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국가에 윽박지르던 트럼프, 시진핑 앞에서 작아졌던 이유는

[현안진단] 미·중 투키디데스 함정과 각자도생의 국제질서

먹을 것 없었던 소문난 잔치

2026년 5월 14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경쟁 관계를 설명한 이 '함정'은 기존의 강국 체제에서 새롭게 신흥 강국이 부상할 경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의 위험성을 경고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는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겨루는 동등한 위치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1978년 개혁·개방을 선택하고 이듬해 미국과 수교한 덩샤오핑은 "가슴 속에 칼을 숨기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견지하며, 미국과 협력해 중국의 경제발전에 주력했다. 이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과거의 모습이 아닌 신형대국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미국과 대등한 강국이라는 입장을 피력하며 '주동작위(主動作爲)'를 공식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중 수교 당시 먹는 문제조차 해결이 어려웠던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G2 반열에 올라섰고 높아진 국제 위상을 기반으로 시진핑 주석은 당당하게 투키디데스 함정을 논한 셈이다.

9년 만에 이루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2박 3일간 베이징 방문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나 그 어떤 빅딜도, 국제 정세의 현안을 해결할 만한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상적인 무역 합의'를 도출했다고 강조했지만, 2017년의 베이징 방문과 비교했을 때 성과는 크지 않았다. 당면 글로벌 주요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해서도 명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은 개최 직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긴장 관리 외에 주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는 지난해 트럼프 발 관세전쟁의 여파를 수습하기 위해 미·중이 휴전 상태에서 합의한 내용이었으며, 현재 양측이 무역 문제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무차별적으로 관세 카드를 남발한 근거인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법적 효력을 상실했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10% 글로벌 관세 역시 제동이 걸렸다. 미·중 경제 전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 온 관세 카드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국내외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된 원인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란 전쟁 종식을 위해 이란에 대해 영향력 있는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이란 전쟁 중재와 관련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가 급거 베이징을 찾는 이유이다.

미국의 주요 전력이 이란 전쟁에 투입된 상태라는 점에서 대만 문제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전략을 보기 어려웠던 이유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베이징 중난하이에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주요 의제가 된 대만 문제와 이란 전쟁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국제 현안은 이란 전쟁과 대만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룰 경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경고했다.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방어할 것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시 주석이 오늘 내게 그것을 물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대만 침공 상황을 상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시 주석의 대만 관련 언급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답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무기 판매와 관련해 시 주석과 "매우 상세히(in great detail)"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44년 동안 견지해 온 대만 정책을 변경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의 방어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할 때 미국이 중국과 협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980년은 꽤 먼 과거"라며 시 주석과 분명히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관해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대만에 대한 미국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루비오 국무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만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 여러 미 행정부에서 일관적이었고 지금도 일관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의 1982년 대만에 대한 '6대 보장(Six Assurance)' 항목 중 하나인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시 중국과 협의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트럼프 대통령이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대만을 포함한 동맹국의 우려가 확산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전 이란 문제가 주요 의제가 아니며 시 주석에게 이란 압박을 부탁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이란의 석유를 계속 구매할 것이지만 군사 장비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협력할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시 주석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따르면 이란 전쟁과 관련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현안들이 모두 다뤄진 셈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이란 전쟁과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동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는 이란 전쟁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란의 평화적 핵 주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우라늄 농축 권한 자체를 부정하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도 이란에 대한 압박이 아닌 전쟁 종식이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이란 전쟁 종식을 위해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국의 역봉쇄 조치로 이란산 원유 수입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자국 선박 피격 등 이란 전쟁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5월 19~20일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며, 23일에는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가 중국을 찾는다.

러시아와 파키스탄 모두 이란 전쟁의 중재국이며, 특히 러시아는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 당시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반출한 국가이다. 중국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관련 외교 행보를 가속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미·중 정상회담 이전 이미 파키스탄, 모스크바, 그리고 베이징을 방문한 바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의 실종

2025년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회의(APEC) 계기 방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북·미 정상 간 재회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란 전쟁 중재 등 일정이 바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 4월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했다는 점도 이번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북·미 접촉 가능성이 주목을 받은 이유였다.

