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심지어 나라 이름도 정확히 모른다

[이웃 나라 타이완] 대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는 없다

타이완은 우리에게 몇 안 되는 적대적이지 않은 이웃 나라다. 그렇다고 아주 친한 나라도 아니다. 93년 단교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류열풍과 관광으로 끊어졌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한 나라에게도 좋은 이웃이 필요하다면, 그 첫걸음은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이웃 나라 타이완'이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필자는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편집자

우리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십 년 전 우연히 여행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큰 관심이 없었을 나라다.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지진이나 태풍 기사, 국제 야구대회나 양안(兩岸)관계에 대한 기사를 무심코 읽었으리라.

2016년 1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겨울날이었다. 타이베이 시내에 '화산1914(華山1914)'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1914년 일제 강점기 지어진 낡은 맥주공장 건물을 전시와 공연 등 문화예술로 채운 곳이다. 그곳의 한 디자인샵에서 일하고 있던 아내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 화산1914에 방문해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날. ⓒ필자

해외여행 중이어서 그럴 수 있었을까? 낯선 이성에게 말을 걸었고,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조심스럽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해본 일들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그런 일은 없었다. 나이 마흔을 넘긴 가난한 외국인 이혼남이 뭘 믿고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꽤 흥미진진한 국제 연애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하여간 그때부터 나는 대만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성향이 그렇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맛집 정보를 찾기보다는 그 나라의 역사나 지리를 공부하는 식이다. 아내와 잘해보려고 정말 뻔질나게 대만을 방문했다. 언어 차이, 문화 차이에 세대 차이까지 겹치다 보니 유쾌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함께 타이베이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다.

우리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심지어 나라 이름도 정확하게 모른다. 놀랍게도 대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는 없다. 편의상 대만이라고 부를 뿐이다. 대한민국을 코리아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대만(臺灣)은 섬 이름, 즉 지역명이다. 중국어 발음이 타이완이고, 그래서 영어로 Taiwan으로 표기한다. 대만섬 원주민들이 부르던 섬 이름을 음차하여 적은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공식 국가 명칭은 무엇일까? 그 답도 쉽지 않다. 대만 헌법이 정한 국가명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영어로는 'Republic of China(ROC)'로 표기한다. 다만 그 헌법에 따르자면 중국 전체가 중화민국 영토여야 하는 형편이니 현실과는 괴리가 좀 있는 편이다. 실제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 한국, 일본 등 대부분 우리가 아는 대부분 국가의 정부는 이 중화민국이라는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던 나라인데 말이다.

▲ 중화민국의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 신해혁명 이전에 쑨원(孫文)이 창안했다. ⓒ위키피디아

▲ 차이이즈타이베이기, 혹은 매화기라고도 부른다. 국제대회에서 대만 선수단이 국기 대신 사용한다. ⓒ위키피디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대만이 가입한 스포츠 국제기구들이 있긴 하다.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이 인정받지 못하니 '중화타이베이(Chinese Taipei) 올림픽위원회' 명의로 가입했다. 그래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WBC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 나갈 때는 '중화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도 사용하지 못하고 '중화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대신 사용한다.

대만인들에게는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로 치면 북한이 기세등등하여 대한민국, 코리아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태극기도 걸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심코 자기 나라 국기를 숙소에 걸어놨다가 방송 화면에 잡히면서 곤욕을 치른 대만인 아이돌 멤버가 있었다. 트와이스 멤버 쯔위의 공식 사과 영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영 씁쓸하다.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 그리고 국제사회에게 입김이 커진 중국의 힘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세계적으로 대만과 수교를 맺은 나라는 교황청, 마셜제도 등 12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1993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외교관계를 끊어서 외교관계가 없다. 그래서 대사관이 없고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라는 이름의 외교부 사무소가 영사 업무를 보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나라 대만이 이런 처지에 있다.

흔히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양안(兩岸)관계'라고 부른다. 우리로 치면 남북관계에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대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놀란 것이 양안관계의 복잡성이다. 남북관계처럼 복잡한 문제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양안관계는 훨씬 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중국으로서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 반대로 대만에서 태어나 살아온 대부분의 국민이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왔을 뿐, 우린 중국 사람이 아니라 대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지정학적 복잡성도 마찬가지다. 패권국을 꿈꾸는 중국에게도, 중국의 도전을 막고 싶은 미국에게도 타이완의 지정학적 위치는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대만이라 부르는 나라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자유중국'이라는 명칭과 '포르모사(Formosa)'라는 포루투갈어 별칭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 당시 대륙의 패권을 다투던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생사고락을 같이 한 핵심 동맹이었다.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동아시아에서 함께 공산주의에 맞선 중요 우방이었다.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던 그 시절, 우리는 중화민국을 '자유중국'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불렀다. 자유중국 대사 자리는 손에 꼽히는 요직이기도 했다. 1993년, 중국과 수교를 위해 외교관계를 단절하기 직전까지 그랬다. '포르모사'는 16세기 말 처음 대만섬을 발견(?)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붙인 이름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금도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타이완을 '포르모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과거 '대만민주국(臺灣民主國)'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잠시 존재했다. 청일전쟁 승리로 일본이 대만을 차지하게 됐을 때, 이에 맞선 대만인들이 선포한 나라 이름이 '대만민주국'이었다. 고작 몇 개월 만에 일제에 진압당했다. 언젠가 대만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생길 수 있을까? 지금도 대만공화국을 선포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곤 한다. 소위 대만독립론이다. 중국과의 병합에 반대하는 여론은 매우 높긴 하지만, 대만독립에 대한 전국민적인 합의도 아직은 없는 게 사실이다.

▲ 대만민주국 국기. 대만민주국은 청일전쟁 패배로 일본이 대만을 차지하자 이에 반발한 청나라 관리들이 세웠던 나라다. ⓒ위키피디아

과거에 잠깐 존재했고, 앞으로 생길 가능성도 분명 작지만 있다. 하지만 대만이라는 이름의 나라는 없다. 인터넷에서 '.tw' 도메인을 사용하고,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위상이 아무리 높아져도 마찬가지다. 씁쓸한 현실이긴 하지만 대부분 대만인에겐 자신들의 복잡한 처지를 대변하는 현상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개인적으론 처가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대만과 한국은 좋은 이웃이 될만한 나라다. 우리 주변 국가 중에 전쟁이나 침략으로 원한을 쌓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고, 경제와 문화의 수준도 비슷하다. 서로 공통점도 많지만 배울만한 차이점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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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쓰는 일을 하며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제주도에서 바람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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