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전북지선 입체 분석] ②두 동강 난 민심…화합과 치유 '갈 길'이 너무 멀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 멈추고 승자의 아량 중요"

50대 직장인 K씨(전북 전주시 금암동)는 올 6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30년 친구 S씨와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살지 못하는 이른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됐다.

한 세대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뜨겁게 유지해온 우정에 금이 가는 데 걸린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선호하는 전북도지사 후보를 놓고 이런저런 견해를 주고받던 중 이견이 돌출됐다. 두 사람은 10분가량 옥신각신하다 험한 말을 주고받았고 급기야 "다시는 얼굴을 보지 말자"며 등 돌리고 헤어졌다.

▲화합과 치유의 갈 길은 너무 멀다. 과거의 상처에 골몰하지 말고 "전북의 미래를 위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 던져야 한다.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적인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후보(앞줄 좌측에서 세번째)의 선거사무실에서 환호하는 모습 ⓒ프레시안

이 때가 올 4월 중순, 지난 40여일 동안 둘은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철천지 원수가 됐다.

"10여명의 동창들도 지지 후보에 따라 두 동강 났어요.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을 정도로 사이가 완전히 갈라졌지요. 선거가 뭔지…"

40대의 L씨(익산시 금마면)는 요즘 운동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힐링 차원에서 3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조기축구도 포기했다.

동아리 회원 J씨와 정치적 견해를 나누다 멱살을 잡으며 심한 말싸움을 벌인 후 스스로 고립과 단절을 택했다.

"무조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만 옳다고 말하니 대화가 안 통했어요.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 강요하는 '확증편향'도 심한 것 같아 아예 만남 자체를 회피했습니다."

제9회 동시지방선거가 3일 본투표를 끝으로 마무리됐지만 각종 공동체는 물론 개인 간의 갈등과 마찰이 심각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지역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후보 선대위와 무소속 김관영 후보 선대위는 지난달 중순부터 결사전의 대결을 펼쳤다.

'현금 살포'와 '식비대납'을 둘러싸고 연일 공수(攻守)를 반복했고 한 발이라도 밀리면 끝장나는 것처럼 험한 단어로 상대를 공격하며 고발전을 병행했다.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프레임 전쟁'도 갈수록 격화했고 심지어 "정치선동에 몰두하고 있다"거나 "무도한 정치권력"이라고 상호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양 후보 간 '거짓말 전쟁'은 갈등의 정점을 이뤘다.

이원택 민주당 후보는 김관영 무소속 후보를 향해 거짓말을 많이 한다며 '6대 거짓'을 추려 공격했고 김 후보는 이 후보를 향해 '6대 논란'을 언급하며 격하게 응수하는 등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지역사회는 사분오열로 갈라졌고 감정적 대립은 극을 향해 치달았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의 '빅매치'인 도지사 선거부터 두 진영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식의 대결 구도에 나서 불목 불화만 심해졌다"며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지역사회의 민심을 어떻게 봉합하고 치유해 나갈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전북 발전에는 정치적 아군도 적군도 없고 이념과 분파도 있을 수 없다. 갈등과 분열의 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통합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선거개표를 지켜보는 한 선거사무소 ⓒ프레시안

사상 유례없는 전북도지사 경쟁구도 속에 혼돈과 혼란의 격랑 속에 민심이 휘말렸던 6·3지방선거는 3일 본투표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오직 '당-정-청 원팀'과 호흡을 함께 하며 '대한민국 원팀'의 중심에서 전북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당선자를 지지한 유권자도, 다른 선택을 한 지역민도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전북도민이다. 특정 진영이나 지지층 논리에 춤추는 선거 이후의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180만 전북도민 모두의 광역단체장이 되어야 하고 지역민들을 아우르는 기초단체장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취임 첫날부터 선거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북 발전에는 정치적 아군도 적군도 없고 이념과 분파도 있을 수 없다. 갈등과 분열의 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통합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거 결과 자체보다 선거 이후에 공동체가 어떻게 다시 협력관계를 회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길로 가느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승자와 패자라는 인식을 줄이고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멈춰야 하며 △공동의 지역 현안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선거는 정책과 비전을 선택하는 과정이지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기는 전쟁이 아니다"며 "전북도지사 선거가 치열했던 만큼 갈등의 앙금을 씻고 당선자부터 경쟁 상대측을 포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도 멈춰야 한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각 진영마다 상대 진영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입에 담기조차 힘든 험악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누가 뭐라 할 수 없지만 후보 개인에 대한 공격은 자제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고 이제 상대는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동반자이다.

전북 현안은 널려 있다. 우선 당장 새만금에 현대차그룹 9조원을 담아내고 이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의도적인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피지컬 AI와 로봇 산업 등 신성장동력 창출부터 식품과 바이오 융합산업 육성 등 특화전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인구감소와 청년유출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현안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지역민들도 현안 해결에 있어서는 공동의 운명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지역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의 화합에 나서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이후의 갈라진 민심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승자의 아량이 중요하다. 화합과 치유의 갈 길은 너무 멀다. 과거의 상처에 골몰하지 말고 "전북의 미래를 위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 던져야 한다.

그리고 경쟁 상대에게도 손을 내미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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