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파시즘 전선은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장석준 칼럼] 프랑스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 90주년에 다시 맞이한 숙제

2월 26일에 실시된 영국 맨체스터 고튼앤덴턴 선거구의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녹색당 후보 한나 스펜서가 당선됐다(40.69% 득표). 맨체스터 같은 노동당 거점지역에서까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파 영국개혁당(Reform UK)의 승리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일단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결과였고, 그 승리의 주역이 현 집권당인 노동당이 아니라 녹색당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양당(노동당-보수당) 중심이던 영국 정치의 오랜 관성을 뒤흔드는 결과이기도 했다. '극우파를 막으려면 이제는 노동당이 아니라 녹색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던 녹색당의 선전논리가 실제로 먹혀들었던 것이다.

시야를 영국 바깥으로 확대해보면, 이는 작년 미국 뉴욕시장, 시애틀시장 선거에서 펼쳐진 이변과 궤를 같이 한다. 두 도시 다 민주당 주류가 오랫동안 시정을 이끌어왔는데, 이번에는 소속(미국식 정당에 '소속'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은 여전히 '민주당'이되 민주당 주류와 거리가 먼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시장에 당선됐다. 점점 더 노골적인 파시즘 행태를 보이는 2기 트럼프 정부와 민주 시민들 간의 대결이 치열해지는 미국에서 반트럼프 진영의 중심축이 민주당의 기존 주류가 아닌 비주류 좌파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할만한 결과였다. 몇 개월 뒤에 대서양 반대쪽에서는 고튼앤덴턴 보궐선거를 통해 이 양상이 반복된 셈이다.

이러한 반극우 연합의 중심축 이동이 과연 전 세계의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인가? 아직 확답하기는 이르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유일체제 내에서 주변적 소수파로만 취급받다 2010년대 들어 '좌파 포퓰리즘'이라 분류되기 시작한 세력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정치 무대의 중심으로 향하기는 한다. 그러나 기성 주류 정치의 장벽이 여전히 만만치 않으며, 좌파 도전세력 자신의 결함이나 미성숙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프랑스 지방선거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 좌파의 두 앙숙, 사회당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이 글을 쓰는 22일(일) 현재, 프랑스에서는 지방선거 결선투표가 실시되는 중이다. 프랑스는 하원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로 당선자를 가른다. 단, 다른 나라와 달리 1차 투표의 1, 2위 득표자가 자동으로 결선투표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며, 10% 이상 득표자는 모두 출마 자격이 있다. 따라서 결선투표를 앞두고 정당들 사이에서는, 통상적인 결선투표제의 경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경쟁과 연합의 게임이 펼쳐진다. 단순히 결선투표 진출자를 지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누구를 결선투표에 진출시킬지부터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15일에 있었던 1차 투표에서는, 정치 스펙트럼의 오른쪽보다는 왼쪽에서 훨씬 더 골치아픈 계산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왔다. 극우파 국민연합(RN)은 차기 집권 가능성 1위 정당답게 상당한 득표를 했지만, 결선투표에 진출한 지역이 소도시나 농촌으로 제한되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여당인 '르네상스(RE)' 등의 중도파연합 후보들은 기껏해야 각 선거구에서 4위 정도에 머물며 참패했다. 반면에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1위나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비좌파 후보는 모두 드골주의의 후예인 '공화파(LR)' 등의 우파연합 소속이다. 중앙정치와 달리 지방정치에서는 여전히 전통 우파가 상당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럼 반대쪽은 어떠한가? 2024년 6-7월 총선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좌파 쪽이야말로 복잡할 일이 없을 거라 짐작하기 쉽다. 전 세계에서 분열과 논쟁, 상호 경쟁이 가장 심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좌파 정치세력들은 이때 심지어 상당수 트로츠키주의자들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연합전선 '신인민전선(NFP)'을 발 빠르게 결성했고, 덕분에 원내 제1세력으로 당당히 부상했다. 이후 프랑스 좌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면, 이번 선거에서도 2년 전의 통쾌한 장면이 반복되겠거니 기대할 것이다.

