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만에 윤석열이 우리 사회를 망쳤다

[오찬호의 틈새] 한 줌도 안 되는 극우의 성장

2024년 12월 3일,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갔다. 그래야지만 해야 할 일을 온전히 다 했다는 기분에 맘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을 어제처럼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려는 찰나, 첫째가 방에서 급히 나오며 비상계엄 이야기를 꺼낸다.

피식 웃었다. 유튜브 좀 그만 보라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려는데 둘째가 자기도 확인했다며 묻는다. 계엄이면 학교 안 가냐고. 만우절도 아닌데 장난 그만 치라고 하는 순간, TV에서 속보라고 적힌 빨간색 자막을 보았다. 윤석열이 있었고, 말했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는 새벽 1시 1분까지 꼼짝 않고 뉴스만 봤다. 강아지 배변이 담긴 검은 봉지가 내 옆에 있는 줄도 몰랐다. 결의안 가결 뒤에야 다음날 일정을 걱정하며 서둘러 잠을 청했지만,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는 황당함 때문인지 몇 시간을 뒤척였다. 그때는 솔직히, 윤석열은 계엄도 대강 하네라면서 욕하기 바빴다. 그의 수준이 뭐 이 정도 아니겠냐면서 빈정거리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일상이 다음날 수면 부족 정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는 선에서 상황이 종료된 건 천운이었다.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가능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자. 세상에, 이런 추상적인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한다. 그게, 전원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움직여지는 건가.

뇌가 계엄에 분노한다고 해서, 다 국회로 달려갈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설사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 군경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소극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로 사람들이 모였다. 모였다고 저항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총 든 군인과 마주한다면 더 주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총 든 군인이 앞에 있었기에 시민들은 온몸으로 막았다. 이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역사가 도왔다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고 표현만 할 뿐이다. 기적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 ⓒ연합뉴스

극우가 침투하고 있다

윤석열이 가르쳐 준 교훈이야 차고 넘칠 거다. 보스 기질, 형님 리더십 따위의 평가가 얼마나 철 지난 말인지를 몸소 증명한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런 투박한 남성성의 소유자가 앞치마 두르고 김치찌개 끓이고 계란말이 만드는 걸 소통이랍시고 포장하는 언론의 관성적 게으름은 어떠했는가. 윤석열은 장군들 불러놓고 폭탄주 마셔가며 비상계엄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도, 재판 내내 그 폭탄주 함께 마셨던 부하들조차 책임지지 않겠다는 한심함을 보였다. 이토록 완전히 실망인 정치인이 언제 있었던가 싶다.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역사가 기록해야 한다.

윤석열이 정말 나쁜 정치인인 건, 단지 본인이 무능하고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는 폭력적인 색깔론에 대한 집착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이 사회에 끔찍한 그림자를 구체적으로 출몰시켰다. 그래서 대통령의 자리란 너무나 중요한 거다. 잠시라도 그 위치에 있었던 사람의 말씨만으로도, 한 줌도 안 되는 극우세력들이 한 줌 이상의 모습으로 꿈틀거렸다.

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가끔씩 이스라엘 국기를 동시에 들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흔드는 수준이 아니다. 1년 사이, 동네 곳곳에 침투했다. 여기저기에 해괴망측한 현수막을 걸고, 괴상한 서명을 받는다. 대학생 극우단체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는 건, 강의실 안에서도 괴상한 주장이 토론이랍시고 허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은 어떤 집단에나 존재한다. 그래도 1~2년 전까지는, 웬만해서는 내가 생활하는 반경 내에서는 만날 일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아니다. 학교, 회사, 동호회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 함께 서 있는 무리들 중에도 있다. 그들은 수면 아래에 있지 않다. 때를 보다가 불쑥불쑥 물 위로 나타난다.

중국과 관련된 이슈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때다. 그들은 반일, 반미 시위하듯이 반중 시위를 할 뿐이라지만 중국의 정책에 항의하고 지도자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수준이 아니다. 온갖 조롱의 단어를 나열하고 거짓뉴스로 선동한다. 짱개, 친중 공산화, 선거조작, 중국간첩, 유괴, 납치, 장기적출 그리고 차이나 아웃까지. 명명백백 혐오의 시위다. 이런 행태도, 하나의 무리가 서울 어디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바이러스처럼,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이제, 전국 어디서든 보수 관련 집회에 혐중 구호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 무리는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커질까. 최근 조사를 보면 결코 과한 우려가 아니다. <시사IN>과 한국리서치의 공동조사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다("4년 전과 달라진 혐중 정서 분석해보니"- 2025. 11. 26. 949호). 혐오를 전면에 내세운 반중 시위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6%였다. 중국인 대상 혐오 발언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경우는 41%였다. 절대 가벼운 수치가 아니다.

고의적으로 차별적인 문항도 제시됐는데, 결과는 처참하다. '6개월 이상 국내 거주 외국인은 건강보험 가입 가능'을 설명하고 중국인만 건강보험 이용을 제한하자는 의견에 무려 63%가, 중국인만 외국인 투표권을 주지 말자는 의견에는 64%가 동의했다. 심지어 중국인 범죄자는 다른 외국인 범죄자보다 엄히 처벌하자는 노골적인 물음에도 34%가 찬성했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라는 '말도 안 되는' 문항이었는데도, 감추지 않는다. 그러니 이 결론에 이른다. 국내에 있는 중국인을 추방하자? 21%가 찬성한다. 다섯에 한 명이라, 이 정도면 '추방'을 입에 달고 사는 트럼프가 한국에서도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여론이 엄중한 국민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오염된 대중의 강박인지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단체가 19일 오후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반중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거리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제대로' 사과해야

그리고 모든 결과에서 국민의 힘 지지자들의 수치는 평균치보다 높았다. 특히 혐오를 앞세운 반중 시위가 정당하다는 인식이 무려 62%로 평균(36%)을 압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동의 비율 24%보다 2.5배 이상 높았다. 그러니 저런 시위 현장에서 '윤어게인'이라는 구호는 여지없이 등장한다. 국민의 힘이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한 결과라고 하지만, 절연하지 않으려고 했으니 당연한 거다. 윤석열은 씨앗을 뿌렸고 국민의 힘은 성실하게 물을 뿌렸다. 간헐적으로는 극우와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등장하지만, 국민의힘 타이틀을 건 집회 장소에서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윤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모앙새다.

1년 전에는 그저 윤석열의 모습에 화가 났을 뿐인데, 지금은 윤석열의 그림자가 여전히 자욱함에 커다란 절망감을 느낀다. <시사IN> 조사에서는 여러 문항에서 모두 반중 정서를 드러낸 집단을 혐중 집단으로 봤는데, 이 규모가 7%였다. 30명에 2명이라면, 이는 소수일까? 그리고 이 7%가 더 늘어날 징후가 곳곳에 있으니 참담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따져야 할 거다.

윤석열의 사과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진심이겠는가. 하지만 국민의힘은 '제대로' 해야 한다. 공당 아닌가. 공동체 안의 존재하는 정치활동 조직이 혐오를 연료 삼아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계엄을 사과하고, 탄핵에 미온적이었던 당의 태도를 반성하고, 윤석열과 완전히 절연하고, 극우를 악착같이 공론장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전 세계에 불고 있는 극우의 광풍이 한국을 빗겨나갈 거다. 계엄 청산은 여기까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당을, 공당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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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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