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추진 잠수함 위협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국 잠수함이 북한 항구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출항하는 북한 핵추진 잠수함을 추적하고 유사시 격멸하는 것이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필요성과 관련해 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 핵 고도화의 방편 가운데 하나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핵잠수함 개발을 공표한 상황이기에 이런 주장은 상당한 소구력을 지닌다. 은밀성과 생존성, 장기간의 잠항과 고속 유지 능력, 그리고 막강한 공격 능력을 두루 갖춘 핵잠수함은 그야말로 '비밀 전략 병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핵잠수함이 지닌 이러한 군사적 장점이 치명적인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한반도의 안보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과 조선은 하늘·땅·바다를 맞대고 있는 이웃이면서도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우발적 충돌과 교전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핵잠수함 경쟁은 위기 구조와 성격이 다른 무기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것처럼, 조선 핵잠수함의 전력화되어 수중에서 작전을 수행하면 한국 내에선 언제든 핵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질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발사될지도 알 수 없고 요격하는 것도 매우 어려워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도 핵잠수함을 도입해 매복·추적·격멸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위기관리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핵잠수함 운영의 투명성과 상호신뢰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핵잠수함 출항은 위기의 증폭제가 될 수 있다. 조선의 핵잠수함 출항이 핵공격 예비 징후로 간주될 수 있듯이, 한국의 핵잠수함 출항이 조선 항구 매복 작전 등을 위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오판일 수 있다. 문제는 핵잠이 이러한 오판을 유발하는 데 탁월한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막강한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장시간 잠항할 수 있기에 상대가 언제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대의 핵잠수함이 사라질 때마다 위기관리의 어려움 속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양측이 상호 사전 통보, 핫라인과 실시간 통신망 유지, 상호간 신호관리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과 소련은 핵잠수함 경쟁을 벌이면서도 핫라인 협정, 해상충돌방지협정, 핵사고 통보 협정, SLBM 제한 등 다양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선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2018년 12월 이래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대화 재개마저도 아득한 상황이다. 이 상황이 타개되지 않고 핵잠수함 경쟁마저 벌어지면 남북관계 회복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하여 양측 당국에 필요한 덕목은 심사숙고이다. 허망하고도 위험한 경쟁심을 내려놓고 서로가 핵잠수함 운용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핵잠수함이 바다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전쟁 위기에 몸서리쳐야 할 미래에 대한 경고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이 장착된 핵잠수함을 보유하면 핵 억제력의 핵심인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조선의 핵잠수함이 항구를 떠날 때마다 조선의 안보 불안도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만다. ‘믿음직한 핵억제력’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의도하지 않은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통제하기 어려운 무기체계’라는 뜻이다.
이재명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면 조선을 비롯한 외부의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자주국방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핵잠수함을 보유해 운용에 들어가면 '코리아 프리미엄'은 짓눌리고 '코리아 리스크'가 부각되고 만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평화가 경제"라는 언명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이재명 정부가 최소한 '조건부 철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조건은 조선의 핵잠수함 개발·건조의 철회를 의미한다. 조선과 미국의 협상이 재개되면 '제한' 대상에 조선의 핵잠수함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저서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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