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대신 촘촘함을, 광기 대신 성찰을… 독일 교통의 길을 걸으며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독일 기행 ② 프랑크푸르트 트램을 타고, 독일 철로를 따라 뉘른베르크까지

이른 아침임에도 해는 높게 떠 있었다. 숙소인 갈루스바트(Galluswarte)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는 방법은 광역전철인 S반을 타거나 트램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S반 갈루스바트역에서 중앙역까지는 한 정거장이라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 트램을 타기로 했다.

정류장에는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이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트램 정류장은 한국 대도시의 버스 정류장과 비슷한 구조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고 그 아래 의자들이 설치돼 있다. 투명 벽에는 광고가 붙어 있고 LED 전광판에는 트램 번호와 행선지, 도착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표를 살 수 있는 티켓 발매기가 있는 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트램은 선로 위를 달리는 까닭에 정류장에서 인도 쪽으로 차량을 붙일 수가 없다. 차선이 많은 도로인 경우 한국 사람의 눈에는 트램이 도로 한복판에 무단 정차한 것처럼 보인다. 정류장의 승객들은 자연스럽게 차선을 횡단해 트램에 올라탄다. 이때 정류장에 가까운 차선을 운행하는 자동차들은 트램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까지 정차하고 있다. 트램과 함께 달리는 자동차들은 잘 짜여 진 각본처럼 속도를 높이지도 않고 트램 승객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트램들은 굴절형 연결부위를 가진 3량으로 구성돼 있었다. 가운데 차량 지붕에는 전차선에서 동력을 전달받기 위한 팬터그래프가 설치돼 있다. 한 편성이 3량인 트램 덕분에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배차간격이 대략 10분인데, 노선에 따라 중복되는 정류장이 있기에 승객들이 체감하는 배차간격은 5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교통카드를 찍거나 운전기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기에 승하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출근길 시민들과 더불어 15분 정도를 달리니 중앙역이 나타났다. 예상대로 많은 승객이 중앙역에서 내렸다.

▲출근길 트램을 이용하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 ⓒ박흥수

한국에서 트램은 오래전에 퇴출당했고 최근에서야 일부 지차체가 도입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트램은 시내 공공교통의 필수 인프라로 기능한다. 한국에서 트램을 몰아낸 가장 큰 요인은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제였다. 멀쩡한 차선을 점유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트램은 도로 교통의 커다란 방해 요소였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시기 이후 폭발한 자동차등록 대수는 트램이 들어올 여지를 없앴다.

독일의 도시를 걷다 보면,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서조차 한국에서 보는 심각한 교통정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철도와 트램, 버스와 같은 공공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일수록 도로 교통 환경도 좋다. 도시 교통 환경은 인프라만이 아니고 정부 교통 정책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드러나지 않게 자동차를 우대, 또는 장려하거나 최소한 묵인하는 정책이 시행되는 한 공공교통 환경은 나아질 수 없다. 모달시프트, 즉 화석연료 대량 소비 교통 체제에서 친환경 교통으로의 전환이라는 대전제가 교통 정책의 기초가 될 때 교통환경은 한 차원 높게 변화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독일 중부 철도 허브답게 이른 아침부터 이용객들로 붐볐다. 중앙역은 철도가 이 역에서 끝나는 종단형 구조로 돼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열차는 역에 정차한 후 승객이 내리고 타면 진행 방향을 반대로 바꿔서 나가야 한다. 종단형 역은 이용자가 지하도나 육교를 이용하지 않고 역의 모든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포크의 날이 목에서 각 날로 분리되듯 승강장이 연결돼 있다. 승객들은 이 포크의 목 같은 곳에 들어선 음식 판매대에서 버거나 샌드위치 커피 같은 먹을거리를 사서 승강장으로 향한다.

독일의 열차 이용 환경이 한국과 다른 점은 철도 요금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독일 철도는 출발이 임박할수록 열차 요금이 비싸진다. 또 같은 구간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 운행되는 열차 요금이 비싸다. 이날 이용한 열차표도 한국에서 미리 예매했다.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열차 티켓은 기본적으로 좌석 지정이 돼 있지 않다. 그만큼 좌석 공급에 여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선호하는 좌석이 있거나 승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 5.5유로를 더 지불하고 좌석을 지정할 수 있다.

