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두 국가론'은 오답…'조선'에 대한 법률적·외교적 인정 문제도 시야에 둬야

[정욱식 칼럼] 공론화 거쳐 영토조항 개헌 의사 물어야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평화공존'이다. 대다수 국민도 이를 희망한다. 문제는 평화공존과 두 국가론의 관계에 있다. 평화공존의 대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2023년 연말에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를 천명하고선 그 길로 매진해왔다. 한국에선 두 국가론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공존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라며 "평화적 두 국가가 될 때 평화공존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평화적 두 국가론'이 "정부의 입장으로 확정될 것이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부에선 남북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아직까진 정 장관의 희망사항이라는 뜻이다.

정 장관의 입장 표명에도 스텝이 꼬이고 있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사실상의 두 국가를 인정한 것"이지 "(북한을) 법률상의 국가로 승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헌법의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는 데에는 난색을 표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개헌론에서 영토 조항 논의는 빠져 있고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사실상 두 국가론'의 근본적인 한계가 노출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평화공존을 구현하기 위해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 등을 대북정책의 3원칙으로 내세워왔다. 그런데 조선을 법률상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 입장은 현실적인 정합성을 갖기도, 지속가능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러한 3원칙과 현실과의 괴리이다. 한국이 여전히 공식 국호 사용을 꺼려하고,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 그리고 유사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한미동맹의 목표를 유지하며, 방어와 격퇴뿐만 아니라 반격과 점령까지 포함된 한미연합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 3원칙과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다.

또 하나는 이재명 정부의 3원칙은 현 정부의 입장이라는 점이다. 다음 정부가 이를 계승·발전할 것이라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정권의 성향에 따라 대북정책이 널뛰기를 반복해왔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한국이 '평화적 두 국가론'에 입각해 평화공존을 도모하려면 한국이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방향을 잡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의 인정'이라는 모호하고 불안정한 방식에 머물 것이 아니라 법률적인 인정(개헌과 국가보안법 개폐 등)과 외교적인 인정(한국과 조선 수교 등) 등도 시야에 넣고선 말이다.

물론 이는 쉽지도 않을뿐더러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차분한 검토와 토론, 그리고 국민적 공론화이다. 이미 국민적인 공론화의 기반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서를 종합해보면, 통일에 대한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평화공존을 원하는 여론은 높아져왔다. 또 '북한을 국가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도 과반수를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조선을 국가로 보느냐와 국가로 인정할 것이냐는 질문은 차원을 달리 한다. 또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식 국호 사용, 개헌과 국보법 개폐, 국가 인정과 통일 추구와의 관계 등에 있어서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물어보고 따져보고 토론하고 공감을 이뤄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오버페이스'이다. 일례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작년 9월에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를 수용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지만, 이는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오히려 논의를 봉쇄하는 역효과를 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서둘러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는 사전에 민주당 안팎의 토의를 거치지 않고 임 전 실장이 불쑥 꺼내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동영 장관은 취임 전에 통일부 명칭 변경을 꺼내들었지만, 이 논의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 정 장관이 정부 내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적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세운 '평화적 두 국가론'도 생산적 논의보다는 정쟁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발언의 '화제성'보다는 '책임성'에 맞춰져야 한다. 서둘러 소신을 피력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공론화 과정을 거치려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임기 내에 영토 조항 개헌에 관한 국회와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참고로 1948년 제헌헌법에 명시된 영토 조항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 조항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머지않은 미래에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통일부에 대한 2025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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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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