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로 현지 활동을 다녀왔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최소 6만 8000여 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살해됐다. 팔레스타인을 처음 가본 이들이 목격한 팔레스타인 민중을 숫자와 자료가 아닌 삶과 이야기로 풀어낸다. 네 차례에 걸쳐 기고를 싣는다.
지난 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대략 경기도의 한강 남쪽 정도의 넓이지만 이스라엘이 여러 방법으로 통행을 막기 때문에 체감 넓이는 더 넓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이곳 사람들이 베푼 환대다. 친족, 고아,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꾸란의 가르침이 아니었어도 이 사람들은 타고난 낙천성으로 낯선 이방인을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랜 친구의 환대, 알리의 초대
'제닌'은 큰 난민캠프가 있는 서안지구 북쪽의 도시이다. 이스라엘은 건국이라고 부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재앙이라고 부르는 1948년 이스라엘의 강제점령 때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정착한 곳이다. 유엔의 난민캠프가 설치됐고 그 뒤로 지금까지 이 캠프를 중심으로 한 저항이 거세게 이어져 왔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저항의 수도'라는 제닌의 별명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이런 자부심이 제닌만의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에는 곳곳에 난민캠프가 있고, 어디나 저항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도시마다 저마다의 자랑이 있다고 한다.
제닌에 도착한 날, 이스라엘이 도로를 뜯어내 울퉁불퉁해진 길을 달려 알리가 마중을 나왔다. 10여 년 전에 낯선 길에서 헤매고 있는 어느 한국인을 차로 데려다 준 인연으로, 우리 활동가 동료와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오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알리가 가족들과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아파트지만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환대 문화는 집안 분위기에도 보인다. 언제라도 환영과 자랑을 섞어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집은 멋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 그림과 가족사진으로 따뜻하게 꾸며져 있다. 거실에 둥그렇게 놓인 소파와 테이블은 앉을 자리가 식구 수보다 더 많다. 집 꾸미는데 많은 정성과 비용을 들이기 때문에 결혼이 힘들어진다고 할 정도란다.
알리의 어머니가 우리를 식사에 초대했고, 도착한 우리를 맞으셨다. 일행 모두와 차례로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며 이름을 묻고 인사를 나눴다. 내 차례가 됐을 때는 자연스럽게 건너뛴다. 어른 남자인 나와는 그냥 눈인사. 예상했지만, 살짝 올리려던 손을 슬그머니 어색하게 내려놓았다.
남자끼리는 악수도, 포옹도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낯선 사람과도 악수가 흔하다. 시장 같은 데서 마주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연스레 손을 올리면 상대방도 악수로 응한다. 나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포옹은 약간의 눈치가 필요한 절차다. 만나서 살짝 손을 올릴 때 상대방의 반응을 빠르게 판단하고 껴안아야 한다. 애매할 때는 그냥 과감히 먼저 악수든 포옹이든 제스쳐를 취하면 틀림없이 받아준다.
상대가 낯선 사람이든 친한 사람이든 다들 인사하는 걸 좋아하는 느낌이다. 지나가는 우리를 불러 "왓츠유어네임"나 "하우아유"를 외치기도 한다. 2층에서는 손이라도 흔든다.
식사는 푸짐했다. 나는 전에는 이곳을 아라비안나이트 속 사하라사막의 모험담이나 멀고먼 '열사의 땅'에서 노고가 많은 사우디건설노동자를 위로하는 가요무대 사회자 멘트 속의 얘기로만 들었다. 그런 내 눈앞에 푸짐한 음식들이 보란 듯이 놓였다. 쌀, 빵, 올리브, 토마토, 오이, 당근, 양파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들이 주된 식재료다. 오렌지 같은 감귤류는 정말 흔하고 달콤하다. 팔레스타인은 '레반트의 식량 바구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농업의 땅이다. 함께 어울려 살던 유목민들의 전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양고기, 닭고기도 푸짐했다.
맛있기도 하고 권하기도 하니 주는 대로 먹다가 금방 배가 꽉 찼다. 더 먹으라는 어머니의 눈빛을 슬쩍 피하고 권유를 못 들은 척 외면하다가 결국은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급하게 아랍어를 배웠다. "라, 슈크란." (아니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배를 만지기.
식사가 끝나고 온 식구들과 둘러 앉아 커피를 마셨다. 차를 비우면 계속 따라 주기 때문에 역시 "라, 슈크란"이 필요했다.
무슬림으로 둘러싸인 제닌의 기독교, 부르킨 교회
제닌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됐다는 교회가 있다. 예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열 명의 환자를 고쳐주는 기적을 행했다는 곳에 세워진 부르킨 교회다.
