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성공회대 명예교수)는 한국 인권사회학을 대표하는 학자다. <인권의 문법> <인권의 지평> <인권의 최전선> <인권 오디세이> 같은 저작과 <거대한 역설> <전지구적 변환> <세계인권사상사> 를 비롯한 여러 번역서로 한국 인권 담론의 지평을 넓혔다. '인권의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담론을 생산한 인권 이론가로 조효제를 앞설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이력을 지닌 인권사회학자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사회생태학자로 거듭났다. 그렇게 거듭나는 과정에서 산출한 저작이 <탄소 사회의 종말>(2020)과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2022) 그리고 얼마 전 나온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2025)다. 이 세 종의 저서는 조효제판 '사회생태위기 3부작'을 이룬다.
어쩌다 '인권사회학자'는 '사회생태학자'로 탈바꿈한 것일까? 새 책(<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에서 저자가 밝힌 바를 보면, 그 변신이 오래전에 기획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2008년 '기후위기가 인권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는 유엔인권이사회의 발표를 접하고 기후생태문제에 관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때 움튼 관심이 오랜 성장의 시간을 거쳐 열매를 맺은 것이 이번 저서를 포함한 '3부작'이다. 첫 저작(<탄소 사회의 종말>)에서 '기후와 인권'을 다룬 것부터가 생태위기를 빼놓고 인권 문제를 온전히 풀어갈 수 없다는 저자의 생각을 보여준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인권 담론이 보편적 지평을 확보하려면 생태 사유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가 인권사회학에서 사회생태학으로 행로를 확장한 것은 단순한 학문적 변신이 아니라 사유가 제 논리의 길을 따라 깊어지고 넓어진 결과임이 분명하다.
새 책은 3부작의 완결편답게 '사회-지구시스템의 전환'이라는 큰 주제를 통괄한다. 그런데 책의 서술 형식을 보면 주제의 무게와 달리, '사회생태위기'라는 우리 시대의 난제를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쓰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 책이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 교양서‧안내서로 읽히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눈높이를 낮춘 저자의 배려 속에서도 시대의 근본 문제를 붙잡아 거시적으로 드러내려는 학자의 야심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큰 주제를 총체적으로 그려내 보이려는 의지가 책갈피마다 배어 있다. 이 거시적 총체성이야말로 이 책의 특징이자 성취다. 그런가 하면 거시적 총체성은 시민의 일상적‧정치적 실천 문제로 이어지는데, 총체와 구체의 이런 통합적 서술 방식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을 이룬다.
그런 거시적 총체성의 뼈대를 보여주는 말이 '문명전환', '근대의 이중과제', '변혁적 중도'라는 개념이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의 담론 활동으로 생명력을 얻은 이 개념들은 이 책의 주제를 싣고 시작과 끝을 관통한다. '문명전환'이란 우리 시대가 '탄소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큰 전환을 이룰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음을 가리킨다. 이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말해 파괴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넘어 '포스트자본주의적 생태문명'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문명 자체가 붕괴하는 막다른 상황에 도달할 우려가 크다.
'근대의 이중과제'는 이 붕괴의 위기 앞에서 인류가 지혜롭게 문명전환을 이루어내려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함을 가리킨다. 그 하나가 '근대 적응'이며 다른 하나가 '근대 극복'이다. 민주‧인권‧평등‧자유와 같은 근대 문명이 달성한 모든 긍정적 성과를 지구 전역에 보편화하는 것이 '근대 적응'의 내용이라면, '근대 극복'은 자본주의적인 수탈과 착취를 비롯해 근대 문명이 빚어낸 모든 부정적 결과에서 지구 전체가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이중과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이 '변혁적 중도'다. '문명전환'이라는 거대한 인류사적 도약을 감행해 나갈 때 필요한 중용의 정치적 전략이 '변혁적 중도'다. 중간에서 절충한다는 뜻의 중도가 아니라, 변혁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내건 채로 중심을 잡고 왼쪽과 오른쪽을 아울러 나아가는 정치적 기획이 '변혁적 중도'다. 그리고 여기에 저자는 '녹색 민주시민'이라는 실천 주체를 끌어온다. 변혁적 중도를 실행하는 정치적 주체가 바로 '녹색 민주시민', 곧 생태문명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민주시민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녹색 민주시민'으로 깨어나게 하는 원대한 전망을 담은 책이자 그렇게 깨어난 '녹색 민주시민'이 요구하는 구체적 행동과 실천의 방략을 담은 책이다.
이런 드넓은 시야에서 저자가 우리 시대의 '사회생태위기'를 조망하는 인식의 틀로 제시하는 것이 '사회-지구시스템'이다. '사회-지구시스템'이란 '사회시스템'과 '지구시스템'이 한데 맞물려 들어가는 동조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 풀어 쓰면, 불평등을 비롯한 인간사회의 온갖 체제적 문제가 지구환경이 맞닥뜨린 근원적인 생태위기 문제와 뗄 수 없이 엮여 일종의 단일 체제가 됐음을 뜻하는 말이다. 생태위기가 계급‧인종‧성별‧국가 사이 불평등을 키우고, 불평등의 증가가 지구 차원의 생태위기를 가속하는 오늘의 사태를 설명하는 틀이 '사회-지구시스템'이다.
