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치권은 이미 선거의 시간표 위에 올라와 있다. 후보군이 거론되고, 캠프가 꾸려지고, 지지 세력이 결집한다.
그러나 선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고 조용하다. 정치가 흥분할수록, 시민은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본다. 이 간극이 지금 선거를 둘러싼 가장 큰 현실이다.
정치에 가까운 사람들, 선거를 오래 지켜봐 온 사람들은 유권자를 하나의 ‘진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편으로 기울어 있는지, 결집할 수 있는 표가 얼마나 되는지, 조직표는 어떻게 움직일지를 먼저 계산한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에서는 그 후보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응원의 대상’이 된다. 비판은 내부 단속의 대상이 되고 문제 제기는 종종 배신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수의 일반 유권자는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에 특별히 관계가 없고, 캠프와도, 조직과도 연결돼 있지 않은 시민들은 누군가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 후보의 모든 행동과 발언을 응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말 한마디, 태도 하나, 현장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보고, 그 축적된 인상이 선택으로 이어진다. 유권자의 선택은 충성이 아니라 판단에 가깝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쉽게 박수받는 장면이, 거리의 시민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지자 모임에서는 열광하지만, 일반 유권자의 눈에는 특별히 잘한 일로 보이지 않는 장면. 내부에서는 전략적 발언으로 소비되지만, 시민에게는 책임을 회피하는 말로 들리는 한 문장. 이 차이가 반복해서 쌓일 때 정치와 유권자의 감각은 점점 더 멀어진다.
시민이 바라는 선거는 구도의 승패가 아니다. “우리 동네가 조금 나아질 수 있는가”, “이 사람이 정말 우리의 불편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출퇴근길 정체, 아이 돌봄의 공백, 장사의 어려움, 병원 이용의 불편 같은 아주 구체적인 삶의 문제 앞에서 후보자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더 오래 기억된다. 공약집보다 말투가, 슬로건보다 표정이, 기자회견보다 현장의 뒷모습이 더 많은 판단을 만든다.
정치권은 여전히 ‘지지층’을 중심에 놓고 선거를 설계한다. 그러나 실제 당락을 가르는 힘은 그 바깥에 있는 다수의 조용한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SNS에서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집회에도 자주 나서지 않는다. 대신 투표함 앞에서는 냉정하다. 이들이 보는 것은 진영이 아니라 사람이고, 구도가 아니라 태도다.
특히 젊은 유권자층은 더 그렇다. 완벽하게 포장된 이미지보다 솔직한 실패를, 공격적인 언어보다 설명하는 태도를 더 신뢰한다. 상대를 깎아내려 얻는 박수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얻는 공감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정치공학적으로 계산된 발언이 아닌, 준비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가 오히려 표심을 움직이는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박수를 듣고 있는가.” 캠프의 박수인지, 지지자 조직의 환호인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다수 시민의 마음인지.
시민이 원하는 선거는 싸움의 장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다. 비난보다 설명을, 공격보다 책임을, 구호보다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듣고 싶어 한다. 정치의 계산표 위에서는 큰 성공처럼 보이는 장면이 시민의 일상 위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장면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
정치는 늘 시민을 말하지만 정작 시민의 방식으로 말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러나 선거는 결국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시민의 판단으로 끝난다. 누가 더 크게 소리쳤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시민들의 삶에 다가왔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선거. 지금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런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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