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만 산다"? 이젠 이재명 대통령도 '수박'?

[정희준의 어퍼컷] 대통령은 안중에도 없는 집권 여당과 강성 지지자들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문재인 정부의 그것과 판박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을 잡았고 인수위 없이 출범했다. 둘 다 개혁을 목표로 한다. 문 정부는 '적폐청산', 이 정부는 '내란척결'. 압도적 의석도 똑같다. 둘 다 양보도 없고 타협도 없다. 사실 개혁정부를 앞세워 압도적 의석으로 밀어붙인 것은 노무현 정부도 유사하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노 정부, 문 정부 모두 실패했다. 목표했던 단 하나의 개혁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권력을 내줬다. 노무현 때는 허망하게. 문재인 때는 어처구니 없게. 민주당의 재선 이상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때 정권을 빼앗긴 경험이 생생한 자들이다. 대부분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말을 못한다. 누구 때문에?

대통령은 안중에도 없는 집권 여당?

최근 대통령실과 민주당 사이 입장 차이가 이견 수준을 넘어 갈등 또는 주도권 다툼이라는 언론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까, 없을까. 문제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위험신호를 감지했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다수의 개혁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자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자제를 당부했다. 소용이 없다. 당이 말을 듣지 않는다. 민주당은 야당의 법사위 나경원 간사 임명조차 표결로 막아버렸다. 전례? 그냥 밀어붙인다.

결국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나섰다. 친명 중의 친명 김영진 의원이 인터뷰에서 "조희대 청문회 급발진"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과속을 우려했다. 법사위원장 추미애 의원 관련해서 "추미애·윤석열, 추미애·한동훈, 추미애·나경원의 전쟁, 결과가 좋았나" 발언으로 추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관록의 정치인 우상호 정무수석 역시 당이 "너무 싸우듯이 개혁"한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살살 설득해서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대통령의 의중까지 직접 공개하며 민주당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런데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김 의원의 '급발진' 발언에 "한가한 상황인식"이라며 곧바로 받아쳤다. 박지원 의원은 우 수석 발언에 "카톡에서나 하라"며 면박을 줬다. 정청래 당대표는 "잊지 말자 사법 개혁" 등 SNS 게시물을 시리즈로 올리며 당의 강공 노선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지금 민주당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척결하겠다는 기세다.

정권 초기 집권 여당이 대통령을 무시하다시피 하며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배경엔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 대선 등이 얽혀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개딸'이라 불리는 강성 당원들, 그리고 이들을 부추기는 김어준, 최욱 등 대형 유튜브 채널 진행자들이 있다.

문자폭탄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강성 지지자들

특히 김어준은 민주당 의원들을 수시로 불러내 숙제도 내주는 등 보기 민망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적 우위에 근거한 일방적 밀어붙이기를 독려한다. 세상만사엔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모두 무시하고 호전적 주장을 이어간다. 문자폭탄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강성 지지자들은 그의 말에 춤을 춘다.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는 이들에게 휘둘린다. '난장판,' '아수라장'이 일상이 된 국회가 그 증거다.

민주당은 지금 3개 특검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검찰, 방통위 개혁에 이어 대법관 증원, 4심제 도입 등 사법개혁과 조희대 탄핵을 저울질하고 있다. 개혁하겠다는 대상이 너무 많(아졌)고 그 내용도 수시로 바뀌어 정신이 다 사나울 지경이다. 궁금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할지 알기나 할까. 감당할 수 있을까.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건 역사적 명제다. 희망하는 개혁이 모두 성공할 수도 없다. 실패하는 개혁과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시스템에 동의한 이상 우리의 호·불호를 떠나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수적 오차'도 받아들여야 한다. 사법부 판결도 마땅히 이에 해당한다. 스포츠에서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듯이.

개혁의 필수 조건: 반대자도 동의해야

개혁 완수의 절대 조건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조차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 때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의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동의하게 만들었다. 윤석열 탄핵 때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다른 헌법재판관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국민은 애를 태웠지만 그가 윤석열이 임명했던 보수 성향 재판관들까지 동의하게 만들었기에 전원일치 판결이 나왔고 그 덕에 깔끔하게 탄핵이 마무리됐다.

반대로 아무리 취지가 좋고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다수 국민의 동의가 없이 밀어붙이면 곧 뒤집어진다. 바로 종합부동산세. 노무현 정부가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게 만든 법'이었다. 그러나 결국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정 '한방'으로 용두사미가 됐고 부동산 특권층은 원금에 이자까지 돌려받았다.

지금 민주당은 야당은 물론 검찰, 사법부, 보수 언론 등 저항세력을 곳곳에 만들어가고 있다. 특이한 점은 민주당 스스로도 이들의 반격이나 태업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을 크게 벌이는 만큼 실패할 확률도 커진다. 게다가 중도는 물론 친 민주당 성향의 국민들도 피로감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이쯤 되면 개혁동력이 소모됨은 물론 국정동력까지 잃게 된다. 레임덕은 대통령 취임하는 날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정말 자신 있나?

민주당을 '독기 뿜는 중학생'처럼 만들고 '아수라장 국회'를 응원하는 강성 지지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과거 이낙연 총리에 환호하고 이재명 성남시장을 공격하던 사람들, 얼마 후 이재명 경기지사에 열광하고 이낙연을 '원조 수박'이라 저주하던 사람들, 이들은 대충 같은 사람이다. 이들이 지난 6월 정청래를 '왕수박'이라 부르더니 급기야 속도조절을 주문하는 이재명 대통령마저 '수박'이라 비난한다. 영화 <아저씨>, 원빈의 대사다.

"나는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의 대사. "나는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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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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