▲ICE고속열차 통로쪽 좌석 옆 LED로 예약된 좌석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표시하고 있다. ⓒ박흥수

내가 예약한 열차는 오전 7시 57분, 프랑크푸르트발 뮌헨행 ICE525 고속열차였다. 목적지인 뉘른베르크까지는 2시간이 소요된다. 승강장을 걸어가며 DB(독일철도공사)앱을 열어 좌석 상황을 살피니 빈자리가 몇 개 보이지 않았다. 바로 좌석 지정을 하니 5.5유로가 빠져나갔다는 알림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

여러 나라 철도운영사의 앱을 사용해 본 경험에 비춰보아 DB앱은 직관성과 이용 편의성에서 최상위급이 아닐까 생각했다. 열차에 올라 지정된 좌석을 찾았다. 일부 구형 고속열차 객차를 제외하고는 좌석 옆에 작은 LED창이 있고 이곳에 좌석을 지정한 승객의 행선지가 표시된다. 좌석 지정을 하지 않은 승객들은 행선지 대신 비었다는 표시가 된 좌석을 이용하면 된다.

정시에 출발한 열차는 마인강을 넘어 시내를 빠져나갔다. 고속열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거리를 시속 130킬로미터 내외로 달렸다.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를 냈다. 한국에서는 높은 속도를 찬미하고 속도가 곧 철도 기술의 모든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네트워크라는 철도의 특성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여러 요소가 잘 융합돼야 한다. 현대철도에서 속도는 철도의 경쟁력을 높인 중요한 요소이지만 속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종점 간의 시간 단축을 위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요 도시를 배제하거나 시민 생활 환경 외곽에 역을 설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철도 발전의 목적은 단순한 속도 향상과 기술 역량 고도화가 아니다. 도로 중심이었던 교통체계를 철도로 전환하고, 가급적 항공을 철도로 대체해 갈 수 있는 계획 속에 고속화와 기술 고도화가 기여해야 한다. 궤도 인프라를 확대하면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가 상호 보완하며 촘촘히 도시와 지역을 이어야 한다.

열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독일 중남부의 평원은 눈을 평안하게 했다. 풍경은 한 편의 영화처럼 열차 창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투영됐다. 철도에 관한 인문 고전인 <철도여행의 역사>에서 볼프강쉬벨부시는 철도여행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여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쉬벨부시는 도보나 기껏해야 마차를 타던 괴테 시대의 여행자들에게 행로 안에 속해 있던 냄새, 소음, 공감각 일체는 더 이상 철도 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단조로운 풍경이 열차로 인해 처음으로 매혹적인 시점에 놓이게 됐다는 쉬벨부시의 말을 긍정하며 창밖 풍경을 즐겼다.

▲복원 공사중인 옛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콜레세움안에서 독일 고등학생들이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박흥수

뉘른베르크 중앙역 승강장에 내리자마자 역사 안의 티켓 발매기로 가서 10.6유로짜리 시내 교통 1일권을 끊고 다시 S반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S반 2호선이나 3호선을 타고 세 정거장 5분 거리에 뉘른베르크에서의 첫 방문지 두첸트타히이(Dutzendteich)가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나 공원을 끼고 있는 두첸트타히이 역은 조용했다. 하차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두첸트는 12를 뜻하는 말이고 타이히는 연못을 의미한다. 아마도 12개의 연못이 있거나 있었던 동네였을 것 같다. 구글 지도 앱을 펴고 목적지를 검색하니 도보 4분으로 표시됐다. 지도 앱을 따라 걷다가 연못을 만났다. 사실 연못이라기보다는 호수처럼 보이는 크기였다. 호숫가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이 가끔 스쳐 지나갔다.

