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무보고가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형식만 놓고 보면 참신함이 두드러진다. 대통령 앞에서 각 부처의 정책 방향과 준비 수준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공직자들의 책임성이 국민 앞에 노출되는 초유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세세한 정책 내용까지 포함하여 직접 묻고 지적하는 장면은 행정부 운영 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예기한다.
그러나 형식의 혁신이 반드시 내용의 혁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업무보고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인상을 남겼다. 생방송이라는 외피 속에서 드러난 것은 교육개혁의 청사진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정책의 나열과 핵심을 비껴간 발언들이었다.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이나 '대인배'니 하는 한국어 오용 같은 지엽적 문제였다. 그것이 교육부 업무보고의 중심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의 언급으로 주목 받았지만 회의를 이끄는 화법이었을 뿐, 대통령 자신도 여기에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언론을 통해 그런 소소한 장면이 부각하는 사이에 정작 한국교육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혁정책의 부재라는 문제점은 통째로 가려졌다.
그동안 진행된 부처별 업무보고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의지와 부처의 문제의식이 얼마나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지에 따라 보고의 밀도가 달라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어떻게 이 정부의 핵심의제를 담은 정책을 제시하느냐가 업무보고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교육부와 국교위는 부처 가운데서도 하위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빛의 혁명'이라는 사회적 동력을 통해 출범한 정부의 교육부라면 마땅히 구상해야 할 한국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도 정책방향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실현목표로 내세운 5대 목표, 즉 △헌법가치를 실천하는 교육 △모든 학생들을 위한 AI 교육, △학교와 대학이 지역균형 성장 뒷받침 △기본이 튼튼한 교육지원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 가운데 구조적 문제와 유관한 것은 그나마 지역균형 성장 뒷받침이다. 그러나 보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정책 추구라기보다 일종의 구호처럼 여겨질 정도로 핵심을 피하고 있다.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수도권 중심으로 고착된 대학서열체제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과열된 대학입시경쟁이다. 이 고질적 문제로 인해 초중등교육은 입시 준비 과정으로 왜곡되고 사교육 시장의 팽창으로 공교육의 기능이 훼손돼왔다. 이것이 단순히 좁은 의미의 교육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국가 전체의 위기 상황과도 이어져 있다는 점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한국 사회 특유의 극심한 경쟁풍토가 초저출산율과 지역 소멸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며 그 풍토를 낳은 근원에 대학입시 과열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조차 대학입시 경쟁 과열의 핵심 요인으로 수도권 집중과 초저출산율을 지목하는 연구보고서를 냈겠는가!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이나 국가교육위원장의 보고 내용에는 이 문제 자체가 지워져 있다. 서열체제 완화와 수도권 집중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없고 따라서 정책 방향의 제시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 부문의 책임을 맡은 수장들인 이 두 인물이 과연 교육정책의 대전환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언급 가운데 이 같은 교육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대목이 있다. 수능에 대한 질문에서 이 대통령은 "오해를 살 수 있다"면서도 추첨으로 선발하는 외국 사례를 거론하고,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과열 경쟁이 해결되지 않는 한" 소용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 지적에는 과열 경쟁의 해소가 한국 교육 문제 해결의관건이라는 정당한 인식이 실려 있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엉뚱하게도 "오지선다 시대가 아니라는 데 상당한 합의"가 있으며 국가교육위원회와 협의하여 입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는 대통령의 지적에 담긴 교육 문제의 핵심 사안을 회피한 꼴이며 교육부나 국가교육위원회가 이 문제와 씨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울대와 국립거점대의 예산 격차 문제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노출된다. 대통령은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출이 서울대와 거점국립대가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물었으나 장차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을 뿐더러 '차이의 누적' 운운하며 핵심을 피해갔다. 오히려 "산업화 시대에 큰아들에 몰빵" 한 것이라는 대통령의 비유가 더 현실에 근접한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선택과 집중'의 이름으로 서울대 중심, 일류대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에 재정지원을 몰아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같은 정책 방향이 오늘날 지방대의 궤멸과 지역소멸의 국가위기로 치닫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향후 4년간 거점국립대에 4조의 예산을 더 투여하여 격차를 줄이겠다는 대답으로 그쳤다.
이 예산 배정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제시한 공약에 따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기획은 일류대 중심주의에 매여 있을뿐더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9개 거점국립대에 서울대의 70%에 해당하는 교육예산을 그야말로 '몰빵'하게 되면, 지방의 대다수 여타 대학들, 특히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지방 사립대의 대거 몰락이 앞당겨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통령의 어법을 빌리자면, 둘째 셋째 격인 거점국립대에 재정을 몰아주면, 산업화를 맨 밑바닥에서 버텨주던 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가부장제 비유에서 지방 사립대들이 처한 상황은 그런 딸의 처지와 흡사하다.
이 같은 한계는 대학입시경쟁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서도 엿보인다. 과열경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입시제도의 어떠한 변화도 의미 없을 것이라는 인식 자체는 옳지만, 그같은 경쟁과열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통령 자신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원인이 서울 중심의 과도한 서열체제에 있음은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데 대통령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이재명 정부가 교육부문에서 일부 개선을 넘어선 구조개혁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또 그런 역량이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물론 생방송 업무보고라는 형식 자체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형식을 통해 드러난 것은 교육개혁 과제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유보적 태도와 회피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내란 극복, 권력구조 개편, 경제 활성화가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이고, 이 영역에서 대통령의 강점이 발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불평등과 대학서열체제라는 기득권 구조를 끝내 방치하고서는 진정한 교육개혁도 없거니와 지방대의 궤멸 추세를 막기 어렵다. 교육개혁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최종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교육정책의 실패는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이 정권의 핵심의제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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