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11월 14일에 '한미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가 발표됐다.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지만, 한국이 "핵추진 공격 잠수함(이하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는 데에 미국이 승인하고 협력하기로 한 것을 최대 성과로 일컫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은 우리의 자체적인 역량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 여부와 그 수위가 더 큰 변수이다. 엄청난 비용과 혼란을 초래하면서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한국이 원하는 방식은 소형원자로와 선체는 한국에서 제작하고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발표 이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모델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점을 직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설명자료에는 미국이 "연료 조달 방안 등 사업의 요건을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사용 핵연료 공급은 민수용을 전제로 한 원자력협정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원자력법(AEA) 및 핵비확산법(NNPA)은 고농축 우라늄 및 재처리 기술의 해외 이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 적용을 받으려면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공급하기로 한 AUKUS(호주·미국·영국 안보협정, 오커스)의 경우에는 미 의회의 검토를 거쳐 '2024년 국방수권법(NDAA)'에 별도의 조항을 입법화하는 방식으로 의회의 승인 절차를 갈음했다.
이에 따라 한미 핵추진 잠수함 협력 프로세스도 '한미 정부의 공식적인 선언→한미원자력협정과 별도의 안보협정 협상과 체결→미국 의회의 승인→핵연료 공급계약 체결'의 순서를 밟을 공산이 크다. 참고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오커스의 경우에는 37개월이 걸렸다. '한미 핵잠수함 협력 협정'(필자가 붙인 가칭)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법적 효력을 갖는 협정 체결은 2028년 말이나 2029년 초에나 가능해진다.
'K-핵잠 모델'은 오커스보다 훨씬 지난한 과정을 잉태하고 있다. 잠수함 선체를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더 큰 쟁점이 부상할 수 있다. 핵잠수함 핵심 장비인 소형원자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정부는 자체 개발·제작을 희망하고 있지만, 앞으로 미국이 이 방식에 흔쾌히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이 원자로를 제작하고 미국이 핵연료를 공급하는 방안은 미국 법규 및 국제 규범인 핵비확산 기조와 상당한 긴장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커스는 이를 의식해 미국이 핵연료를 장착한 원자로를 '봉인형 모듈' 형태로 판매하고 이 모듈의 수명이 다하면 회수하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이 방식을 채택한 사유는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규범을 '우회'하려면 핵연료의 통제권을 미국이 100% 가져야 한다는 판단에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원자로 제작+미국의 핵연료 공급'을 기본틀로 하려는 'K-핵잠'은 오커스 모델과 크게 다르다. 한국이 핵잠용 원자로를 개발·제작하려면 미국이 공급한 핵연료에 대해 접근·분석·투입·검증 등 일련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럴수록 미국 행정부의 협조 및 의회의 승인 문턱은 높아지고 만다. 오커스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한미 간의 협의가 본격화되면 미국은 '봉인된 모듈' 판매를 제안할 공산이 크다. 행정부 내 이견을 해소하고 의회의 승인을 받으려면 이 방식이 우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설사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협조하더라도 더 큰 관문이 도사리고 있다. NPT에선 비핵국가의 핵물질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IAEA는 이를 사찰할 의무와 권한을 갖는다. 그런데 핵잠수함용 핵물질은 '군사용'으로 분류되고 NPT와 IAEA에는 군사용 핵물질을 감시·사찰하는 기재가 없다. 이에 따라 'K-핵잠'이 순항하려면 IAEA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오커스는 미국이 핵연료에 대한 100% 통제권을 갖는다는 점을 앞세워 IAEA의 양해를 받아내려 한다. IAEA 사무국은 양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이사국은 이사회 차원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아직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 'K-핵잠'은 어떨까? 일단 NPT 회원국이자 비핵국가가 외부에서 핵연료를 공급받고 자체적으로 원자로를 제작해 운용한 사례가 없다. 이에 따라 한국이 원하는 방식이 이뤄지려면 감시·사찰을 포함한 검증 문제를 놓고 IAEA와 별도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 협상에 성공하더라도 IAEA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할 공산이 크다. 오커스보다 핵확산의 우려가 크다는 의견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35개국으로 구성된 IAEA 이사회에선 합의를 원칙으로 하되, 이견이 있을 경우엔 일반 의결사항은 과반수로,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3분의 2의 찬성을 요한다. 사안의 성격상 'K-핵잠' 방식은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또 하나의 지렛대를 쥐게 된다. IAEA와의 협의 및 승인의 어려움을 이유로 '핵연료+원자로=봉인된 모듈' 형태로 한국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한국의 대미 종속성은 심화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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