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5월 20일 '인문사회 대학기초연구소 지원 사업' 신규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학교당 연40억 원을 5년간 지원하며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가 선정됐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통해 지역 인문사회 연구생태계 복원과 지역정주형 연구인력 양성 두 가지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는 별개 사업이라고 하니, 필자도 서울대 3개 만들기 아니냐고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업이 학술생태계 유지와 학술노동자 재생산을 목표로 잡은 것은 매우 적절하다. 여기에 '지역'이라는 키워드까지 결합시켰다. 지역의 학술생태계와 지역의 연구자를 지향하는 셈이다. '학술생태계+연구자재생산+지역균형' 모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이 사업의 내재적 목표인 이 세 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평가하고 전망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업은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위기라는 현재 맥락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물론 낫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인문사회 학과들은 사라지고 있는데
인문사회 생태계가 붕괴된 것은 더 이상 논증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학 인문사회 학문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학과들'의 구조조정이다. 이미 20여 년간 많은 인문사회 학과들이 다른 과에 통합되거나 폐과됐다(물론 자연과학·기초학문 학과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는 최근의 학령인구 감소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지방대 위기' 담론이 비등하면서 오히려 "지방대가 위기에 처했으니, 인문사회학과를 더욱 없애자"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 위기 담론의 오남용이 이루어져, 이미 사라졌는데 더 사라질 구실이 된 셈이다. 꾸역꾸역 버티던 학과들마저 이 기간에 더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의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폐과 사태다.
여기서 "과가 없어지는 것과 인문사회 생태계 붕괴가 꼭 연관성이 있나?"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물론이다. 학과가 없어지거나 타과에 흡수되면 학과의 전임교원 충원이 중지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학과 교수들이 해당 학문 생산의 중요한 축이다. 전임교원을 뽑을 때 논문의 양(+질)으로 뽑는 것이 그동안 표준적인 기준으로 정착했다. 따라서 과가 흡수되거나 없어지면 전임교수 자리가 줄어들고, 학문생산 인력도 줄어든다. 예를 들어 1999~2024년 사이 독일어 관련 학과들은 69개에서 30개로 줄어들었으며 전임교원은 223명에서 109명으로 반토막 났다. 철학과는 74개에서 47개로 줄었으며, 전임교원은 275명에서 208명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연구재단은 각종 사업에 '학문후속 세대'라는 명칭을 쓰면서, 박사들이 앞으로 전임교수가 될 것임을 '전제'하고 사업들을 설계하고 있다. 인문사회학술교수A·B 사업은 과도기 사업 같다. 연 4000만 원씩 5년으로 구상된 이 사업은 국가박사제로 확실히 나아가지는 못한 형태로서, 막연하게 교수임용 '사다리'로의 믿음을 담는 듯하다("교수되기 전까지 지원해줄게. 5년이면 되겠지?").
전임교수로 가는 사다리는 거의 치워졌다. 예전에 베이비부머들이 2020년 접어들며 대규모로 정년퇴임하면 교수 자리가 많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폐과라는 현실 속에서, 특히 지방대 위기 국면에서 교수TO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베이비부머의 퇴임과 학문후속세대의 취업은 무관해지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다. 학과가 없어지는 대신 '교양대학'에도 전임교원들이 있지 않느냐고. 실제로 인문사회 박사들은 교양대학에서 각종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전임교원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정확한 통계를 내봐야하겠지만, 교양대학의 전임교원들은 대체로 비정년트랙인 경우가 많다(제대로 된 통계가 없는 이유는 교육부가 비정년트랙 실태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과다한 책임시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학술 생산을 온전히 맡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학과도 없애고, 전임교원을 뽑지 않거나 뽑더라도 교양대학의 비정년트랙뿐이라면, "대학에 인문사회 학술생태계를 맡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대학기초연구소 사업은 그동안 여기저기서 제기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학 '외부'의 학술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으며, 또 다시 대학만이 학문을 한다는 전제를 반복한다. 대학들이 기초 학문들을 대학 외부로 밀어내고 있는데, 대학 내부로 –그게 아무리 국립거점대학이라도- 학술실천을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존 대학연구소 사업들의 재탕
이처럼 인문사회 대학기초연구소의 가장 큰 한계는 '대학'만을 연구거점으로 삼는 것이다. 5년이면 학교당 200억이다. 하지만 액수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학과를 앞으로도 없앨 대학들이 연구생태계와 연구자 재생산을 능동적으로 지속하려 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소 사업들의 '그랜드' 버전인 이 대학기초연구소 사업 역시 기존 연구소 사업의 한계를 넘어서긴 어려울 듯하다. 교육부와 연구재단은 그동안 인문사회 연구자들과 대학들을 위해 HK사업, SSK사업, 인문사회연구소 사업 등 많은 집단연구 사업을 시행해왔다. 대학은 자체 인프라와 연구실을 제공하고, 교육부는 연구소 전임연구원과 연구교수들의 임금과 연구비를 지원했다. 대학은 연구업적을 가져갔다. 교육부는 아마도 학문후속세대 및 연구성과를 창출했다. 그러다 보니 고용관계가 애매해서(물론 법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대학이 고용주다. 하지만 연구재단이 급여를 준다), 연구자들은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 연구책임자의 갑질 문제라든가, 정년이 보장되는 HK교수가 되기 위한 암투와 경쟁도 벌어졌다.
