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9일, 전국 510개 시민단체가 모여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필자는 이 모임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을 해야 할 시점이다.
등록금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인식하고 있는 정치권은 서민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국가장학금Ⅱ유형을 포기하는 대신,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올해의 경우 3.19%) 내에서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대학이 지난 2월 9일 기준 전국 190개 대학 중 177개 대학(93.2%)이라는 보도가 있다. 각 대학들이 실제 그렇게 했는지 아직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동안 정부 정책에 의해 묶였던 등록금을 인상해야 교수·직원들의 임금도 인상할 수 있고 교육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학교 측 입장이다. 그러나 학생·학부모 측은 다르다. 한국대학의 경쟁력도 형편없고, 교육의 질이 높아지지도 않았는데 왜 등록금을 인상하려고 하느냐는 주장이다.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세계지도를 펴놓고 한 번 들여다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는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소액인 나라들도 있고, 등록금이 상당히 높은 나라도 있다. 2022~2023학년도 기준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튀르키예, 룩셈부르크, 벨기에,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국(스코틀랜드) 등이 앞의 그룹이고,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스페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이 뒤의 그룹에 속한다. 영국(잉글랜드), 호주, 뉴질랜드는 국가가 교육비를 우선 부담해 주고, 학생은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면 조금씩 갚아나가는 등록금후불제를 채택하고 있다.
왜 어떤 국가는 대학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데, 다른 국가는 개인이 부담하는가? 그것은 고등교육을 보는 각 국가의 시각과 관련돼 있다. 등록금이 높은 국가는 고등교육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개인이 대부분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개인에 부담시키고 있다. 대학 교육을 이수함으로써 개인의 인적자본이 커지고, 기대 생애 소득이 높아지기 때문에 당연히 수혜자인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대학 등록금을 부과하지 않는 나라들은 교육받기를 원하는 국민이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대학 교육의 수익을 국가와 지역사회가 더 많이 누린다고 보기 때문에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한국은 약 85%의 학생들이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공립대학보다 상당히 높은 국가가 많다. 이스라엘,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는 2배 이상 높으며, 호주, 일본, 한국, 루마니아 등에서는 2배에 이르지는 않는다. 운영 재원을 등록금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사립대학의 팽창은, 자칫 교육의 질 보장과 규제 감독의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등교육 체계가 계속 다변화됨에 따라, 정책 입안자들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접근성 확대, 교육의 질 보장, 재정적 지속 가능성 유지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튀르키예 등은 등록금도 없거나 아주 낮으면서 학생 지원도 많아 학생의 재정 부담은 적다. 이에 비해 호주, 영국(잉글랜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뉴질랜드, 미국 등은 등록금이 비싸지만 재정 지원 제도가 괜찮다. 그렇다고는 해도 학생들의 부채가 증가하여 졸업생 1인당 평균 부채가 영국(잉글랜드) 6만 달러, 미국 5만 달러를 넘는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부채의 노예가 되는 셈이다.
한국은 영국, 미국, 호주, 스페인 다음으로 등록금 수준이 높지만, 재정 지원은 크게 부족한 편이다. 대학 교육비는 4년치 등록금에다 생활비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중저소득층 자녀는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고, 주거와 숙식비 마련은 더욱 쉽지 않아 방값이 비싼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대학 다니기가 힘들다. 중저소득층의 대학 교육을 위해서 지방대가 꼭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좀 삐딱하게 말하자면, 저소득계층을 수도권 대학 또는 4년제 일반대학에서 몰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등록금이 하는 사회적 (역)기능이다. 그래서 사회 각계의 엘리트들은 갖가지 이유를 붙여 국가가 등록금을 부담하는 제도 즉, 무상교육제도를 배격하고 있다. 국민 세금(국가 예산)이 저소득층에게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자신들의 자녀에게 예산이 집중되도록 만드는 엘리트층의 전략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은 중고교 재학 시절 사교육 경쟁에서 고소득층 자녀들에게 밀려나 일단 상위서열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 이렇게 저소득층의 진학을 방해하는 1차 장애물을 뚫고 나면, 다시 생활비와 등록금이라는 2차 장애물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수도권 최상위 서열대학 진학의 꿈이 좌절되는 것이다.
등록금 제도가 유지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정책을 결정하는 경제 엘리트들의 출신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금·은수저 출신에다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 출신들이다. 국내 대학들과 비교를 할 수 없는 높은 교육비를 스스로 부담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이들에게 대학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라는 요청은 저소득층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일 뿐이다. 예산 절약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경제관료들은 대학 무상교육 요구에 성실하게 응하지도 않는다. 불합리한 요구라 여길 뿐이다. “장학금도 많은 요즘에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해!”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결국 저소득층 자녀들의 진학은 막히고 그들의 능력은 개발되지 못하고 사장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대부분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그녀)의 자녀들도 부모와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이에 비해 고소득층 자녀들은 영재로 키워지고 소위 명문대에 수월하게 입학한다. 그곳에서 온갖 지원과 혜택을 받고 졸업 후 만족도가 높은 일자리들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들의 자녀들도 부모의 길을 따라간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공식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됐다. 그래서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관료들, 언론계, 학자들 등 사회 엘리트들에게 '대학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대부분 등록금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구절벽 시대, 우리 사회가 가진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인간해방을 위해서라도 대학등록금은 이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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