한데 현실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멀다. 신인민전선은 둘로 쪼개졌다. 1990년대 이후 줄곧 공조해온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은 지금도 연합전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장-뤽 멜랑숑이 이끄는 급진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이하 LFI)는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사회당-공산당-녹색당은 LFI가 국민연합과 구별이 안 가는, 무책임한 반마크롱 대결정치를 펼치면서 신인민전선에서 이탈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LFI는 사회당이 마크롱 정부의 재정보수주의와 야합하면서 신인민선전을 깼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해석이 맞든, 광범위한 반파시즘-반신자유주의 연합전선을 전광석화처럼 구축함으로써 세계인을 놀라게 한 신인민전선이 일단 '와해'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인민전선의 와해로 가장 커다란 타격을 받을 세력은 멜랑숑의 LFI라는 게 중론이었다. 특히 중앙정치에서는 위축됐지만 지방정치에는 여전히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영원한 짝궁인 드골주의 우파처럼) 사회당과 그 연합세력이 지방선거에서 LFI에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더구나 2월에 리옹에서 극우 활동가 캉탱 드랑크가 LFI 당원을 포함한 좌파 청년들과 패싸움을 벌이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LFI에 대한 마녀사냥이 날개를 달았다. LFI를 극우 파시스트와 동급으로 놓고 비난을 퍼붓는 글이 우파부터 중도좌파까지 대다수 언론의 지면을 채웠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1차 투표에서 LFI가 거둔 성적은 예상 밖이었다. 물론 파리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1위나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범좌파 후보는 대부분 사회당-공산당-녹색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결선투표 진출 자격을 확보한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LFI 후보가 단독으로 10% 이상을 득표했다. 사회당과 그 연합세력들의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든 LFI와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툴루즈에서는 LFI의 프랑수아 피크말 후보(27.56%)가 사회당-공산당-녹색당 후보(24.99%)를 제치며 2위를 기록했다. 툴루즈의 중도좌파연합은 사회당 등의 전국적 방침에 구애받지 않고 결선투표에서 피크말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LFI를 고사시키려던 중도좌파와 주류 언론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다. 이제, 내년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범좌파는 다시 한 번 해묵은 반감과 질시를 잠시나마 내려놓은 채 냉정한 계산과 협상의 시간에 들어서야 할 처지다. 그러나 과연 2년 전 신인민전선의 드라마를 재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범좌파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현재 중도좌파의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사회당과 연합한 군소정당 중 하나인 '광장(Place Publique)'의 유럽의회의원 라파엘 글뤽스만('신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의 아들)이다. 현재 사회당을 이끄는 올리비에 포르 사무총장이 사회당 노선을 정통 사회민주주의로 되돌리려고 그나마 노력하는 것과 달리 글뤽스만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제3의 길'식 노선을 계승하려 한다. 또한 사회당 주변 정치인 중에서 가장 비타협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가자 학살을 '학살'이라 부르길 한사코 거부한다. 시오니즘 비판에 앞장서는 멜랑숑과는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입장이며,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LFI에 대한 마녀사냥에 앞장섰다.

그렇다고 멜랑숑을 무조건 옹호하기도 힘들다. 물론, 노동자들 앞에서 민중의 언어로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인용하고 작고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를 논하는 정치가, 언론의 흑색선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철학적 사색을 시적 산문으로 풀어놓는 저작(<민중이여, 바로 지금이요!: 21세기의 혁명(Now, the People!: Revolution in the Twenty-First Century)>, Verso, 2025)을 발표하는 정치가는 현재 지구상에 장-뤽 멜랑숑, 한 사람밖에 없다. 지난 세기의 거인들, 장 조레스, 레옹 블룸,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를 잇는 좌파 정치가가 21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사례랄까.

