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편지. 수신자는 부동산 노예들

[오찬호의 틈새] 대통령의 결단이 정서의 변화로 이어지길 희망하며

저는 33년째 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30년을 뜨거운 가마솥에서 지냈죠. 매일이 죽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영생의 몸에겐 허락되지 않았죠. 그래도 30년을 채우니, 다른 벌을 줍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쓰는 건데, 가마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종일 작성해요. 3년을요. 그러면 이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집니다. 자기가 살던 곳으로 편지 한 통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죠.

제가 있는 방은 부동산의 방입니다. 처음엔 없었다고 해요. 인류 역사에서 부동산으로 죄를 저지른 이들은 일반적인 기만의 방에서 벌을 받았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동산의 맥락이 심오해지면서, 같은 형벌을 줄 수가 없었다고 해요. 끝까지 자신은 잘못 없다면서 우기는 이들이 증가했거든요. 2000년대부터는 한국인이 엄청 많아져서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요. 다들 이것 때문에 지옥에 올 줄 몰랐다면서 불만이 엄청나죠.

대형 가마솥 하나가 이 공간의 전부예요. 당연히 물은 펄펄 끓고 있고요. 그 안에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리죠. 이 솥의 이름은 투기를 조장한 죄'예요. 한국인들은 절대로 수긍하지 않아요. 염라대왕 앞에서도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고 해요. 투기가 아니라 투자다, 설사 투기라 한들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말이죠. 심지어 "혹시 질투 나서 이래요?"라고 빈정거리며 노려보았다는 소문도 있어요. 하긴, 이승에선 흔한 말이었죠. 집값의 문제점을 짚는 칼럼에 달리는 댓글이 주로 이랬죠. "그러니까 당신이 가난한 거야!" 아니면 이런 말요. "이 사람 좌파예요."

가마솥에 빠지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평소 가장 많이 뱉었던 교란의 단어가 주홍글씨처럼 찍혀요. '시세차익'이 제일 많이 보이네요. 갭투자, 레버리지 어쩌고라면서 떠들면서 단돈 500만 원으로 상가 주인 되는 법, 1억으로 건물주 되는 법 따위를 자랑하던 사람들이 한 뭉치나 되네요. 아, 그걸로 강연하면서 떼돈 벌던 부동산의 달인 아무개도 있어요. 연예인들이 건물을 사서 시세차익 얼마를, 어떻게 남겼는지를 무슨 특종기사처럼 보도했던 언론 종사자들도 제법 보여요. 집값 떨어지면 급락, 오르면 호재라고 표현하길 서슴지 않는 기사는 무수했죠.

사실, 시세차익 자체는 건조한 단어죠. 하지만 한국에서 이 말은 평범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해요. 여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틀어지죠. 집을 시세차익을 반드시 남겨야 하는 자산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문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결의가 너무 강하니, 궐기가 너무 날카로워져요. 어떤 경우라도 집값이 올라야 한다는 강박은 이를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필사적인 혐오로 이어지죠. 이들은 미래 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무 같은 걸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저승이 있는 거 아닐까요? 모두가 그건 내 알 바 아냐라면서 산다면 끔찍하잖아요.

다음으로 보이는 단어는 '줍줍'입니다. 줄임말 신조어는 기성세대들이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이 단어는 그렇지 않죠. 줍줍 청약이니, 미계약 줍줍이니 등의 기사가 '잔여세대 무순위 청약'이 있을 때마다 넘쳐났으니까요. 잔여세대 청약 역시 건조한 단어 조합이지만, 줍줍에는 돈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왜 가만있느냐는 뉘앙스가 듬뿍 있지요. 사람의 심리를 교란하는 단어라는 거죠. 몇 년 전에 동탄 줍줍이라면서 난리 난 적이 있었잖아요. 로또라면서 294만 명이 신청을 했었죠. 이를 조금의 비판적 분석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올림픽 생중계하듯이 보도했던 기자들이 정말 많았어요. 다들 가마솥 안에 있어요.

사실 언론은 대중의 열광을 취재한 죄밖에 없겠지요. 끓는 물속에는 줍줍 후기 등을 퍼 나르며 대화를 주도했던 사람들도 많아요. 뭐, 그게 죄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차익이 얼마니, 피(P)만 얼마 붙는다는 등의 말들에 심하게 노출된 이들은 모두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요. 그래서 분위기 파악은 전혀 하지 않고, 무조건 그 이야기부터 해요. 누가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거나 그런 분위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살짝 드러내기만 해도 빈정거리죠. 부동산에 미치면 그렇게 되는 거죠. 중요한 건 미쳤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살면 많이들 미치더라고요.