가느다란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한 연구자들은 사업이 '종료'되면, 다시 말해 다음 회기 사업에 미선정 되면 '실직자'가 되곤 했다. 이번 사업은 기존 집단연구 사업인 6년, 7년, 10년보다도 더 짧은 5년짜리다. 따라서 연구소 사업들의 한계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잠깐 나은 일자리, 정주는 불가능
특이한 것은 이 사업의 전임연구자가 적어도 6000만 원 이상의 인건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전임연구인력은 4000만 원 이상을 받기 힘들다는 점에서 나아진 셈이다. 그런데 불과 75명 정도만 일자리를 얻게 된다. 선발 인력이 너무 적다. 물론 지금의 인문사회 박사들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을 것이다. 6000만 원씩 5년이라라도 이 사업 지원자는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지방에 내려가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지방에 일단 내려갈 것이다. 그런데 사업의 목표인 지방 정주는 불가능해 보인다. 최소한 10년 이상은 되어야 '정주'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의 목적이 지역 인재의 정주도 아니고 '수도권 인재'까지 내려오도록 유도하는 것인데, 5년짜리로 설계한 것은 사업 목적과 실행방식의 현격한 괴리 아닌가?
누가 정주할 수 있을까? 5년 일하고 수도권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대학 연구소 사업의 그동안의 '곤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경북대, 전북대, 전남대에 지원하되 큰 기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철학 한 분야만 따져도 75명으로는 부족할 텐데, 인문사회 전학과를 대상으로 박사 75명만 선발하는 것은, 후속연구자의 일자리든 정주든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많은 지방대학 교수들처럼 지방과 수도권을 주말에 왔다 갔다 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 사업은 인문사회 분야에서 처음으로 '대학 단위'를 통으로 지원한다. 기존에는 대학 내 연구소들을 개별적으로 지원했다. 대학 차원의 통합적인 연구 플랫폼을 제대로 구축할 수만 있다면 –이를테면 융합연구가 대표적이겠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개별 연구소들을 통합하는 플랫폼은, 연구소의 총책임자가 하위 연구소들을 '통제'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구예산 배분이 대형학과나 실용적 학과 위주로 쏠릴 가능성이 보인다. 이와 관련해 '기초 학문' 문제를 검토해 보자.
'기초 인문사회' 연구소가 아니라, '대학기초' 연구소라니
마지막으로 이 사업과 '기초' 인문사회 학술의 관련성에 대해 지적하겠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나는 1인 연구실을 제공하는 '기초 인문사회연구원'을 5곳 이상의 비수도권 지역에 설치하고, 인문사회학술교수A 수혜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려 선정자들을 내려 보내자고 주장해 왔다.
이미 개인과제가 기반인 '인문사회학술교수A' 사업은 연4000만 원씩 5년이지만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다. 나의 방안은 기존에 이미 실행하고 있는 사업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을 5곳 이상의 지역과 시스템에 모아서 네트워크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연구자 클러스터). 여러 분과의 연구자가 물리적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연구하므로 융합 연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과제 중심의 A사업이 공동연구가 주는 성장의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 인문사회연구원'은 대학 외부에서 대학의 풍랑과 독립적으로 학술생태계와 연구자의 생존 둘 다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저비용이지만 지역균형에 부합하는 방안이라고 자부한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시장 논리에 맡겨서는 사라지거나 쇠퇴할 것이 분명한 '기초' 학문들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문사회 학문 중에도 기초학문이라기보다는 실용학문적 성격을 가진 분과가 많다. 우선권을 자연과학의 물리, 화학처럼 '기초' 학문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기초 인문사회연구원'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다.
이번 사업은 '기초 인문사회'가 아니라 '대학 기초'다. 기초 학문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대학의 기초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사업명 자체가 너무 애매하다. 그냥 인문사회 학문들을 뭉뚱그려 지원하는 사업이라면 기존 연구소 사업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폐과나 구조조정과 무관한, 학과가 튼튼한 분야 학문들을 굳이 추가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적어도 폐과 위기 속에서도 한국사회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학문들을 선별하여 사업을 재편해야 할 것이다.
시장성에는 밀리지만 학문적으로 필수적인 분야들이 많다. AI 도입은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결국 근본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그것이 기초학문의 본령이다. 국립거점대학 연구소라면 '기초' 인문사회 학문을 지원하겠다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졌으면 싶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인문사회 대학기초연구소 사업은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위기라는 현재의 맥락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물론 낫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위기의 구조적 원인—교수직의 카스트화, 비정년/비전임 교수 양산, 수도권 집중, 이공계 중심 R&D 예산 배분—을 전혀 건드리지 않으며, 기존 연구소 사업들의 한계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방향도 지금은 '지역 성장엔진'(소위 앵커체제)가 핵심 선정 기준이 돼, 애초의 담론과 절연하고 매우 실용적인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지역'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를 빌려 시장화와 기업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니 과연 이 사업 이후에도 기초 인문사회 학문에 대한 추가적 지원이 이어질지 정말 불투명해 보인다. 확실한 것은 3개 대학, 75명 규모의 사업이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와 연구자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수도권과 대학 외부에 '기초 인문사회연구원'을 설치해, 현재 A 유형만 약 1,900명 수준인 인문사회학술교수를 5,000명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늘려야(사실상의 국가박사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와 연구자 재생산이 현상유지라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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