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세계 1위라는 글로벌 조선소 HD현대중공업이 있다. 미국의 조선업마저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12월 HD현대미포와 합병해 하나의 조선소가 되었다. 지금 세계 1위 글로벌 조선소라는 HD현대중공업에서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본급 삭감, 성과차등임금제 도입 시도와 집단저항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보통 하청 노동자를 떠올리지만, 2023년부터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원청에 직접고용돼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E-7-3(일반기능인력) 비자로 입국한 조선 용접공, 도장공 등이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E-7-3 기능인력은 지난 5월 기준으로 HD현대중공업에 630여 명, HD현대미포에 780여 명이 직접고용돼 있다.
E-7-3 이주노동자들은 1000~2000만 원의 송출비를 들여 한국에 일하러 왔다. 기본적으로 조선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할 수조차 없게 돼 있다. 어쩔 수 없이 조선소에서 구조적인 강제노동을 하는 가장 열악한 존재다. HD현대중공업은 E-7-3 이주노동자들과 1년마다 재계약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절반 가량의 이주노동자가 송출비로 진 빚도 갚지 못하고 쫓겨났다. 현재 일하고 있는 630여 명은 아파도 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견디어 온 생존자인 셈이다.
5월 27일, HD현대중공업은 630여 명의 E-7-3 이주노동자에게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내밀고, 일제히 서명을 요구했다. 6월 1일부터 남은 근로계약 기간의 기본급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계약서였다. 근무연수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다. 예컨대, 한 노동자는 월 통상임금에서 기본급 23만 8400원과 고정수당 9934원을 삭감당한다. 통상시급 기준 1021원 삭감이다. 대신 강제로 연장근로를 해 줄어든 임금을 보충하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는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S등급, A등급, B등급에 대해 기본급부터 상여금, 성과금까지 차등 인상하는 성과차등 임금제를 도입하겠단다. 동시에 C등급 이하 저성과자는 계약종료 형태로 해고하겠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를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고 쥐어짜면서, 사측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불공정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수는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불이익 강제 전환을 거부했다. 초유의 일이었다. 그러자 일선 관리자들을 통해 협박이 시작되었다. "사인 안 하면 절대 재계약 안 한다", "사인 안 할 거면 지금 당장 사직서를 내라" "추천서를 안 써줘서 어느 곳에도 취업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심지어 때릴 듯이 위협하기도 했다. 한 명씩 따로 불러내 회유도 했다. 일주일 동안 집단적으로 서명을 거부하자 대폭 삭감했던 기본급에서 고작 몇만 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불이익 강제 전환 근로계약서에 사인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겼다.
6월 5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사측에 '이주노동자 인사제도 일방적 개편에 대한 철회 및 차별 시정'을 요구했다. 직접고용된 E-7-3 이주노동자들은 계약직 노동자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대한 노동조건의 변경은, 지부가 6월 5일자 공문에서 "관계 법령에 의거하여 지부 및 노동자와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진행되어야 마땅"하다고 밝힌 것처럼, 사측이 노동조합과 협의해야만 한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은 노동조합의 요구조차 무시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6월 8일 12시까지 서명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리는 등 압박만 강화할 뿐이었다. 급기야 HD현대중공업은 6월 8일부터 서명한 사람만 식당에서 밥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했다.
숙식비 갈취, 성과급 차별…노동권 사각지대 속 E-7-3 이주노동자
참으로 서럽고 기막힌 현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힘겨운 상황에서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불공정 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선 용접공과 같은 E-7-3 이주노동자는 법무부가 관할한다. 고용노동부가 도입, 운영, 관리, 감독하는 고용허가제 E-9 이주노동자보다 훨씬 더 인권과 노동권 면에서 취약하다. 인권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조선소 E-7-3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마치 20여 년 전 산업연수생제로 돌아간 것만 같다.
2022년 법무부는 E-7-3 기능인력 도입 규모를 내국인 고용인원의 20%까지 확대하면서 기업주협회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인력 도입을 넘겼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대표이기도 하다. 송·출입 비리, 브로커의 개입, 이면계약서, 임금 수준에 대한 사기 계약, 밥값 갈취, 강제노동, 초단기 계약 등 지난 몇 년 동안 터져 나온 각종 문제는 민간기관에 인력 도입을 맡기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동안 E-7-3 도입 규모는 내국인 인원의 30%까지 확대됐고, 기업을 위해 규제가 계속 완화됐다. 애초 조선 용접공과 같은 E-7-3 기능인력은 전년도 GNI(1인당 국민총소득) 80%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무부 지침에 정해져 있었다. 내국인 보호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 도입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2024년 10월부터 기업의 요구를 받아 신규 도입인력은 3년 동안 최저임금만 줘도 되도록 용인했다. 기존 도입인력은 GNI 80% 기준을 지켜야 한다지만, 각종 편법과 눈속임으로 임금 기준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HD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통상임금 기준 GNI 80%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으로 임금을 지급해왔다. 이런 눈속임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바로 밥값이다.