뉘른베르크에서는 1927년부터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1923년 1월 뮌헨에서 처음 열린 나치 전당대회는 11월 뮌헨 맥주 홀에서 열린 폭동 사태로 나치가 불법화되고 히틀러가 구속되면서 중단됐다. 이 사태는 히틀러를 독일 전국구 정치 스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1926년 바이마르에서 나치당 재건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 이후 1927년부터는 뉘른베르크에서 열린다.

호숫가 한쪽에는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나치 전당대회 기록관(Documentation Center Nazi Party Rally Grounds)이 있고 기록관 뒤쪽으로는 전당대회 장소인 콜로세움이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떠 만든 두첸트타히이의 콜로세움은 재개관을 위한 보수 공사가 한 창이었다. 다행히 공사 현장 한쪽에 방문객을 위한 공간을 열어놓아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현장학습을 나온 고등학생들이 인솔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과 100년도 안 된 과거에 그들의 증조 할아버지뻘 사람들이 벌인 괴이한 행적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나치 전당 대회장 콜로세움 외관 ⓒ박흥수

나치는 전당대회를 대규모 군중집회로 기획했다. 괴벨스는 프로파간다의 달인답게 전당대회를 블록버스터 쇼로 기획했다. 나치를 상징하는 거대한 하켄크로이츠 깃발들이 휘날리고 매스게임이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군중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공간에서 나치는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찬양했다.

모든 과정은 영상으로 촬영됐고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영화 열풍을 타고 전당대회 장면은 전국에서 상영됐다. 괴벨스에 의해 초빙된 영화감독 레니 니펜슈탈은 1933년 <신념의 승리>, 1935년 <의지의 승리>를 제작해 선전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신념에 찬 군중 무리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독일 전역은 민족주의의 용광로가 됐다.

전당대회장을 뒤로 하고 호숫가를 따라 걸어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나치의 거대 군중집회가 실제로 진행된 장소인 체펠린 비행장이다. 체펠린은 1900년대 초기에 유럽에서 반짝 부흥했던 경식 비행선(rigid airship)을 말하는 보통명사이다.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남작(Zeppelin, Ferdinand Graf von)은 비행선에 매료돼 회사를 세우고 비행선 제작에 몰두했다. 백작이 된 체펠린은 1900년 자신이 만든 비행선으로 하늘을 난 뒤부터 비행선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항공산업은 비행선과 비행기의 두 갈래로 발전해 나갔다. 이때만 해도 꾸준히 발전한 비행선이 비행기보다 더 전도유망해 보였다고 한다.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를 쓴 기욤 드 시옹(Guillaume de Syon)은 경식 비행선은 기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집단적 기억에 큰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다. 이 꿈은 1900년대 거대한 비행체로 사람들 앞에 구현됐다.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주입해 강철 골격을 가진 구조물을 하늘로 띄우기 위해서는 거대한 공기주머니가 필요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선을 본 사람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알맞은 기계장치였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비행선의 이런 특징을 놓치지 않았다. 1933년 '히틀러시대'를 축복하기 위해 열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로 체펠린이 등장했던 장면을 묘사한 내용을 보자.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비행선은 독일 젊은이들 머리 위에서 장엄하게 비행했다. 꼬리 날개에서 하켄크로이츠 문양이 빛났다. 광란에 가까운 환호가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늘의 거인을 보고 10만 명이 넘는 목소리가 하나의 기쁨과 자부심을 표현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뉘른베르크를 은빛으로 물들이며 체펠린은 천천히 유영했다."(<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중)

▲체펠린 비행장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 군중집회장에서 벌어진 매스게임 장면 ⓒShutterstock

호수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광장 입구에 들어서니 체펠린 관람석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옛날의 위엄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식 관람석의 콘크리트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마모된 상태로 조각들이 떨어져나왔다. 관람석 군데군데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모여 앉아 쉬고 있었다. 체펠린 관람석의 구조는 고대 로마 신전 같은 중앙관람석 양쪽으로 계단식 관람석이 뻗어 있다. 중앙관람석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과 비계로 가려져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둘러싼 외피를 뚫고 나오는 구조물의 기운은 사방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군중을 모으기 좋은 구조이자 간결하고 단순한 배치는 마치 오래전 고대에서 벌어진 쇼를 구경하는 공간처럼 보이는가 하면 SF 영화의 대규모 군중 신이 등장하는 장소 같기도 하다. 역사는 회오리처럼 반복된다고 한다. 다가올 과거와 오래된 미래의 느낌이 겹친 듯한 공간이 체펠린 비행장이다.