그러나 이런 멜랑숑에게도 커다란 결함이 있다.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사회당으로부터 급진좌파를 떼어내 독자 정치세력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 그의 비타협성이 지금은 LFI에게 무기이자 동시에 짐이 되고 있다. LFI 결성과 성장 과정에서 멜랑숑과 함께 한 다른 걸출한 좌파 정치가들(가령 프랑수아 뤼팽이나 알렉시 코르비에르)이 현재 하나같이 다 LFI 바깥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멜랑숑과 조금이라도 부딪히는 이들은 LFI 공천 명단에서 빠지거나 그 전에 당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 이런 결점이 멜랑숑과 LFI를 배척하는 선전전에 유용한 재료가 되고 있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대표 ⓒEPA연합뉴스

프랑스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 90주년에 다시 맞이한 숙제

올해는 프랑스에서 반파시즘 인민전선 정부가 등장한 지 90년이 되는 해다. 프랑스 노동대중은 옆나라 독일에서 1933년에 나치가 집권한 뒤 몇 달만에 좌파정당, 노동조합, 민주제도가 모두 박살나는 것을 목격했다. 1년 뒤인 1934년에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치세력들이 준동하자 노동자들은 사회당, 공산당과 노동조합들에게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그간 서로 싸우느라 바쁘던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 요구에 떠밀려 반파시즘 노동계급 연합전선을 결성했고, 여기에 중도파정당인 급진사회당까지 합세해 반파시즘 인민전선이 출범했다.

인민전선은 1936년 5월 총선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파시즘의 승리가 독일-프랑스 국경에서 일단 저지됐다. 노동자들은 이 승리를 기회 삼아 거의 모든 공장에서 점거파업을 벌였고, 이 파업을 마무리하는 노사협약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 전통문화'쯤으로 여기는 여름철 장기유급휴가 등이 처음 도입됐다. 이때 일들은 지금도 프랑스 노동계급의 전설 중 하나로, 그 찬란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며, 2024년의 신인민전선은 이 기억을 다시 불러내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에 동시에 맞서려 한 실험이었다.

오늘날 반파시즘 연합전선 정치의 부활이 필요한 곳은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다. 지구화-금융화된 자본주의가 훑고 지나간 모든 곳에서 다시금 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백년 전 파시즘의 재연이다. 이에 맞서려는 민주 시민, 노동계급에게 가장 믿을만한 참고 사례는 결국 백년 전 민중들의 반파시즘 정치다. 1930년대 프랑스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그리고 전쟁 중에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곳곳에서 전개된 대중적 반파시즘 연합정치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2년 전 프랑스인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 명철히 이해했다.

하지만 쉬운 과제는 결코 아니다. 서로 경쟁하고 심지어 대립하기까지 하는 정치세력들이 힘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쩌면 혁명 자체보다도 더 난해한 과업이다. 1930년대에도 그랬다. 러시아혁명의 충격이 강타한 지 불과 20여 년밖에 안 됐고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분열을 겪은 첫 세대가 정당이나 노동조합을 주도했기에 감정의 골과 의심의 벽이 지금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강했다. 그러나 어쨌든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압박이 있었기에 일단 '한 차례'는 반파시즘 연합전선이 성공했다.

이제 다시 한 번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한 세기 전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반파시즘 정치세력들 사이에 깊은 골이 파여 있다. 중도우파, 중도좌파는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관성에서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급진좌파는 대중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길 버거워 한다.

이 교착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왼쪽으로부터든 오른쪽으로부터든 기존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모험이 전개되어야만 한다. 기존 주류 중도파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의 일부에라도 손을 대려는 시도가 돌출하든가, 아니면 과감한 대중정치를 펼치려는 흐름이 급진좌파나 사회운동에서 출현해야 한다. 혹은 양쪽 모두에서 이런 돌연변이가 등장해 서로 만나야 한다. 새로운 역사는 기존 노선과 정책, 선택(그게 온건하든 급진적이든)의 상투적 연장이 아니라 이러한 돌발행동을 통해서만 열린다. 파시즘을 물리칠 연합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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