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인 위원장의 취임과 함께 제2기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출범한 지 3개월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교육의 중장기적 정책방향을 세운다는 목적으로 설치된 대통령 직속의 첫 국교위는 '식물위원회'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설립 때부터 조직 구성이 지연되고 집행 권한도 없이 교육부와의 업무 구분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리더십 문제까지 겹쳐 제1기 국교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비아냥을 받아왔지만, 그런 비야냥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다.
지난 3년간 300억의 예산을 쓰면서 59차례의 회의를 하는 동안 국교위는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이런 혈세 낭비 기구라면 새 정부에서 정부조직으로 유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차정인 위원장이 출범식에서 국교위의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제시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제2기 국교위는 출범 직후부터 위원회의 구조정비, 특별위원회 개편, 거버넌스 재설계 등 이를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출범 이후 지난 3개월 가까운 행보를 지켜보면 제2기 국교위가 과거의 실패를 딛고 본연의 책무를 감당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제1기 국교위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제1기 국교위 실패의 원인을 단순한 지도력의 부재나 운영 미숙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국교위가 예산 낭비 기구로 떨어진 것은 정부조직으로서 출범 시부터 가지고 있던 한계가 지도력의 부재 때문에 악화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교위는 세 가지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첫째, 권한의 부재 내지 비대칭성으로 인한 한계다. 국교위는 중장기적인 교육정책의 방향을 세우는 기구로 설립되었지만 교육정책의 수립과 시행 및 재정편성과 집행 등 모든 권한은 교육부가 그대로 유지했다. 결국 국교위는 교육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자문기구로 전락했고 국교위의 논의나 제안은 어떤 실행력도 없었으며 어떤 실질적 정책변화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둘째,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 구조적 특성이 오히려 한국 교육의 핵심문제에 대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입시경쟁 과열과 사교육 팽창 그리고 그 근원인 수도권 중심의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개혁은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의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원만한 합의를 통한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원천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합의제 모델을 도입한 것부터가 이 기구의 동력에 발목을 잡았다.
셋째, 그같은 근본적 한계 때문이겠지만, 운영에서도 난맥상을 드러냈다. 제1기 국교위는 지나치게 많은 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하고 특위마다 20명 내외의 위원들을 동원하여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켰다. 특위는 스무 개에 육박할 정도로 방만해진 채 소모적인 회의만 거듭했을 뿐 어느 특위도 실질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제1기 국교위가 종료되면서 상임위원 중 한 명이었던 정대화 위원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국교위 1기 3년은 국교위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비판한 바 있다. 제1기 국교위는 '교육정책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끝없는 논의의 장'에 머물렀고, 조직·예산·권한 등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차정인 국교위의 지향과 예상되는 문제
그렇다면 제2기 국교위를 이끌어나갈 차정인 위원장의 이 문제들에 대한 인식과 처방은 무엇인가? 제2기 국교위 출범 이후, 차정인 위원장은 취임사를 비롯한 여러 발언을 통해 제1기의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의 발언과 조치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그 각각의 의미와 문제를 짚어보자.
△국교위의 정상화 지향
차 위원장은 국교위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국교위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제1기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했다는 반성과 문제의식을 공식적으로 표명힌 셈으로 국교위를 재정비하여 실질적인 교육정책 방향 제시와 교육부와의 조정을 주도하는 기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교위의 기능과 위상에 대해서는 새 정부 들어서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본연의 기능이 실제로 살아날 수 있을 만큼의 법적 재정적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그 의지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위 구조 개편 시도
차 위원장은 제1기에서 난립하던 특위 문제를 지적하며 특위 숫자를 조정하고 기능 재편을 추진해왔다. 현재 제2기의 특위는 애초 5개 특위(고교교육특위, 대학입학제도 특위, 영유아교육특위, 고등교육 특위, 인재강국 특위)에 4개 특위(AI시대 교육특위, 학교공동체 회복 특위, 민주시민교육 특위, 인문사회 특위)가 추가되어 9개의 특위가 조직돼 있다.
제1기에 비해 핵심과제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하나, 여기에 추가하여 또 다른 특위들에 대한 신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실제로 기존의 12개 수준의 특위 수에 근접한다. 이같은 세부적인 특위 방식의 운영이 방만한 논의와 다양한 의견들의 표출에 그치기 쉬운 것은 제1기의 실패가 말해주는 바다. 국교위의 구조적 한계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제2기 또한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대학구조조정 및 고등교육 재편 주도 의지
차 위원장은 "대학 구조조정과 고등교육 체제 개편을 국교위가 주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사실 이 과제는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구상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국교위라면 마땅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신설된 '고등교육 특위'의 기능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기에서도 특위가 없어서 이 과제에 대해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다. 정대화 상임위원이 위원장을 맡은 "대학의 격차해소 및 균형발전 특위"가 바로 그것이나 스스로 자백하다시피 식물위원회로 머물렀다.
문제는 국교위에는 법적으로 예산배정권도 대학 구조조정에 개입할 행정적 권한도 없다. 다만 교육부와 기재부가 결정한 고등교육 재정 프레임 내에서 의견을 제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이같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고등교육 부문에서 국교위는 실질적인 대학체제 개편보다 정부의 공약사항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뒷받침하는 일에 치중할 공산이 크다.
△사회적 합의 모델 재설계 시도
차 위원장은 "합의제 구조는 유지하되,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모델이 지나치게 확장적·비현실적이었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그러나 사교육, 입시, 대학서열 같은 '핵심 갈등의제'가 합의제 모델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설사 이 문제들에 대한 합의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더라도 기득권의 이해당사자들이 포진해 있는 국교위 차원에서 무슨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난망해보인다. 정권 차원의 결단이 없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2기 국교위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2기 국교위는 리더쉽의 교체로 민주적 운영과 인적 쇄신 및 내부정비를 통한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제1기와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지만, 그 구조와 권한의 한계는 여전하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제1기 국교위가 한국 교육의 가장 시급하고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대학체제개편과 수도권 중심의 서열체제와 과열 대입풍토 및 사교육 시장 팽창에 대한 대처에 무력했다면 제2기 국교위라고해서 그 과제를 감당할 역량이 갖추어진 것은 아니다.
국가 위기로서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로 인한 지방대의 대규모 폐교 사태가 가시화한 시점이어서 그 무기력은 더 부각할 소지조차 있다. 무엇보다 이같은 핵심적인 국가적 과제로서의 교육문제는 정권 차원의 강력한 의지와 집행이 동반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국교위는 구조적으로 합의와 조정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갈등을 관리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개혁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추진'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차정인 국교위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물론 특위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교육분야의 과제들 가운데는 국교위가 할 수 있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가령 유아교육 분야의 유보통합 문제라거나 고교교육 분야의 고교학점제 등 핵심과제는 아닌 현안들에 대한 조사와 여론 수렴 및 의견 제시가 그것이다.
국교위라는 국가기구의 가장 큰 목적은 중장기적 교육정책의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며, 그 작업은 서열체제와 사교육 문제 등 한국 교육의 핵심사안을 회피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제2기 국교위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교육개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서열구조 재편, 입시경쟁 조절, 사교육 억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사회 국가적 요구가 정권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충실한 자료와 심도 있는 논의를 토대로 한 강력한 정치적 압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와의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선도해야 할 기관이 교육부를 보조하고 뒷받침하는 데 머문다면 그 존재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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