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납치, 감금, 고문 등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렸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잔혹한 범죄 사건이 한국인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일차적 충격이었고, 그러한 일이 단지 몇 명에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점은 더욱 큰 놀라움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충격적인 사건에 이목이 집중되고, 그곳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더욱 뜨거워졌다. 누군가는 사기로 돈 버는 일인 줄 알고도 간 것이라 비난하고, 혹은 그 곳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판단력을 문제 삼는다. 몇몇 정치인은 깊이 있는 고민 없이 그저 대중의 감정적 시원함을 끌어내기 위해 발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많은 청년이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해외로 향했다는 사실, 그중 상당수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점은 이미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구조들의 작동을 보여준다. 몇몇 언론에서는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의 고용 절벽을 지목한다. 전체 고용률과 다르게 청년 고용률은 최근까지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취업을 포기한 30대 인구도 늘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은 '떠나야만 생존 가능한 구조'에 내몰려 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이 일부 청년들을 위험한 선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실제로 이번 캄보디아 범죄에 연루된 이들 상당수가 비수도권 중소도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지역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은 부인할 수 없다. 양질의 일자리는 개인의 안정되고 충만한 삶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고, 사회 전반과 통치의 안정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이전, 산업단지 조성, 투자 유치 등 흔히 시도되는 일자리 대책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단발적, 개별적 조치로는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비수도권 지역의 일자리 부족 또한 역사적으로 축적된 구조적 불평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전략에 따라 국토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농어촌은 산업적 우선순위가 낮다는 이유로 희생되었고, 성장의 이익은 도시와 산업 중심지에 집중되었다. 일부의 희생은 국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대가로 간주되었으며, 이 불균형은 공간적으로 고착되었다.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편드는 모양 없이 가치중립적인 기준으로 보이는 효율성과 경제성 논리를 내세우면서 희생으로 위축된 공간의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일자리 문제를 말하지만, 이는 일자리에 한정하지 않는다. 비수도권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한 수도권 중심 발전 구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언급한 국가 차원의 발전, 경제 성장, 효율성, 경쟁과 같은 사회의 작동 원리는 지역 불평등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캄보디아 사건과 연결된다. 국가가 경제 성장과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사회에서는 사회보장체계가 왜곡되고 불완전하게 구축된다. 국가는 시민의 삶을 보호하기보다 시장을 활성화하고, 자본을 촉진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그 가운데 개인의 위험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개인의 인식, 가치, 행동 양식도 그 구조에 적합하게 맞춰졌다. 각 개인은 위험에 맞서고자 경쟁적으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거나 선택한 결과로 여겨지며 낙인 찍힌다. 구조적 문제가 개인 차원으로 환원되는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 돌봄의 가치는 희미해지고, 개인의 취약성은 더 커진다. 구조적 위험에 홀로 맞서는 개인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의 폭은 필연적으로 좁아진다.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 투자 혹은 투기는 경제적 생존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정부조차 이를 권장한다. 대통령이 부동산 대신 주식에 투자할 것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자본이 자본을 증식하는 행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한편, 주거, 돌봄, 의료, 교육 등 생존의 기반이 시장에 맡겨진 사회에서 노동 소득만으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노동을 통한 생존의 문턱은 높아지는 반면, 위험한 대안들에 대한 문턱은 낮아지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연루자가 대부분 청년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범죄 조직의 주요한 타겟이라는 점이나 디지털 활용 능력 등의 요인들이 있겠지만, 이들이 특히 앞서 언급한 구조의 영향에 취약한 집단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쟁과 각자도생의 논리를 내면화하며 사회에 진입했지만, 공고한 불평등 구조 앞에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공동체적 연대나 조직적 운동을 통한 사회 변화를 경험할 기회는 적었고, 불안정한 삶의 구조 속에서 취약한 선택을 강요받았다.
따라서 이번 캄보디아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특정 범죄 사건으로 볼 수 없다. 지역 불평등, 경제 성장과 시장 중심의 국가 운영, 불완전한 사회보장체계, 각자도생의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하나의 사건으로 발현된 것이다. 개인의 선택과 도덕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선은 오히려 이 구조의 작동을 가린다. 이 구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비극은 다른 이름과 형태로 되풀이 될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높은 자살률, 극심한 저출생 등의 사회적 병리들을 낳은 구조적 비극의 또 다른 얼굴이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경고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지만,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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