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능키'라는 환상이 만든 '회피의 정치'

[서리풀연구通] 국제 보건의료 분야를 통해 본 기술 낙관주의의 그늘

AI는 현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모습을 바꿀 과학기술로 거론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당연히 보건의료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AI 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무엇을 주시하고 무엇을 건너뛰고 있을까. 오늘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AI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룬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인공지능과 국제 보건에서의 회피의 정치).

새로운 기술이 보건의료 문제에 대한 주요 해결책으로 제안된 것은 AI가 처음은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의 저자들은 AI를 둘러싼 주류 담론 또한 이제껏 그래왔듯, 정치적, 경제적, 상업적 결정요인이 깊이 자리잡은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채 새로 개발된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주장하는 '회피의 정치(politics of avoidance)'를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논문의 저자들은 '국제보건에서의 AI'를 주제로 2010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출판된 회색문헌 및 학술문헌 34편을 검토하여, 기술적, 보건의료시스템적, 상업적, 규제적 측면의 네 가지 주제로 국제보건에서 AI가 논의되는 방식의 유형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국제보건 및 개발 분야에서 기술을 다룬 실무적, 학술적 논의들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AI가 '회피의 정치'를 어떻게 지속시키고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크게 일곱 가지 영역으로 정리하였다.

첫째, 민간부문에 대한 규제와 관련한 문제이다. AI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다른 여러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공중보건보다 이윤을 우선시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AI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고소득 국가에서 점차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도입됨에 따라, 기업들은 규제 통제가 취약한 중저소득 국가로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며, 중저소득 국가의 정부도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수익원으로 삼아 민간 개발업체에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 AI 의료 기술을 새로 개발할 때에도 중저소득 국가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기술은 구매력의 제한으로 소홀히 여겨지게 된다. 즉, 중저소득 국가에서 주요한 문제는 소외되고 구매력이 있는 고소득 국가를 위한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예가 반복되는 것이다.

가장 분명한 것은 AI의 감시기술이 인권보다 비용을 우선시하는 의료 민영화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AI를 이용하여 개발한 결핵탐지 프로그램은 비용 절감에 집중한 결과 양성 결핵사례를 놓칠 가능성이 있었으며,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목적으로 고위험 환자를 예측하기 위해 개발된 AI프로그램은 민간 보험회사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등록을 막거나 보험료를 높일 수도 있다.

둘째, 국제보건 AI 의제에서 자선사업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은 '회피의 정치'의 연속선상이 될 수 있다. 국제보건 자선단체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와 같은 이해상충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역사적으로 자선단체들이 민간영역이 중저소득 국가에 진출하도록 '중개자' 역할을 해 온 점이 AI 기술의 도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셋째, 현재 AI 기술 역량은 고소득 국가 및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발전국가에 집중되어 있는데, 백신의 지적재산권, 연구 개발 및 제조 역량의 불균형이 코로나 백신 분배의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AI 기술 역량의 불균형 또한 그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건강과 의학에 대한 서구적 생의학적 모델의 관점을 강화시킬 것이라 예상된다. 의료종사자가 AI의 결론을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AI는 환자의 진단 및 치료 계획에서, 질병과 질환에 대한 정량화된 사실이 다른 문화적 형태의 지식을 압도하는 서구의 '생의학적 환원주의'적 접근을 더욱더 강화시킬 것이다.

다섯째, AI 기술은 국제보건에서의 수직적 접근(특정 질병별 접근방식)을 더 강화할 수도, 혹은 수평적 접근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AI는 보건의료시스템을 강화시키는 수평적 접근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적절한 공중보건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존의 기술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회피의 도구 및 이윤 획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여섯째, AI를 의료인력 부족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낙관적 관점은 중저소득 국가의 의료인력부족의 정치경제(두뇌유출, 이주정책 등)를 가릴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일자리의 플랫폼화를 초래함으로써 여성이 다수인 보건의료 노동 분야에서 여성의 고용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곱째, 전력이나 인터넷 등 기본 인프라에서의 격차는 국제보건에서 AI의 공평한 도입에 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 데이터 추출을 위해 인프라 투자가 촉진될 수 있지만, 기업 이익에 종속되어 부당한 데이터의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도 의문이다.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AI 알고리즘은 의료행위에 맥락적 편향을 부과하여 더 광범위한 방식으로 권력 약자와 중저소득 국가를 차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의료인력 부족, 제한된 자원 등 현 시스템을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함으로써 상위의 건강결정요인을 무시하게 된다.

이 논문이 말하는 '회피의 정치'는 낯설지 않다. 원격의료든 맞춤의학이든 새로 선보이는 기술은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것 같았지만 문제는 크게 해결되지 않았고 이익은 불균등하게 배분되곤 했다. 기술은 나날이 새로워지는데 문제는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들이 리뷰한 문헌의 대부분이 서구 고소득 국가에서 나왔다는 점, 불완전 고용에 대해 지적한 문헌은 한 편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면, 우리의 비판적인 관점을 점점 소리내어 말하고 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서지 정보

Shipton, L., & Vitale, L. (202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politics of avoidance in global health. Social Science & Medicine, 359, 117274.

▲ 병원(자료사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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