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가 되니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당적을 불문하고 여러 정치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그렇게라도 노회찬 의원이 남긴 정신을 잇겠다고들 나서니,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회찬 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야 하겠다. 단순히 진보적 유권자를 현혹하기 위한 말잔치가 아니라, 노회찬이 만들어가려 한 '정치'를 정말로 계속 이어가려는 경쟁적 노력이라면 말이다.
물론 '노회찬 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6411'이라는 숫자가 절대로 빠져선 안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당장, 노회찬재단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마련한 둥지의 이름부터가 '노회찬의집6411'이다.
'6411'은 지금도 운행하는, 서울 구로구에서 출발해 강남구로 향하는 시내버스 노선이다. 6411번 버스의 새벽 첫 차 손님은 대개 강남의 화려한 빌딩에서 청소 노동 등을 하기 위해 일찌감치 출근하는 노동자들이다. 노회찬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 창당대회의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 6411번 버스를 언급하며, 이 사회의 소중한 존재이면서도 막상 사회 주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투명인간들'의 목소리가 되는 게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 '투명인간들'은 누구인가? 노회찬재단은 우리 곁에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마냥 취급돼온 이웃들이 누구인지 찾고 드러내는 작업을 벌여왔다. <한겨레>에 '6411의 목소리'라는 이름 아래 이런 이웃들의 존재와 처지, 고통과 희망을 전달하려 했고, 그 결실이 두 권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나는 얼마짜리입니까>, <당신은 퇴근은 언제입니까>, 모두 창비 발행).
노회찬재단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투명인간들'을 가시화하는 통계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했고, 그래서 기존 통계에서도 가려지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불평등과 소외를 밝혀줄 대적 지표를 '6411지표'라는 이름 아래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5월 19일, 노회찬재단의 의뢰를 받아 '6411지표' 개발 연구작업을 맡은 이원진 박사(사회복지학,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가 '함께맞는비'포럼 제18차 토론회를 통해 그 첫 결실을 발표했다. 사실 통계는 접근하기 쉬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다양한 불평등 현안을 구체적으로 짚는 내용이어서, 어느 때보다 더 흥미롭게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가구 효과'를 걷으면 보이는 노인, 여성의 빈곤
이원진 박사는 '투명인간들'의 가시화라는 '6411지표'의 애초 목표로 인해 지표 개발 작업이 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토로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들어서는 풍부한 통계 조사를 실시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하기 힘든 불평등 현상이 존재한다면, 이는 본래 통계로는 포착하기 힘든 구조적 특징을 지닌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난점을 극복하면서 '6411지표'를 개발하기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원진 박사는 기존 통계에서 불평등 양상을 새롭게 해독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보완 작업을 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6411지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 작업을 위해 출발점으로 삼은 데이터는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매년 공동 실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다. 이 조사는 2만 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금융, 복지와 가구 소득의 여러 관련 양상과 변화 추이를 파악한다.
이 박사는 이런 기존 조사에서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내용으로, 가구 단위로 합산하지 않은 개인 단위의 소득에 대한 분석을 들었다. 기존 통계는 가구 내에서 합산한 소득을 분석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배우자,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구직 청년, 동거 자녀에게 부양을 받는 노인 등의 구체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전체 인구의 개인시장소득 빈곤율은 53.7%이고, 균등화 가구시장소득 빈곤율은 20.9%다(표 1). 즉, 개인이 직접 벌어들인 시장소득이 빈곤선인 1,966만원/년에 미치지 못하는 집단은 53.7%이지만, 다른 가구원이 벌어들인 시장소득까지 고려하면 빈곤율이 20.9%로 32.9%p 감소한다. 가구원 소득을 합산할 경우에 빈곤율이 감소한다는 것(가구 효과)은 곧 가구 중심 통계에서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소득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가구 효과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크게 나타난다. 개인이 직접 벌어들인 시장소득이 빈곤선을 넘는 여성은 약 36%에 불과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다른 가구원의 시장소득까지 고려하면 약 77%의 여성이 빈곤선을 넘는 시장소득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적이전(복지제도를 통한 소득 이전)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여성의 빈곤율은 17.1%로 줄어든다. 공적이전의 빈곤율 감소 효과 역시 남성보다 여성에게 조금 더 크게 나타난다.
