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선정위원회는 이미 한전이 다 정해놓은 판"…주민들 "관련 법률 개선 시급"

국가기간전력망 건설 사업 과정에서 한국전력이 입지선정위원회(입선위)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며 주민 참여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입선위가 송전망 경로를 '조정'하는 수준으로만 운영돼 주민 대표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3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열린 '국가기간전력망 입지선정위원회 민주적 운영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정책토론회'에서는 한전 중심의 입선위 구조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토론회는 △안호영 국회의원 △전북도의회 초고압송전선로대책특위 △용인반도체국가산단재검토와초고압송전탑건설반대전국행동 △송전탑건설백지화전북대책위 △전북환경운동연합 등이 공동 주최했다.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이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신승원 송전탑반대진안군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입선위는 이미 정해진 한전의 사업계획 안에서만 논의가 가능하다"며 "주민은 실제 정책결정의 당사자가 아니라, 결정된 결과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원장 선출도 한전이 추천한 전문가 중에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어 주민대표의 결정권이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며 "주민이 추천한 전문가를 포함해 제도 자체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이목 완주군송전탑반대대책위 부위원장 역시 "입선위는 출발점부터 한전이 시점과 종점을 정해놓고 원을 그린 ‘고정된 틀’ 안에서만 논의가 진행된다"며 "이 방식으로는 주민 수용성을 얻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전이 운영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사실상 마음대로 입선위를 주도하고 있다"며 "위원 선정, 회의 절차, 의결권 범위를 명확히 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부위원장은 특히 송전탑 선호도 조사와 관련해 "조사를 통해 선로를 결정해야 하다면 내가 작성한 선호도 조사표가 어떤 선로를 그리는지 알아야 하는데 한전이 개인별 선호도 조사표를 받아가서 다음 회의 때 '여러분이 작성한 조사표를 AI컴퓨터에 돌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광역 대역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결정 과정에 대해 주민들이)한전을 믿을 수 있는가. 한전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형규 송전탑건설백지화남원대책위는 "매번 입지선정위원회가 있을 때마다 분노가 치밀고 치욕스럽기까지 한다. 입선위는 한전의 책임 면피용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한전과 용역사가 이미 정해놓은 판에서 ‘주민의 결정’을 가장하는 기만적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구조에서는 주민이 참여해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며 "전원개발촉진법과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를 근본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이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토론회 참석자들은 입선위의 본래 목적이 '사회적 갈등 예방과 주민 피해 최소화'임에도, 현실에선 '한전 주도의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입선위가 사업자의 손에서 벗어나 주민참여형 합의기구로 재편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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