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단원 김홍도(1745~?)의 가계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가운데, 이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제시돼 주목된다.
김원준 (재)한국족보문화재단 이사장(한국족보문화진흥원장)은 최근 1925년 발행된 김해김씨 족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김홍도의 가계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홍도는 풍속화·산수화·인물화·영모화·불화 등 전 장르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조선 후기 대표 화가로, ‘조선 회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출생과 사망 시기뿐 아니라 가계 역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학계의 주요 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김홍도의 가계는 ‘성원록(姓源錄)’을 통해 일부 확인됐으나, 기록이 5대조까지만 이어져 있어 형제·사촌·혼인 관계 등 주변 가족 관계를 추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성원록에는 5대조 김득남(金得男), 고조부 김중현(金重鉉), 증조부 김진창(金震昌) 등이 기록돼 있다.
김 이사장은 김홍도가 김해김씨라는 점에 주목해 방대한 족보 자료를 일일이 대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재단이 보유한 김해김씨 족보만 1000여 권에 달하며, 국립도서관 등 소장본까지 포함하면 3000여 권이 넘는 자료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1925년 서울에서 간행된 ‘왕산세가 석장대동보(王山世家 石藏大同世譜)’에서 성원록과 일치하는 계보를 발견했다. 해당 족보에는 김홍도의 5대조가 ‘김득남(金得南)’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성원록과 한자 표기만 다를 뿐 동일 인물로 판단된다.
또 김득남의 아들 김중현은 석장본에서 ‘金重賢’으로 표기돼 있으나, 두 기록 모두 별제(別提)를 역임한 사실이 일치한다. 증조부 김진창 역시 이름(震昌), 관직(만호), 배우자(완산이씨)까지 동일하게 확인됐다.
김 이사장은 “족보 기록과 성원록을 대조한 결과 상계 3대가 일치하고 이후 항렬도 동일하다”며 “족보에 단원가가 직접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해당 가계가 김홍도의 집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다만 “득남의 상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최종적인 단정에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며 “특히 단원의 배우자 계통까지 확인될 경우 가계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중인 이하 신분의 가계 기록이 충분히 전승되지 못한 현실로 인해 단원과 같은 인물의 가계 연구에 어려움이 크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이사장은 성원록과 잡과방목을 결합한 자료를 바탕으로 ‘성원록 해제’ 원고를 마련했으나, 경제적 여건으로 출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홍도의 생년은 1745년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에 가깝지만, 사망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1805년 병세가 위중했다는 기록 이후 행적이 분명히 확인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대체로 1810년 전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작품 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김홍도의 가계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추가 자료 발굴과 교차 검증을 통해 단원 김홍도의 생애가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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