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의 세무 이야기] 세무서 신고안내 창구,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철이 되면 전국 세무서에는 신고안내 창구가 설치된다. 세무공무원들이 차출되고, 단기 아르바이트 인력까지 투입된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풍경이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하게 물어봐야 한다. 과연 지금도 이 제도가 필요한가.

수기 신고 시대의 행정 관행

과거 신고철이 되면 세무서 세목 담당과에는 세무공무원 책상 앞에 의자를 길게 놓아두고, 납세자들이 줄을 서서 신고서를 작성하던 풍경이 흔했다. 당시에는 국세통합시스템(TIS)이 도입되기 이전이었고, 지금과 같은 전산 기반 세무행정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전자신고 시스템인 홈택스 역시 2002년에야 도입됐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의 신고가 수기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납세자 역시 세무서를 직접 방문해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무대리 시장 역시 지금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세무사 숫자도 많지 않았고, 지역 세무서 담당자가 관내 사업자를 일일이 파악하며 관리하던 시대였다. 신고안내 창구 역시 이런 행정 환경 속에서 형성된 제도다.

정부부과제도의 흔적

당시 신고창구는 단순한 민원 안내 기능이 아니었다. 사실상 세무공무원이 신고서를 직접 작성해주고, 신고 내용을 확인하며 세금을 결정해주는 방식의 행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과거 세무서 신고창구는 실질적으로 세무공무원이 신고 내용을 검토·확인하고 세액 산정 과정에 관여하는 일종의 ‘검인 시스템’에 가까웠다. 정부가 세액을 결정하던 정부부과제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행정 관행이었다. 당시에는 세무공무원이 관내 사업자의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납세자 역시 “세무서에서 해준 신고”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법 체계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는 국가가 세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납세자가 스스로 신고하고 책임지는 신고납세제도가 기본 원칙이다. 국가는 신고 기준과 정보를 제공하고, 납세자는 자신의 판단과 책임 아래 신고하는 구조다. 그런데 신고철마다 세무서 창구에서 사실상 신고서를 작성해주는 현재의 방식은 여전히 과거 정부부과제도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제도 원리와 실제 행정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성 없는 신고 지원의 한계

문제는 전문성이다. 신고철마다 세무서 신고창구에는 단기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투입된다. 물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복잡한 세법 판단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세무신고는 단순 입력 작업이 아니다. 소득 구분, 필요경비 인정 여부, 공제 적용, 증빙 판단, 세법 해석 등이 함께 이루어지는 전문 영역이다. 작은 판단 하나가 수백만 원의 세금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신고창구에서는 사실상 신고서 작성과 입력이 이루어지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납세자가 부담한다. 결국 책임 없는 신고 지원이 납세자에게 잘못된 안심을 주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이미 충분히 성장한 민간 인프라

과거에는 세무전문 인력 자체가 부족했다. 세무사 숫자도 많지 않았고, 지역마다 세무서비스 접근성 차이도 컸다. 그 시대에는 세무서 신고창구가 일정 부분 보완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매년 약 700명에 가까운 세무사가 새롭게 배출되고 있다. 세무대리 시장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최근에는 플랫폼 기반 신고대행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납세자는 모바일과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단순 신고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까지 발생할 정도로 민간 서비스 공급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국가가 여전히 세무서 신고창구를 통해 사실상 신고대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민간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 제공과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는 데 있어야 한다.

신고철마다 반복되는 행정력 낭비

행정력 낭비 문제도 심각하다. 신고철이 되면 세무공무원들이 돌아가며 신고창구 근무에 투입된다. 그 결과 정작 전화 상담, 민원 처리, 체납 관리 등 본래 업무 대응은 더 어려워진다. 신고철마다 반복되는 “전화 연결이 어렵다”는 불만 역시 같은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한정된 행정력이 신고창구 운영에 과도하게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실에서 세무행정 역시 효율성 재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신고 시스템과 민간 세무 인프라가 충분히 성숙한 상황에서, 과거 방식의 대면 신고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대규모 행정력을 반복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행정력이 절감되면 그만큼 한정된 공공 인력을 보다 필요한 영역에 집중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불필요한 인력 수요 증가 역시 줄일 수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단순 신고 입력 지원이 아니라, 고액 체납 관리, 지능적 탈루 대응, 국제조세 검증 등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는 데 있어야 한다.

세무서는 ‘작성 기관’이 아니라 ‘정보 제공 기관’이어야

이미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 세무서는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기관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시스템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신고안내문을 더 쉽게 만들고, 홈택스 접근성을 개선하고, AI 기반 상담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세무서 앞에 줄을 세우는 방식의 행정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진정한 납세 서비스는 창구 숫자가 아니다. 납세자가 쉽고 정확하게 스스로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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