남성이 아니라면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종교는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어서인지 내가 특별히 더 의식하게 되는 일은 오히려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인사말이나 감탄사를 주의 깊게 들으면 알라라는 말이 종종 들린다. 또 "앗쌀라무 알라이쿰"도 자주 듣는다. '당신에게 평화를 기원한다'는, 아름다운 인사다. 아랍의 인사말은 그 밖에도 아주 많다. 아침 인사, 저녁 인사, 공식적인 인사, 친근한 인사, 만날 때 인사, 헤어질 때 인사…. 나도 여러 가지 외워서 갔다. 근데 나같이 순발력이 부족한 사람이 막상 그걸 가려 쓰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다 잊고 "마르하반"만 남았다. 그냥 아무 때나 써도 되는 인사란다.
여성들의 히잡에서, 돼지고기를 찾아볼 수 없는 식당 메뉴판에서, 어디서나 꼭 들리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낭송, '아잔'에서 내가 이슬람의 땅에 와있다는 실감을 했다. 마을 곳곳 모스크에서 동시에 울리는 아잔은 여느 종교경전의 낭송처럼 경건했다. 나블루스에서 아침에 도시를 내려보며 들은 아잔은 활기찼고, 아름다운 시골 세바스티아에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들은 아잔은 쓸쓸했다.
부르킨 교회에는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작은 예배당을 둘러보고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피해 신앙 공동체를 지키려고 숨어서 예배를 봤다는 동굴교회에도 내려가 봤다. 그러고는 정원에 앉아 쉬는데, 교회 성직자가 우리에게 음료와 과자를 권했다. 아랍의 환대는 단것에서 시작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어디를 가나 음료와 과자를 권한다. 음료는 커피이거나 탄산음료, 주스다. 과자는 아주 다양한데, 맛은 하나같이 모두 달다.
정원에서 과자의 단맛을 보고 있는데, 외국인을 구경하려는 동네 아이들이 문 앞에 몰려왔다. 한 녀석이 소리친다. "왓츠유어네임?" 그리곤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교회 분이 뭐라 뭐라 외치며 아이들을 몰아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야, 무하마드 왜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떠들어, 저리 가지 못해?" 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개구쟁이들이 손님께 폐 끼치는 걸 말리는 동네 아저씨다. 무슬림에 둘러싸인 기독교 공동체도, 거리낌 없이 그냥 이렇게 어울려 살고 있었다.
이유 없는 친절, 길에서의 만남
야경을 보기 위해 갔던 사마 나블루스라는 공원에서 물담배 파는 가게의 소년과는 금방 친해졌다. 열 살 남짓해 보였던 소년은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마치 자기 친구처럼 대했다. 맹랑하게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를 따라 해보라며. 다음 날 마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역시 아이였구나 싶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취학률은 매우 높아 거의 모든 아이가 학교에 다닌다. 낮에 일을 하거나 방치되어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학령기 아이는 볼 수 없었다. 대학진학률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자랑한다.
알-칼릴(헤브론) 길거리에서 팔라펠을 먹고 있는 우리 일행에게 어느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시며 다가와 막대사탕을 하나씩 나눠준 일도 있었다. 얼떨결에 사탕을 받고, 내가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선뜻 돌아서서 떠나시는 것도 재미있었다.
헤브론에서 시장 구경을 하던 우리를 불러들여, 자신의 집을 보여준 나이든 하맘 주인도 있었다. 최소 500년은 됐음 직한 오래된 튀르키예식 공중목욕탕이었다. 공사 중이었는데, 다 끝나면 호텔로 영업을 하겠다고 했다. 아저씨가 직접 공사를 하고 있어서 끝나려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 날이 정말로 오길 바랄 뿐이다.
담담한 일상 속 치열함
사람들의 일상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치열함도 담겨 있었다. 알리의 따뜻한 가정에서 차를 마시다가, 우리가 바로 전날 본 다큐멘터리 영화 <제닌 제닌>에 나온 난민캠프의 열정 어린 투사가 알리의 처제라는 걸 알고 놀랐다. 한국에 유학했던 인연으로 우리를 재워줬던 이브라힘의 집 벽에 패인 자국은 이스라엘군이 쏜 총탄의 흔적이었다. 튀르키예 목욕탕의 뒤 쪽 창문은 이스라엘 거주지로 나 있었고, 지나던 어린 이스라엘 여성은 창문을 닫으라고 소리치며 나이든 목욕탕 주인에게 위협적으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치열한 일상을 친절한 웃음과 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 내가 본 오늘의 팔레스타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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