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가락] 어머니의 노래…가정의 달에 듣는 여성의 소리

5월이 되면 거리가 카네이션과 각종 꽃들로 붉어진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꽃집 앞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수북이 쌓이고,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기 위해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종이꽃을 접는다. 어느 순간부터 5월은 자연스레 부모님을 떠올리는 가정의 달이 되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냄새, 손길, 목소리 등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은 소리나 음악이 함께한다. 자장자장 흥얼거리던 자장가, 부엌에서 들려오던 콧노래,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중얼거리던 소리. 어머니의 노래는 따로 무대가 없었다. 아이 곁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늦은 밤 혼자만의 시간에. 일상의 어느 자리에서나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 소리들에는 오랜 뿌리가 있다. 지금 우리 어머니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들, 그리고 그 어머니들이 어린 시절 들었던 노래들.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백 년을 이어온 여성의 노래들과 만나게 된다. 오늘은 그 소리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잠 든다, 꿈 꾼다 : 자장가의 세계

자장가는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노래 형식 중 하나일 것이다. 민족과 언어를 불문하고 어머니들은 아이를 재울 때 노래를 불렀다. 서양의 자장가가 대개 달콤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그린다면, 우리 자장가에는 어머니 자신의 마음이 고스란해 배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된 구전 자장가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잘도 잔다 / 니가 자면 나도 자고 니가 울면 나도 운다 / 니가 잘 자야 내가 잘 자지 니가 잘 커야 나도 좋지 / 금을 준들 너를 주리 옥을 준들 너를 주리”

아이의 잠을 빌면서 자심의 잠도 함께 바라는 이 노랫말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밤새 아이 곁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고단함이 나란히 담겨 있다. 아이를 재우는 노래이면서, 동시에 지친 자신을 달래는 노래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역마다 자장가의 가락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경기도 지방의 자장가는 비교적 밝고 경쾌한 편이고, 남도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선율이 느리고 깊어진다. 진도에서 전승되는 자장가는 진도 특유의 육자배기토리로 불린다. 같은 사설이라도 지역의 음악적 색깔이 입혀지면 전혀 다른 결의 노래가 된다. 슬픈 듯 구슬픈 남도 자장가를 들으면 아이를 재우는 장면보다 긴 밤을 혼자 버티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아이에게는 평화를, 자신에게는 위안을 주던 노래인 것이다.

▲자장가 부르는 어머니와 아기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밥 담기도 어렵더라 : 시집살이 노래

필자의 할머니 세대 노래 가운데 여성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담긴 것이 시집살이 노래다. 글을 배울 수 없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방법이 없었던 여성들이 선택한 매체는 바로 노래였다.

경북 경산 지방에서 부녀자들 사이에 구전되던 시집살이 노래는 사촌 자매 간의 대화 형식으로 시작한다.

“형님 형님 사촌 형님 / 시집살이 어떱데까? /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 시집살이 개집살이 / 고추 당초 맵다 해도 / 시집살이 더 맵더라”

사촌 동생의 물음에 형님이 답하는 이 구조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개집살이'라는 직설적인 비유,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라는 표현에서 억눌린 감정이 단번에 터져 나온다. 노래는 계속해서 시집 식구들을 새에 빗대어 묘사한다. 시아버지는 호랑새, 시어머니는 꾸중새, 시누이는 뾰족새, 남편은 미련새—그리고 '나 하나만 썩을 샐세'라는 구절로 이어진다.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노래에 실어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 노래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닌 것은 그 안에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비유와 과장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이것이 우리 민요의 특징적인 화법이다.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끼리 모여 이 노래를 부르며 억눌렸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위로했다. 길쌈을 하면서, 밭을 매면서, 빨래를 하면서 부르던 이 노래들은 그래서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당대 여성의 삶을 기록한 구술 역사이기도 하다.

베틀 앞의 노래, 길쌈노래

시집살이 노래의 상당수는 사실 길쌈을 하면서 불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집살이노래라고 알려진 것들은 대체로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집살이 노래가 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베를 짜고 물레를 돌리는 긴 노동의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길쌈노래는 물레노래, 삼삼기노래, 베틀노래로 나뉘는데 베를 짜는 동작의 리듬에 노랫말이 맞춰지는 것이 특징이다. 베를 짜는 동작이 반복되듯 노랫말도 반복되고, 후렴구에 맞춰 다음 사람이 받아 부르는 형식이 많았다. 오랜 시간 일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부르게 된 까닭에 자연스럽게 길어졌고, 그 안에 여성의 생활과 정서가 다른 어떤 노래보다도 자세하게 담기게 되었다.

길쌈계(稧)라는 공동 작업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럿이 모여 함께 베를 짜면 밤이 조금 짧아졌다. 혼자 일하면 외롭고 지치지만, 함께 노래하며 짜면 이야기가 이어지고 위로가 되었다. 단순한 노동 효율을 넘어서 여성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위로하는 공동체의 자리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시집살이의 서러움도, 사별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노래가 되어 흘러나왔다.

▲안동 삼베짜기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이름 없는 노래들이 살아남은 방식

자장가도, 시집살이 노래도, 길쌈노래도 모두 악보에 기록된 것이 아니었다. 전문 음악인이 교육을 통해 전수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웃 여성들 사이에서 또 다른 마을 여성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러한 구전(口傳)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전승 방식으로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왕조가 바뀌고 제도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어도 노래는 남았다.

그러나 구전의 힘은 동시에 그 취약성이기도 하다. 전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노래도 사라진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시집살이 노래의 경우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전승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국악원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해온 민요 현장 조사와 채보 작업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름없는 어머니들의 노래를 보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어머니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자장가 대신 유행가를, 길쌈노래 대신 라디오 팝을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노래가 품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아이를 재우며 자신도 쉬고 싶었던 마음, 힘든 것을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노래 속에 실어 보냈던 마음.

어버이날,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그 순간에 어머니의 노래를 떠올려 보는건 어떨까. 그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머니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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