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어쩌다 '중국'을 닮아가는가

[장석준 칼럼] 21세기, 민주주의는 생존할 수 있을까

요즘은 하루하루 세계사적 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얼마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을 일들이 매일 지구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지난주에도 미합중국 대통령은 이른바 '급진좌파' 시위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지역을 늘리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처럼 추앙받아온 나라에서 하원도, 상원도, 각 주정부도 이를 막지 못하고, 오직 연방법원만이 최후의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대통령은 10월 6일 사임을 발표한 총리를 10일에 그대로 다시 총리에 임명하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전임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긴축 기조의 내년 예산안을 제출했다가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지 못하고 사퇴한 뒤에 프랑스 전역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이 잇따랐다.

그런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야당들과 공동정부를 구성하길 끝내 거부한 채 같은 당 소속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리고 르코르뉘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사임을 발표하자 4일만에 다시 총리로 임명했다. 이 정도면 거의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한 격이다.

민주주의의 고향쯤 되는 듯 뻐기던 두 나라에서 지금 대통령이 국민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광경이다. 왜 한 나라도 아니고 지구 곳곳에서 이런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가? 아무래도 트럼프나 마크롱 같은 '세계사적 개인'들의 광기나 인성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미래를 향해 떠밀려가고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중국이 '문명적 표준'인가

사실 많은 시민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미래의 섬뜩한 방향을 감지하고 있다. 요즘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보며 사람들이 내뱉는 탄식 중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은 "미국이 어쩌다 중국을 닮아가는가"라는 말이다. '미국'을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놓고 '중국'을 그 정반대 사례로 보는 게 지나치게 도식적일 수는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차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인상만큼은 실제 변화의 방향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2기 트럼프 정부가 출범 이후 감행한 모든 시책은 한 가지 일관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백악관이 마치 전시 총사령부처럼 지시를 내리면 이를 순순히 집행하는 행정부를 구축하는 것이고, 이러한 행정부를 중심으로 상하원이나 주정부들의 저항, 견제 없이 한 몸처럼 움직이도록 국가기구 전체를 재편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가(MAGA) 세력은 현재로서는 위헌인 3기 트럼프 정부가 됐든 아니면 트럼프 노선을 계승하는 공화당 정부가 됐든, 장기 집권하고 말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주정부들에 대한 공격과 사실상의 계엄 통치는 단순한 광기나 치기의 발동이 아니라 이런 중장기 목적을 실현하려는 '합리적인' 전략적 행보라 봐야 한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이런 마가 세력의 목표, 즉 한 정파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거대한 기계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행정부 중심 국가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 정치 체제는 새로운 패권국이 되길 노리는 중국에게 강력한 장점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경제 성장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더없이 효율적이었지만, 패권국이 반드시 갖춰야 할 '문명적 매력'과는 거리가 먼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다음 패권국은 중국이라는 일각의 전망에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이다. 과연 뉴딜 미국이 대영제국을 대신하며 제시했던 것만큼의 문명적 정당성이나 제도적 혁신을 중국이 보여줄 수 있겠는가? 저런 정치 체제 아래에서?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 현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패권국으로 부상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들 코웃음 쳤을 한 가지 변화만 일어나면 된다. 이제껏 중국과 다르다고 자부했던 나라들이 스스로 중국을 닮아가려고 경쟁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때는 중국이 현재 모습 그대로 '문명적 표준'으로 돌변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

중국을 닮아가려는 경쟁

중국을 적대시하거나 혐오하는 극우파가 중국을 따라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마가동맹이 중국 간첩 음모론이나 혐중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극우 개신교도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현재 지구자본주의의 최정상-최첨단 부문인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중 상당 부분도 마가동맹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 중에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등의 '페이팔 마피아'처럼 2기 트럼프 정부의 극우 노선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도 있고, 못 이기는 척 따라가면서 잇속을 챙기는 나머지 빅테크 자본도 있다.

하지만 열정적 친트럼프파든 아니든, 빅테크 자본이라면 모두 지지하는 비전이 있다. 그것은 범용인공지능(AGI) 등장과 상용화처럼 빅테크가 미래의 결정적 성취라 선전하는 내용을 실현할 때까지 미국 정치가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한 것처럼 빅테크 독점 규제를 의제로 올리는 정치여선 안 된다. 그런 '낡은' 모습을 반복하다가는 AI 개발이라는, 사실상 전쟁의 또 다른 표현인 '시한부 경쟁'에서 중국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국보다 앞서서 AGI를 개발하고 확고한 기술 독점 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위해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을 동원하고 제어, 규율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에게는 '전시 정치'라는 말로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그런 정치여야 한다.