5월 1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통해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위기 그리고 한반도 등 '중대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관련된 백악관 발표에 북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기내 기자 간담회에서 시 주석과 북한 관련 논의를 했느냐는 질문에 "했다"라며 김정은이 "(최근) 매우 조용하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소통했다고도 언급했지만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그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만 답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의미 있는 진전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란 전쟁 이후 북한은 무력시위와 함께 군사 행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도 수시로 군사 관련 현지 지도에 나서고 있다. 나아가 북·러 간 군사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4월, 평양의 북한군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즉 러시아 파병 북한군 기념관 준공식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과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당시 러시아 측은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개년 북·러 군사협력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9일 러시아 열병식에 북한군이 최초로 참가해 양측 간 군사협력을 과시했으며, 행사 직후 푸틴 대통령은 북한군 지휘부를 만나 격려했다,

북·러 간 군사협력도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 파병 이후 북한은 자체 기술로 제약이 있는 5,000톤급 구축함 진수, 고고도 정찰기 공개, 공대공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재래식 전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12일 미국 CNN 방송은 2024년 12월 지중해 스페인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화물선이 서방측 개입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핵추진잠수함용 원자로 기술 이전 시도를 미국 등 서방 국가가 저지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일부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 참관하에 8,700톤급 핵추진잠수함 건조 상황을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의 자체 기술력으로 단기간에 대형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물론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대만 경고' 발언이 나온 5월 15일 하와이에서 개최된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한국에 지상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동맹의 존재"이자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이라고 평가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 힐버트 주한 미8군 사령관은 한반도가 제1 도련선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올해 1월 발표된 미국 국방전략서(NDS)는 대북 억제의 주도적 역할을 한국이 담당해야 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북·러 간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는 대만과 이란 이슈에 밀려 사실상 실종되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북핵 문제의 해법 모색은 요원하고, 한·미 동맹이 북한 억제를 넘어 미·중 전략 경쟁의 한가운데로 이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각자도생의 무극화 시대, 대한민국의 좌표는 국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직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는 '좋은 협상칩'이고 미국이 '팔 수도, 팔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무기에 자국 방어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대만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에 대한 방어 무기 제공 여부를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매우 강력한 대국이고 대만은 작은 섬이며, 미국은 1만 5천km 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는 안 된다"며 대만 내 독립파를 견제하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에 대한 비협조를 명분으로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을 전격 지시했으며, 동일한 이유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주둔 미군의 감축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이란 전쟁은 미국의 침략전쟁이다. 따라서 침략을 받았을 경우 회원국의 공동 대응을 규정한 나토헌장 상 가입국의 협조 의무가 없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이기주의 입맛에 따라 동맹과 국제 안보의 지형이 좌우되는 형국이다.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결정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으며,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종합 국력 세계 1, 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상황 관리라는 미봉책으로 출구를 찾았을 뿐이다.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란 전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은 물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구조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국제적 갈등과 분쟁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극화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파병되면서 유럽과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연계되는 양상이며, 유가 폭등과 나무호 피격 사건이 보여주듯이 이란 전쟁은 우리에게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안정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지 못하고, 동맹은 미덥지 못한 현실이다.

고대 지중해에서 벌어진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충돌과 달리 미·중 전략 경쟁은 전 세계에 직간접적 충격을 주고 있으며,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현대판 투키디데스 함정의 파고에 휘말려 표류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남북을 국가관계로 전환하고 군사 행보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을 설득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각자도생의 외교 안보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지역 안보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분석하고 전략적 대처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오직 대한민국의 국익만을 좌표로 설정하여 국제질서 전환의 파고를 이겨내야 한다.

평화재단

평화재단은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와 관련한 현안 문제에서 사회 양극단의 갈등을 지양하고, 균형잡힌 시각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통일 역량을 강화하고 평화통일의 환경을 적극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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