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지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 정권들도 이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 대통령이 이 사업의 동의 및 협력을 요청하고 미국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 적은 처음이다. 나는 앞선 글에서 이 사업 추진에 신중해져야 이유를 대략적으로 쓴 바 있다.
한미 정상의 의기투합(?)으로 핵잠수함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까? 한미 대통령의 결단 및 국민적 열망과 지지에 힘입어 장밋빛 그림을 그리기 쉽지만, 우리 앞엔 첩첩산중이 기다리고 있다. 사업 착수에서부터 전력화까지 10년 안팎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이보다 앞에 있는 '첫 관문'부터 길고도 험하다. 본 글에선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은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는 것이었고 트럼프는 한국의 핵잠수함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핵연료 공급 승인 여부는 추후 협의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용 핵연료 이전은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미국이 핵잠수함에 사용하는 연료는 '무기급 우라늄', 즉 U-235가 90% 이상이다. 이를 한국에 공급하려면 기존의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별도의 안보협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해 AUKUS(호주·미국·영국 안보협정, 오커스)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호주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상태이다. 그런데 핵잠수함 보유를 위해 별도의 안보협정을 체결했다. 원자력협정은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것인 반면에, 핵잠수함 협력은 '핵의 군사적 이용'에 해당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협정은 협상부터 체결 및 미국 의회의 동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오커스의 예를 보자.
미국·영국·호주 정상들은 2021년 9월에 오커스 출범을 선언했다. 그 이후 18개월간의 협의를 거쳐 핵잠수함 도입 방안, 비확산 안전장치 마련, 법률 검토 등을 마쳤다. 그 이후에는 군사기밀 보호, 기술이전, 산업협력 등의 세부 내용 및 법률화를 협의했고, 2024년 3월에서야 3국 대표가 협정에 서명했다. 오커스 선언부터 체결까지 2년 6개월이 걸린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국 의회 승인이라는 또 하나의 절차가 남아 있었다. 오커스는 조약이 아니라 협정이어서 의회의 동의를 거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핵 관련 기술이나 소재·부품·장비가 해외로 이전되려면 의회 승인 절차가 필수적이다.
오커스에 대한 의회의 승인 절차가 완료된 때는 2024년 10월이었다. 총 37개월이 걸린 셈인데, 이마저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국제법적으로나 미국 국내법적으로도 핵잠수함 이전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다.
'한미 핵잠수함 협력 협정'(필자가 붙인 가칭)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법적 효력을 갖는 협정 체결은 2028년 말이나 2029년 초에나 가능해진다. 조선(북한)·중국·러시아 등의 반발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를 차치하더라도, 이 사이에는 미국 중간 선거와 대선이 있다. 미국 정치의 향방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은 제도화와 건조, 그리고 전력화를 포함해 10여년은 족히 걸린다. 이렇게 장기간이 걸리는 사업에, 그것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사업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형 무기사업은 상당한 기간과 비용을 요한다. 그런데도 핵잠수함 도입은 유별난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 자체적인 역량보다는 미국의 협조 여부가 더 큰 변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트럼프가 어음을 주고 현금을 받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대한 대미 투자 및 다량의 미국제 무기를 비롯한 제품 수입을 약속받고는 이 대통령이 요청한 핵잠수함의 패는 본인이 계속 쥐려고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한미 핵잠수함 협력 협정'은 미국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속도와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이에 집착할수록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계속해서 청구서를 남발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핵잠수함을 필리 조선소에서 만들라고 하지 않는가?
핵잠수함 도입에는 대통령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군사강국', 특히 '자주국방'의 열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미관계의 현실은 한국이 핵잠수함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대미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부의 재고를 거듭 요청하는 까닭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저서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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