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을 받아 들었다. 책 3권은 김기춘(1939~ )을 이렇게 규정한다. "독재정권의 사법기술자, 법비(法匪) 중의 법비." 법비. 법을 이용하는 도둑. 총은 들지 않았지만 법전을 무기 삼아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나라를 주무른 자. 이 네 글자 앞에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어떤 장면이 유독 선명하게 보인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가 법을 가장 잘 비틀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다. 800년 전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1215년)가 이 땅에서 왕의 권력을 법아래 묶었다. 그 전통 속에서 한국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김기춘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깊고 집요하게 그 반대 방향을 걸어왔는지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유신의 씨앗을 심은 젊은 검사
김기춘은 1939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검사가 됐다. 출발은 평범한 법조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1971년부터다. 박정희(1917~1979)가 유신 쿠데타를 준비하던 그 시절, 그는 법무부 검찰국에 몸담으며 유신헌법 초안 작성 작업에 참여했다. 헌법을 만드는 일에 검사가 손을 얹었다. 그것도 민주주의를 통째로 뒤엎을 헌법에.
헌법이란 무엇인가?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최고 규범이다. 검사는 그 헌법의 수호자여야 한다. 그런데 김기춘은 헌법을 짓밟을 설계도 작성에 참여했다. 젊은 검사의 이 첫 번째 선택이 이후 수십 년의 궤적을 결정했다.
이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유신 말기 재일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 조작을 지휘했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젊은이들이 어느 날 간첩이 됐다. 그들에게 주먹이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법률문서가 날아왔다. 공소장이 날아왔다. 김기춘의 특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주먹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법의 언어로 찍어 누르는 것. 고문수사관보다 그 고문을 법적으로 포장한 검사가 더 오래,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한국현대사의 뼈아픈 진실이다.
세계사 속의 또 다른 '법비'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김기춘과 구조적으로 닮은 인물들이 있다. 그들을 살펴보는 것이 단순한 비교가 아닌 이유는,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법무장관 오토 게오르크 티라크(Otto Georg Thierack, 1889~1946)가 있다. 그는 히틀러(1889~1945) 정권에서 사법부를 완전히 정치의 도구로 만든 자였다. 판사들에게 "총통의 뜻이 곧 법"이라고 가르쳤다. 독립적이어야 할 법원을 권력의 심부름꾼으로 만들었다. 재판이라는 형식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실질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기소됐고, 재판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946년). 법으로 타인을 죽이던 자가 법 앞에 서게 되자 달아난 것이다.
소련의 국가검사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도 있다. 스탈린(1878~1953)의 대숙청 시기(1936~1938년) 재판을 총지휘하며 무고한 사람 수만 명을 '인민의 적'으로 법정에 세웠다.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법적 증거로 포장하고, 이미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법률적 외양을 입혔다. 재판은 있었다. 변호인도 있었다. 판사도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비신스키는 나중에 소련 외무장관까지 올랐다. 법비는 권력 안에서 승진한다.
김기춘은 이 계보 위에 있다. 총은 들지 않았다. 법복을 입었다. 그래서 더 오래, 더 깊숙이 권력의 심장부에 남아 있었다. 티라크와 비신스키가 각각 전범재판과 체제붕괴로 최후를 맞은 반면, 김기춘은 한국 민주화 이후에도 수십 년을 버텼다. 그것이 한국사회가 과거청산을 얼마나 불철저하게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초원복집, 오뚝이의 비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벌어진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은 김기춘 이력의 백미이자 한국 공안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시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조율하는 모임에 참석했다가 도청에 걸렸다. 평생 법을 집행하던 사람이 법을 어긴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것이다.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처벌을 면했다. 법비는 법망을 빠져나간다. 훗날 박근혜(1952~)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여기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조용히 기록하는 사실 하나가 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부장검사가 정홍원, 담당검사가 김진태였다는 것이다. 정홍원은 훗날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가 됐고, 김진태는 검찰총장에 올랐다. 한국 공안권력의 세계는 참으로 좁고, 또 끈끈하고, 또 서로를 잘 지켜준다.
'왕실장' 시대, 박종철에서 세월호까지
박근혜정권에서 비서실장이 된 그는 '왕실장'으로 불렸다. 대통령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재임시절을 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하다.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고, 조작간첩 사건이 이어졌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문화예술계 수천 명을 줄 세웠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허위공문서 작성혐의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오래, 더 또렷하게 기억해야 할 장면이 있다. 1987년의 일이다. 당시 대검 차장이었던 그의 재임시절,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사건이 터졌다. 경찰의 물고문으로 스물두 살 청년이 숨졌다. 이 사건은 훗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런데 김기춘은 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수사하는 대신 고문사실을 폭로한 외국선교사들을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고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을 알린 자를 위협한 것이다. 부천서 성고문사건도 그의 손을 거쳐 은폐되고 줄어들었다. 이것이 '법비'의 기술이다. 법을 이용해 진실을 가리고, 법의 이름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인다.
노태우정권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서경원 방북 사건에서 김대중(1924~2009)이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을 조작하고, 강기훈(1964~) 유서대필 조작사건 등 공안 통치를 총지휘했다. 강기훈 사건은 1991년 분신으로 숨진 대학생의 유서를 강기훈이 대신 썼다고 조작해 한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다. 2015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4년 만이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는 '법의지배'라는 오래된 원칙이 있다. 법이 권력자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권력자가 법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칙을 뒤집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김기춘의 일생이 그 답이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될 때, 무고한 사람이 간첩이 되고, 물고문은 은폐되고, 선거는 조작되고, 예술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저항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총칼에는 맞설 수 있다. 그러나 공소장과 영장에는 어떻게 맞서는가.
영국도 법을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 한 시절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나라는 그것을 역사의 실패로 기록하고, 공개토론하고, 제도적 장치로 막으려 한다. 의회의 감시, 독립된 사법부, 언론의 자유가 그 장치들이다. 김기춘이 활개를 친 시대에 한국은 그 장치들이 하나씩 무너졌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았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 헌법을 뒤엎으려 한 그 밤, 나는 자연스럽게 김기춘을 떠올렸다. 유신헌법 초안에 손을 얹었던 젊은 검사. 초원복집 도청에도 살아남은 오뚝이. '왕실장'으로 군림한 노인.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제대로 된 단죄를 받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2025년 가을에는 KBO 한국시리즈 VIP석에 앉아 야구를 관람했다. 강기훈(1964~)이 24년을 억울하게 살아야 했던 그 시간 동안, 그를 조작한 자는 야구장 귀빈석에 앉아 있었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김기춘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그가 야구장 귀빈석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건재하다. 법복을 입고 헌법을 짓밟는 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법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이 그 이름을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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