▲2일 KB부동산 월간 주택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강 이남 11개구의 중소형(전용면적 60㎡ 초과∼85㎡ 이하) 아파트값은 평균 18억269만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다음은 집을 기어코 서열화해 수직적으로 분류하겠다는 의지가 과했던 사람들이에요. 이마에는 '급지'라는 단어가 선명하네요. 강남불패, 마용성 등의 단어를 세상 공용어처럼 사용한 이들이죠. 또 역세권, 초역세권, 더블역세권, 트리플역세권, 숲세권, 공(원)세권, (쇼핑)몰세권, 학군지, 초품아, 초코아(초등학교가 코앞인 아파트) 등을 몇 개 조합해서 어떻게든 이 아파트와 저 아파트의 차이를 드러내 위아래로 분류하려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대장아파트, 상급지 갈아타기 등의 표현이 지닌 경박성을 외면한 이들도 있어요. 대장이라뇨, 그럼 어떤 아파트는 부하 아파트인가요? 졸병이고, 노예인가요? 뭐, 중급지나 하급지란 말은 흔하고 흔하니 그 아래도 어찌 없겠습니까. 요즘은 '임장'이라면서 무리지어서 다니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허름하네, 가망이 없네 따위의 말을 툭툭 뱉는 근거가 이거죠. 그들은 이 행위를 무려 '공부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인들은 서열화에 너무 특화되어 있지요. 신축이니 구축이니, 분양이니 임대니 등으로 인식 회로가 돌아가는 건 너무 익숙하죠. 아파트가 촘촘하게 분류되면 이런 정체성들이 생겨요. 화성시 동탄동 사람들이 동탄과 화성은 다르다고 하는, 용인시 수지구 사람들이 수지와 용인은 다르다고 하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사람들이 송도는 인천이 아니라고 하는 정체성이요. 이 다름이 행정구역의 차이를 친절히 안내하는 건 아니겠지요. 우월감과 열등감을 순식간에 오갈 수 있는 아파트 서열화에 익숙해지니, 나와 저 아래가 어떻게 동급이냐는 자기방어적 강박을 감추지 못해서겠죠.

뭐, 훨씬 예전부터 강남 강북의 선명한 구분이 있었죠. 강남이라고 다 같은 강남인 줄 아냐는 조롱도 넘쳐났지요. 그러니 이런 무례한 상상도 흔하죠. 내 집 장만했다는 사람을 향한 '난 또 서울에 집 마련한 줄 알았네', '난 또 10억쯤 되는 아파트라도 산 줄 알았잖아' 등등의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이들이 꽤 많죠. 똘똘한 집 한 채 따위의 말들이 많아진 결과겠죠. 과해지면, 자연스레 아파트가 이렇게 보이겠죠? 똘똘하지 않은, 멍청한, 인생에 도움 안 되는 아파트로요. 빌라요? 아이코. 그건 가난한 사람들이나 사는 연립주택일 뿐이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오지 않을 기회가 있었어요. 본인 생각을 차분히 조정할 순간이 여러 번 다가왔었죠. 가치관을 바꿀 필요까지도 없었어요. 그저, 부동산에 대한 몰입을 약간이나마 정제해 사회 전체의 온도가 아주 약간만이라도 낮아지는데 동참하면 될 일이었어요.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어도 티를 좀 덜 내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처럼 해석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단호했어요. 내 집이 가격 오르면 좋은 거지 뭐가 잘못이냐면서 응수했죠. 노력해서 보상받는 거라는 논리도 거침없었죠. 열심히 산 결과라는 표현이 아파트 가격에 겹쳐져 조화롭게 해석될 때 사회에는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는 관심 밖이었죠. 사실, 대한민국 사람 전부죠. 그래서 편지를 작성했어요. 전부가 여기에 오면 안 되잖아요.

대통령이 칼을 뽑아 들겠다는 소식이 여기까지도 들려요. 그 결단이 좋은 정책으로 이어져, 제발 사람들의 정서가 변화되면 좋겠네요. 어디에 산다는 사람에게 거기 집값 올랐다는데 따위의 말로 대화가 시작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희망해요. 자신처럼 남들도 부동산에 환장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 좀 깨졌으면 해요. 이 엄청난 관성이 제어되지 않은 곳에선 아무리 좋은 부동산 정책도 공산주의, 사회주의 어쩌고의 수준 낮은 이념적 공세를 피하지 못해요. 아, 이걸 빠트렸네요. 가마솥 한가운데 가장 뜨거운 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요. 정치인들이거든요.

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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