인간사회의 문제와 지구환경의 문제를 분리해서 보는 종래의 통상적 시각으로는 이 새로운 사태를 해명할 수 없다. 지구라는 행성과 그 행성의 주민 전체를 단일한 '사회생태계'로 보는 '사회-지구 시스템'의 시야를 확보하지 않고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지구 생태계가 자기조절 능력을 잃고 무너지면 인간사회도 끝장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가 커지면 지구 생태계도 해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권도 생태와 분리될 수 없다. 인권이 보편적으로 보장된 세상을 만들려면 지구 생태를 살려내는 정의로운 싸움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 사회생태위기를 극복할 주체, 곧 '녹색 민주시민'에게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일까? 언뜻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자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세계관'이다. 일상의 실천 지침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세계관의 변화다. “구체적 정책은 낮은 단계의 개입이다. 높은 단계의 세계관을 바꾸는 것, 즉 '올바른 견해의 정립'이 위기를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새로이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생각과 행동의 바탕이 되는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변화의 원동력임을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관'이란 '인간과 지구를 서로 연결돼 서로 의존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로 보는 눈,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동창조와 공동진화의 파트너십으로 보는 눈'을 뜻한다. 이런 눈이 열릴 때 어떤 정책이 필요하고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 그런 눈을 갖출 때 세상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향해 뛰어들 용기도 더 쉽게 낼 수 있다.
'지구를 구하지 않으면 인간도 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구하지 않으면 지구도 구할 수 없다. 인간과 지구가 공동의 터전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생체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우리 문명은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런 세계관을 마음에 품으면 '행복'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도 달라진다. 행복이란 인간의 삶이 추구하는 가장 높은 목적이다. 여기서 저자는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디이모니아(eudaimonia)' 곧 '좋은 삶'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세계관의 변화가 '좋은 삶'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좋은 삶'이 아니라 비인간 자연에도 동시에 적용되는 '좋은 삶'이 진짜 '좋은 삶'임이 드러난다. 인간만이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라 비인간도 함께 행복하게 사는 좋은 공동세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겐 더 추상적이고 더 높은 비전이 필요하다.” 즉각 효과가 나오는 실천과 방책을 강조하는 이 시대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주장이다. 높은 비전을 가슴에 품어야 조급한 마음이 빚어내는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치지 않으려면 큰 뜻을 품어야 한다.
같은 관점으로 저자는 '자유'도 재해석한다. 자유는 인간의 자유를 넘어 모든 존재의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 동물과 식물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각자의 품성과 소양대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유, 곧 '생태적 자유'다. 인간과 지구를 아우르는 생태적 자유를 실현하려면, '인간해방 집단과 자연해방 집단의 상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인간사회의 해방'에 참여해온 집단과 '자연환경의 해방'에 참여해온 집단이 서로 관점을 바꿔서 보아야 한다. 사회시스템의 변혁과 지구시스템의 변혁은 함께 이루어야 할 동시적 공동 과제다. 인간과 자연이 '사회-지구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이상, 인간의 해방도 자연의 해방도 '공동 해방'의 방식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이런 거대한 세계관의 변화와 함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문명전환을 가로막는 세력을 명확히 보고 그 세력과 정확히 맞서는 실천적 인식과 태도다. 그런 인식과 태도는 사회과학에서도 관철돼야 한다. 다시 말해 중립적인 용어를 구사하는 사회과학의 관행을 넘어서야 한다. 인간과 지구를 망치는 세력을 '사악한' 세력이라고 '대놓고'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인홀트 니부어는 <빛의 자식들과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저작에서 소수 기득권층에 이로운 사회구조를 유지하려는 집단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부르고, 공동선에 도움이 되는 사회구조를 지지하는 집단을 '빛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니부어의 이런 명명이 사회과학의 범례가 돼야 한다. 인간과 지구의 삶을 망가뜨리는 '어둠의 자식들'에 맞서 공동선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녹색 민주시민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밝히는 '빛의 자식들'이다.
그런 빛의 자식들의 선명한 인격적 표상이 생태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일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툰베리와 함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저지하러 떠난 '글로벌 수무드 함대'를 불러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말 '수무드(sumud)'는 '견고함‧충실함‧의연함'을 뜻한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듯한 행동이지만, 툰베리 함대의 의연한 싸움이야말로 문명파괴 세력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는 담대한 저항 행위다. 지구 시민의 의지를 드러내는 이런 '표출적 행동'이 세상을 깨우고 세상을 바꾼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이 담긴 책을 쓰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깨어남을 부르는 '표출적 실천 행위'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호연한 비전으로 우리 시대의 거대한 장벽을 뚫고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를 살리는 새로운 공동 문명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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