일단 이런 정치가 자리 잡고 나면 AGI 개발을 직접 주도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빅테크 전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된다. 빅테크는 중국과 벌이는 기술 개발 '전쟁'에서 강한 정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개발된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강한 정부를 필요로 한다. AI가 그 전도사들의 말처럼 실제로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이끌고 대규모로 인간을 대체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중국의 당-국가처럼 안정적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하는 국가기구가 전환 과정을 뒷받침해야 엄청난 불만이나 저항을 효과적으로, 혹은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

이런 미몽에 사로잡힌 빅테크에게 이제 '중국'은 미국의 적수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렇기에 미국이 닮아가야 할 21세기 정치의 규범적 이상이 된다. 공산당 일당 통치가 중국의 성공을 뒷받침했듯이, 미국에도 마가화된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필요하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기구와 기업의 경계선이 애매하듯이, 미국에서도 마가 국가기구와 빅테크의 공동 통치가 필요하다. 피터 틸 등의 '페이팔 사단'이 강조하는 것처럼, 미친 듯한 기술 개발의 '자유'를 위해 이제 '민주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2기 트럼프 정부는 바로 이런 기술 유토피아의 '약속된 땅'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내해야 할 '광야'의 고된 여정을 책임질 강력한 지팡이이자 몽둥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렇게 나름대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면,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정반대 이유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더 나빠진' 자본주의(어쩌면 자본주의보다 봉건제의 귀환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를 추구할지언정 어쨌든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뭔가 변화를 꾀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마크롱 정부는 신자유주의 전성기 내내 가장 요란하게 신자유주의 기조에 저항하던 국가에 참으로 뒤늦게 들어선 '광신자(true believer)형' 신자유주의 정부다. 2020년대에 여전히 부자 감세와 긴축 재정 외에 다른 답을 내놓지 '않으려 하는' 정부다.

한데 이런 선택의 정치적 귀결 역시 중국을 닮아가려는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은 여소야대 의회와 협상하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으며, 이런 의회를 만들어놓은 시민사회에도 귀를 닫는다. 이런 교착 상태에서는 오직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통해 프랑스 시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 한 사람만이 헌법적 정당성을 지닌다고 확신하면서, 대통령의 비상 대권에 따라 작동하는 행정부를 통해 통치를 이어가려 한다.

물론 이것은 중국 국가기구의 실질적인 통치 역량이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세계사적' 모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엘리제궁에 유폐된 망상병자의 발작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기구 내부에서 집권 세력에 의해 기존 민주주의 전통이 결정적으로 와해되고 있으며 비민주적 통치 형태가 공공연히 준비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 상황과 통하는 데가 있다. 마크롱이 열어놓은 이 혼란스러운 역사 경로의 진정한 주인공은 마크롱 세력이 아니라 극우파 국민결집(RN)이 될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이자면, 이런 마크롱과 의외로 가장 가까운 인물은 한국의 윤석열이다. 둘 다 신자유주의 외에 다른 답을 찾지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 없이 민주주의의 후퇴, 파괴로 나아갔다. 말하자면, 윤석열의 12. 3 친위쿠데타 시도는 중국을 닮아가려는 경쟁의 또 다른 사례였던 것이다.

과거의 '민주주의'로 단순히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마가화된 공화당의 일당 독재가 들어서는 게 필연이라거나, 프랑스에서 마크롱이 대통령 임기를 다 채우는 것 외에 다른 정치적 경로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종국적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작년 12월 3일 밤 이후에 한국 시민들이 보여줬고 지금 미국, 프랑스의 저항운동이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이들의 대오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반격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몇 가지 냉철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세계 곳곳의 '전투'가 단기간에 어떤 결과로 끝나든, 적어도 21세기 전반부 내내 전 지구적 '전선'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내부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반민주적 지도자, 정당을 선택하거나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를 폐기하도록 유혹할 요인들이 AI 개발이나 미중 경쟁, 신자유주의에 대한 병적 집착 말고도 숱하게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기후 급변에 대응할 적기를 놓치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재난의 파도에 휩쓸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상황에서는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든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대중의 상당수가 스스로 '독재 권력'을 마지막 생존 방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즉, 기후위기, 돌봄위기 등의 복합위기-다중재난이 진정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후퇴, 붕괴 경향이 앞으로 계속 인간 사회를 짓누를 것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민주주의의 수호가 단순히 과거 '민주주의'의 복원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 됐다는 나라들에서 생각보다 쉽게 민주정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은 그만큼 각 나라의 기존 민주 정체가 허점이나 결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정된 지 250여 년이 된 미합중국 헌법이 규정하는 18세기식 대통령과 의회는 복합위기 시대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낡은 틀이며 마가 같은 반민주적 세력의 '해킹'에도 극히 취약함이 드러났다. 프랑스 제5공화국 체제 역시 의회를 통한 '정치'보다는 대통령 1인을 중심으로 한 '통치'에 무게를 싣는 태생적 한계(드골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당장에 트럼프 정부를 고립시키고 마크롱 대통령을 퇴진시키더라도 민주주의의 후퇴, 붕괴 경향은 의연히 지속될 것이다.

이 시대에는 오직 스스로를 끊임없이 혁신할 줄 아는 민주주의만이 유사-중국 체제로 나아가려는 거센 물결에 맞설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친위쿠데타라는 첫 번째 시험을 이제 막 가까스로 견뎌낸 한국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시험이 닥치기 전에 기민하게 한국 민주주의의 자기 정비 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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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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