HD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삼시세끼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소에서 이 힘든 일을 하며 배를 곯고 일해서는 안 된다"는 창업주의 의지라고 선전해 왔다. 예전부터 회사 내규에 따라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직영노동자뿐 아니라 2023년에는 하청업체 모든 노동자에게도 조식, 중식, 석식 세끼 밥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HD현대중공업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서로 합의했다. 그런데 HD현대중공업이 직접고용하고 있는 E-7-3 이주노동자에게 거액의 밥값을 받아 온 것이다. 그동안 이렇게 갈취당한 밥값이 이주노동자 1인당 최대 1500만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밥값은 급여명세서상 외국인생활지원비라는 이름으로 51만 6500원을 일괄 원천 공제했다. 주택공제라는 이름으로 공제하는 기숙사비 5~6만 원은 별도였다. 근로계약서에는 GNI 80%에 맞추어 통상임금 기준 283만 2500원을 준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밥값 등 숙식비 명목으로 56만 6500원을 떼어서 226만 6000원만 지급한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지침에 따라 통상임금의 20%를 숙식비로 공제한다고 핑계를 댔다. 애초에 약속받은 임금 수준과 너무 차이가 나자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문제가 되자 HD현대중공업은 법무부 지침이 바뀌었다며, 2025년부터 점심값으로 21만 원을 의무 공제하고 아침, 저녁은 한 끼 5600원(올해는 5930원)씩 먹는 만큼 공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이 모든 과정을 마치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지침에 따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월 통상임금의 20%까지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 고용노동부 지침은 2017년에 만들어졌다. 원래 농촌에서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제공하며 숙식비로 큰 돈을 갈취하는 것을 막는다고 상한 금액을 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침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던 제조업 사업장에서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됐고, 그 부작용이 너무 커졌다. 결국 2023년 7월 5일 개최한 3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숙식비 공제지침을 폐지했다. 대신 기숙사비에 대해서는 2023년 8월부터 각 지역별 노동지청에서 지역시세, 주택형태 등을 고려해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밥값에 대해서는 지침이 폐지되면서 공제할 근거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HD현대중공업은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핑계를 대며 이주노동자들에게 엄청난 밥값을 받아 임금을 갈취해온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HD현대중공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역대 최고 성과금을 지급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내국인 하청노동자는 정규직 대비 50% 정도의 성과금만 받았고, 하청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그 내국인 하청노동자의 50% 정도를 받았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에 직접고용된 E-7-3 이주노동자들은 성과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E-9 노동자 밑에 하청업체에 고용된 E-7-3 노동자가 있고, 다시 그 밑에 HD현대중공업에 직접고용된 E-7-3 노동자가 있다고 한탄하는 실정이다. 조선소 사내하청 업체에 고용된 고용허가제 E-9 노동자들은 25%의 성과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고, 사업주 동의를 얻을 경우 다른 사업장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된 E-7-3 노동자들은 25%의 성과금은 같이 받았지만, 계약만료 또는 휴업·폐업시에만 다른 조선소로 이직할 수 있을 뿐 사실상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HD현대중공업에 직접고용된 E-7-3 노동자들은 성과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역시 사실상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HD현대중공업이라는 하나의 사업장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촘촘히 나누어진 차별의 올가미에 갇혀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외롭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지난 몇 년 간 HD현대중공업 E-7-3 기능인력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문제가 널리 알려져 왔다. HD현대중공업의 이번 임금삭감 추진은 사회적 지탄에 밀려 더 이상 밥값을 공제할 수 없게 되자 그 차액을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HD현대중공업은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또다시 꼼수와 편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처우 개선책으로 밥을 줄 테니 임금을 대폭 삭감하자고 한다. 평가를 강화한 성과차등 임금제를 도입해 앞으로는 불만이 있어도 절대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조선소 노동자들이 철폐한 것이 바로 이 성과차등 임금제였다. 2015~2016년 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노동개악의 핵심이 바로 성과차등 임금제였다. 당시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2016년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귀결됐고, 박근혜 탄핵과 함께 성과차등 임금제의 부활은 저지됐다. 그런데 지금 HD현대중공업이 E-7-3 직접고용 이주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성과차등 임금제 도입에 다시 나서고 있다.
E-7-3 직접고용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계약서 불이익 강제 전환은 어떻게 귀결될까? HD현대중공업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기막힌 "노예제도화"는 울산에서 거제로 전라도로 모든 조선소 이주노동자로 확대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하청노동자에 이어 최종적으로 원청노동자를 상대로 화살을 겨냥하게 될 것은 뻔하다.
HD현대중공업에 직접고용된 이주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전히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가 우리 센터에도 빗발친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절실히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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