대형 하켄크로이츠 깃발들이 나부꼈던 중앙관람석에서 비행장을 내려다보았다. 관람석 바로 앞은 사람이나 차들이 대열을 이루어 사열하기 좋게 직선으로 길이 나 있다. 직선 주로 건너편에는 삼면이 콘크리트 둔덕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이 보이는데 이곳이 체펠린이 이착륙을 하는 계류장이었다. 항공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이라도 이 관람석에서 체펠린을 보게 된다면 가슴이 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체펠린 비행장의 관람석 전경 - 1930년대 독일 군중이 운집해 나치를 찬양하던 장소이다. ⓒ박흥수

경식 비행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체펠린은 힌덴부르크호이다. 만약 지금 미국에서 체펠린이 만들어지고 명명식이 진행된다면 아마도 "도널드 트럼프"호가 될 것이다. 나치 정권이 제작비를 대어 1936년 운항을 시작한 새 체펠린 LZ129호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 대신 1차대전 당시 러시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탄넨베르크((Tannenberg)전투의 영웅이자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파울 폴 힌덴부르크의 이름을 빌려 힌덴부르크호로 명명됐다.

힌덴부르크호는 1936년 3월 첫 시험비행 이후 나치의 선전에 동원된다. 1936년 3월 7일 독일 제국 육군은 전격적으로 라인란트를 점령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와 접한 전략적 요충지인 라인란트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비무장지대로 선언된 곳이었다. 히틀러는 독일의 재무장과 라인란트 점령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선조치"라고 주장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나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 공습 때와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무력시위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라인란트 점령 후 히틀러는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를 해산하고 선조치의 정당성을 묻겠다며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힌덴부르크는 3월 29일 실시되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3월 26일부터 독일 전역을 비행하며 "지도자에게 투표하시오!"라는 전단을 뿌렸다. 국민투표는 98.79%의 찬성을 얻었고 히틀러와 나치당은 독일 민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정부가 됐다. 1936년 8월 1일에는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히틀러가 개최를 선포하는 순간 힌덴부르크호는 오륜기를 달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주 경기장 상공을 날았다. 일본 대표팀으로 마라톤에 출전한 손기정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6월에 이미 베를린에 도착해있었다. 9일 벌어질 대결전을 앞둔 조선인 손기정도 힌덴부르크호를 보았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엔진이 얹힌 곤돌라 4개가 거대한 동체 하부에서 추진하는 힌덴부르크호는 프랑크푸르트–뉴욕 노선에 투입돼 1936년에만 대서양을 17회 왕복한다. 승객용 라운지와 바, 침실을 갖춘 호화 비행선은 독일과 미국을 19시간 50분에 주파하며 대륙을 이었다.

빛나는 성취를 이루는 듯 보였던 힌덴부르크호는 1937년 5월 6일 도착지인 미국 뉴저지 레이크 허스트 공항에 도착 후 계류장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려는 순간 불길에 휩싸인다. 체팰린의 도착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들은 눈앞에 펼쳐진 참사에 경악했다. 불길에 싸인 힌덴부르크호의 모습은 영상과 사진으로 남아 있다. 라디오 방송사에서 도착 장면을 생중계 중이었고 여러 언론사에서 파견한 기자들이 참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97명의 탑승자 중 34명이 사망한 화재 사고 이후 비행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사회의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집단지성과 파멸로 이끄는 집단광기는 모두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텅 빈 체펠린 비행장을 걸으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1937년 5월 6일 발생한 힌덴부르크호 사고 장면. 미해군 소속 거스 파스쿠아렐라(Gus Pasquarella)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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