한편 노인의 균등화 가구시장소득 빈곤율은 대체로 개인시장소득 빈곤율보다 약 20%p 낮다. 즉, 배우자나 성인 자녀 등 다른 가구원의 시장소득이 노인의 빈곤율을 약 20%p 낮추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75세 이상 고령 노인의 경우 이와 같은 가구 효과가 시간에 따라 완만하게 감소하는데, 이는 부양 규범의 약화에 따라 노인과 성인 자녀의 동거가 감소하는 사회적 변화가 75세 이상 고령 노인의 빈곤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구가처분소득이 가장 적은 집단은 75세 이상 무배우 여성으로, 전체 평균의 52% 수준이다. 물론 75세 이상 무배우 남성의 가구가처분소득 수준 역시 전체 평균의 55%로 상당히 낮다. 남녀 공히 사별로 인해 가구 효과가 사라질 경우에 소득 수준이 급속히 빈곤선 아래로 추락한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가구소득 격차에는 성별 수명 격차에 따른 사별 여성 노인의 증가와 극빈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원진 박사는 이러한 가구소득의 성별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기초연금처럼 사별 여성 노인의 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소득보장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업 변수와 관련해서 이 박사는 임시-일용직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구주가 무직-비경활인 집단의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지만, 특히 가구주가 임시-일용직인 집단의 가구시장소득 평균이 전체 평균의 61%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구주가 임시-일용직인 집단의 균등화 가구시장소득 빈곤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빠르게 증가하였다는 사실도 관찰된다(표 2). 이는 노동시장과 소득분배의 관계를 진단할 때 고용이 불안정한 임금노동자의 저소득, 빈곤 위험을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특수형태노동자 등 노동시장 지위의 불안정성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임시-일용직이 근로빈곤 문제의 핵심에 자리한다.
자산 불평등의 핵심은 최상위층에 집중된 부동산
이원진 박사는 노인, 여성, 임시-일용직 문제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소득 분배는 전반적으로는 뚜렷이 개선되는 추세라고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불평등 증대를 체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소득 분배 악화보다도 자산 소유 격차의 증대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문제는 부동산에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지만, 통계는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전체 가구의 부동산 평균을 100%라 할 때 순자산 1분위(자산 소유 최하층)의 부동산 평균은 2%에 불과한 반면 순자산 10분위(자산 소유 최상층)의 부동산 평균은 481%로 매우 크다(표 3). 즉, 순자산 1분위의 부동산은 평균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순자산 10분위의 부동산은 평균의 거의 5배에 달한다.
물론 저축액, 전월세 보증금, 기타 실물자산 항목에서도 저분위-고분위 격차가 관찰되지만, 그 격차의 크기는 부동산보다 상대적으로 작다. 또한, 순자산 분위가 높아질수록 순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패턴도 확인된다. 순자산 2분위는 순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46%이지만, 순자산 10분위는 89%다. 즉, 고자산층일수록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높아, 부동산이 자산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사실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순자산 1분위는 부동산이 687만원에 불과하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 순자산 평균이 음의 값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고자산층일수록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높아지는 패턴은 자산 불평등이 증가한 2017년-2025년 동안 더욱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분석 결과는 자산 프로파일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반적인 자산 불평등에도 부동산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가구주 연령대별 분석 결과는, 생애과정에서 50대-60대까지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70대 이후에는 은퇴기의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자산을 사용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34세 이하 청년 가구주의 순자산 지위는 시간에 따라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과 청년의 입직 및 독립 지연이 맞물리면서 청년의 자산형성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역별로 보면, 순자산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로, 서울의 순자산 평균은 전체 평균의 151%다(표 4). 인천·경기의 순자산 평균 역시 전체 평균의 109%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나머지 지역의 순자산 평균은 전체 평균의 75-79%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수도권, 특히 서울로 자산이 집중되는 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서울은 부동산 평균이 전체 평균의 152%로 상대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저축액 평균 역시 전체 평균의 117%로 큰 편이다. 이는 서울-지방 자산 격차가 부동산 격차뿐만 아니라 주식 등 금융자산의 격차를 포괄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반적인 분석 결과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자산 불평등 증가 추세의 핵심이 취약계층과 중간계층 간의 자산 격차 확대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고자산층으로의 자산 집중 현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원진 박사는 이를 "소득 측면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게 문제이지만, 자산 측면에서는 부자들이 더욱 부유해지는 게 문제"라고 정리했다.
시급한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서는 기초연금제도가 중요하다
지정토론을 맡은 김진석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는 기존 통계 자료를 꼼꼼히 재가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읽어내려 한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애초에 '6411지표'에 기대했던 역할을 온전히 구현하려면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발표된 내용만으로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의견이었다. 김 교수는, 최근 들어 세대 간 부동산 불평등이 급격히 악화된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세대별로 자산 취득 추이를 추적, 정리하는 작업 또한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청중으로 참여한 이광호 이음나눔유니온 상임위원장은 발표자가 강조한 노인 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지 질문했다. 사회운동 차원에서는 "기초연금 100만원으로 인상" 같은 구호도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혹시 다른 유력한 처방이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이원진 박사는 "말씀하신 대로 기초연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현재 기초연금이 월 34만 9,700원이고 대상자가 전체 노인의 70%인데, 연금액 인상이든 대상자 확대든 어떤 방향으로든 기초연금 지급액 총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37%에 이르는 노인 빈곤율을 최소한 다른 집단과 비슷한 15%수준으로라도 낮추려면, 기초연금 인상/확대보다 더 효과적인 처방은 없다."
그 밖에도, 불평등을 포착하기 위한 국가 통계 전반의 개선 방향이나, 건강 불평등, 문화 불평등 같은 21세기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할 지표 개발 필요성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토론회에서 곧바로 답을 낼 수는 없는 주제들이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회찬재단이 첫 삽을 뜬 '6411지표' 개발의 문제의식이 앞으로 더욱더 치밀하게, 구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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