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전기 실험을 세상에 알린 퀘이커 천 장수, 피터 콜린슨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씨앗 한 톨로 세계를 바꾼 18세기 중개인

런던에서 천을 팔다가 세계 과학사를 뒤바꾼 사람이 있다. 대영제국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18세기, 낮에는 천 장사, 밤에는 정원사, 그리고 틈나는 대로 세계 과학계의 우체부 노릇을 하던 사나이. 바로 피터 콜린슨(Peter Collinson, 1694-1768)이다.

천 장수의 역설

콜린슨은 런던 그레이스처치가에서 대대로 천을 팔던 퀘이커 집안에서 태어났다. 퀘이커라는 게 참 묘한 종교다. 전쟁은 반대하고 평등은 외치면서도 장사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집단이었다. 문제는 당시 퀘이커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는 것. 영국국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콜린슨에게 그딴 건 문제가 아니었다. 돈 벌어서 전 세계 식물을 사 모으면 그만이라는 배짱이었다.

콜린슨의 천재성은 장사와 취미를 완벽하게 결합했다는 데 있다. 가업인 천 장사가 북아메리카와 무역을 하니, 그 길을 따라 씨앗과 식물이 움직였다. 1730년대에 그는 미국의 식물학자 존 바트럼(John Bartram, 1699-1777)과 손을 잡는다. 미국 최초의 식물원을 만든 인물이다.

사업 모델은 간단했다. 영국 귀족들로부터 연간 구독료를 받고, 바트럼이 보내는 아메리카 식물 씨앗을 나눠주는 것. 오늘날로 치면 '식물 정기구독 서비스'다. 60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는데, 페트르 경(Lord Petre, 1713-1742)은 자기 저택에만 미국산 나무를 4만 그루나 심었다. 숲이 아니라 아메리카를 통째로 옮겨 심은 것이다.

덕분에 영국 정원에 목련, 진달래, 수국 같은 식물이 등장했다. 콜린슨이 도입한 식물만 200종이 넘는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영국 시골정원 풍경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이 퀘이커 천 장수 덕분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번개를 병에 담은 사나이를 도운 사나이

콜린슨은 1728년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이 되면서 유럽 과학계의 핵심 연결고리가 된다.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 1660-1753, 대영박물관 설립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aeus, 1707-1778, 생물 분류법 창시자), 필립 밀러(Philip Miller, 1691-1771, 첼시 식물원 원장)...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콜린슨이 과학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따로 있다.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전기 실험을 세상에 알린 일이다.

1746년, 콜린슨은 프랭클린에게 유리관 하나를 선물한다. 그런데 프랭클린이 미쳐버렸다. 실험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는 편지를 보냈다. 콜린슨은 프랭클린의 실험 결과를 왕립학회에서 낭독했고, 1751년에는 책으로 출판한다.

당시 왕립학회 몇몇 양반들은 프랭클린의 이론을 비웃었다. 식민지 출신 인쇄공 주제에 무슨 과학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콜린슨은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했다. 프랭클린은 전기의 양극과 음극 개념을 정립했고,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밝혔으며, 피뢰침을 발명했다. 만약 콜린슨이 없었다면? 프랭클린의 발견은 필라델피아 어느 창고에 박혀 있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앞서간 생태학자

콜린슨은 또한 시대를 앞서간 생태학자였다. 당시 오하이오강 유역에서 발견된 거대한 뼈가 멸종한 고대 동물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에 "신이 창조한 생물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웠다. 하지만 콜린슨은 과학적 증거를 믿었고, 이 발견을 왕립학회에 두 차례나 보고했다. 나중에 이 뼈의 주인공이 마스토돈(mastodon)임이 밝혀졌다. 마스토돈은 제3기 마이오세에서 플라이스토세에 걸쳐 번성했던 고대 동물로, 코끼리와 비슷하게 생긴 멸종한 포유류 동물이었다.

콜린슨은 새들의 이동에 대해서도 남다른 통찰을 보였다. 당시 많은 사람이 겨울이 되면 제비가 연못 밑에서 동면한다고 믿었다. 물속에서 겨울을 난다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콜린슨은 새들이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아는 철새 이동의 과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결의 힘

콜린슨의 가장 큰 유산은 '연결'이다. 그는 평생 수천 통의 편지로 유럽의 과학자들과 아메리카의 연구자들을 이어주고, 씨앗과 책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린네가 그를 기려 말발도리(Collinsonia canadensis)라는 향기로운 약초에 학명을 붙였다. 콜린슨 자신이 세계를 향기롭게 만든 약초 같은 존재였으니까.(말발도리는 수국과 말발도리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떨기나무다. 산기슭이나 계곡의 바위틈에서 주로 자생하며, 봄철에 피는 작고 하얀 꽃이 매우 아름다워 정원수나 조경수로 인기가 높다.)

콜린슨은 토마스 코럼(Thomas Coram, 1668-1751)의 고아원 설립 운동을 지원했고, 필라델피아 도서관에 책을 보내주었으며, 아메리카 식민지 농부들이 새로운 작물을 실험하도록 격려했다. 돈 버는 데만 관심 있는 장사치가 아니었다. 지식이 인류를 구원한다고 믿었던 계몽주의 시대의 진정한 실천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콜린슨 자신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존 포더길(John Fothergill, 1712-1780)은 바트럼이 거의 콜린슨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썼다. 린네에게는 "선생님의 새 분류체계는 너무 어려워서 교수들 말고는 아무도 식물학을 공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는 학문의 대중화를 원했고, 보통 정원사들도 과학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오늘날의 교훈

오늘을 사는 우리가 1768년에 죽은 퀘이커 천 장수한테서 배울 게 뭘까? 많다. 첫째,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콜린슨은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인맥으로 세계를 바꿨다. 둘째, 중개자의 힘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적절한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셋째, 장벽을 넘어서는 협력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식민지와 영국본국, 상인과 학자, 퀘이커와 왕립학회...콜린슨은 온갖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을 나눴다.

1768년 8월 11일, 콜린슨은 밀힐의 자택에서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런던 버먼지의 퀘이커 묘지에 조용히 묻혔다. 하지만 그가 심은 씨앗들은 아직도 자라고 있다. 영국 시골의 목련 나무마다, 철새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마다, 번개가 칠 때마다 건물을 지키는 피뢰침마다, 그리고 지식을 나누려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콜린슨은 살아 있다.

천 장수가 된 덕에 세계를 누볐고, 식물을 사랑한 덕에 정원을 가꿨으며, 호기심이 넘친 덕에 과학자들을 연결했던 이 겸손한 거인. 그는 자기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된다. 피터 콜린슨은 천 팔아 번 돈으로 식물을 사고팔았지만, 결국 그가 거래한 건 희망이었다.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정원, 더 밝혀진 진리에 대한 희망 말이다.

▲피터 콜린슨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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