '가공'이 과식을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준 강력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중요한 반론이 뒤따랐다. 초가공식은 대체로 더 부드러워 씹는 수고가 덜하고 그래서 먹는 속도가 빨랐으며 자극적으로 맛있게 설계돼 있었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이 더 먹은 진짜 이유가 '가공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빨리·많이 먹게 만드는 물성과 기호성 같은 구체적 특성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실험을 이끈 과학자 역시 '가공'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이런 특성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있다는 점이다.
이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대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초가공식품'이라는 이름표에 겁먹기보다 그 안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공=악'이라는 단순함의 함정
노바 분류(식품을 가공 정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누는 NOVA 식품분류체계)는 유용한 렌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가공 정도' 하나로 줄을 세우다 보니 성격이 전혀 다른 식품이 같은 칸에 묶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통조림에 든 콩, 두유, 통밀빵, 심지어 우리네 김치와 된장도 넓게 보면 '가공'의 산물이다. 특히 발효는 인류가 수천 년간 식품을 더 안전하고 이롭게 만들어 온 훌륭한 가공 기술이다. '가공했으니 나쁘다'는 도식으로 가면 몸에 좋은 발효식품과 설탕 덩어리 탄산음료가 자칫 같은 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천연'이라는 말이 늘 안전을 뜻하지도 않는다. 결국 가공이라는 단어 하나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공했나'가 아니라 '그래서 무엇이 들었고, 어떻게 먹게 되나'다.
공포도 방심도 아닌, 실용의 자리
그러니 답은 양극단 사이에 있다. '초가공식품은 독'이라는 공포도 '다 똑같은 음식'이라는 방심도 옳지 않다.
현실적인 태도는 이렇다. 초가공식품이 밥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조금씩 줄이되 어쩌다 먹는 과자 한 봉지를 죄악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핵심은 방향이다. 라면·탄산음료·달콤한 간식이 끼니의 중심이 되지 않게 하고 그 자리를 통곡물·채소·콩·생선처럼 원형에 가까운 최소가공식품으로 채워 가는 것이다. 무언가를 '완전히 끊는' 다짐보다 전체 식탁의 균형을 조금씩 옮기는 편이 오래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판단의 근거는 뒷면의 영양성분표와 원재료명에 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싶다. 초가공식품은 대개 값싸고 편하고 어디에나 있어서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대게 된다. 그래서 정책의 몫이 크다. 알기 쉬운 영양표시, 어린이를 겨냥한 광고·판매에 대한 관리, 그리고 학교와 공공급식에서 신선하고 균형 잡힌 먹거리를 늘리는 일이 그것이다.
좋은 먹거리가 '의지가 강한 사람만의 것'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이 논쟁이 정책에 던지는 진짜 숙제다. 다음 편에서는 이번 글에서 잠깐 등장한 '몸에 이로운 가공', 즉 발효의 세계로 들어가 '김치가 과학인 이유'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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