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건정치에서 구조정치로'…전북이 다시 서기 위한 조건

김인권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대표

세계잼버리의 실패, 전주·완주 통합논의의 표류, 새만금국제공항의 불확실성….

최근 몇 년간 전북을 둘러싼 굵직한 현안들은 모두 기대만큼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문제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잼버리의 파행, 행정통합 논의의 지연, 공항 건설의 불확실성은 각기 다른 이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뿌리는 같다.

전북 정치가 여전히 '사건이 벌어지면 뒤따라가는 구조'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결정을 내리고 나서야 움직이고, 사안이 터져야 대책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이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김인권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대표 ⓒ프레시안

이제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공항이 지어질까?" "통합이 될까?" 를 묻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가 먼저 "전북은 어떤 산업 지형과 도시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새만금공항은 단순한 비행장 건설이 아니라 동북아 물류와 수소, 데이터 산업을 연결하는 거점 전략의 일부로 접근해야 한다.

전주·완주 통합 역시 행정조직의 합병이 아니라 100만 도시권을 중심으로 한 산업, 문화, 교육의 미래 플랫폼으로 기획해야 한다.

잼버리 실패조차 국제행사 운영의 표준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의 무게중심도 바뀌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예산과 정책에 의존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전북 스스로 전략을 만들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정책 싱크탱크를 키우고 광주·충남 등과의 연대 전략을 통해 서남권의 미래를 공동 기획해야 한다.

'요구하는 정치' 가 아니라 '설계하고 제안하는 정치'로 전환할 때 비로소 전북의 목소리가 힘을 갖는다.

무엇보다 정치의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

'사업추진'이나 '행정 협의'와 같은 기술적 표현 대신 '동북아 경제의 새 축'이나 '100만 녹색도시' '국제행사 운영 표준'처럼 도민이 꿈을 꿀 수 있는 언어로 비전을 말해야 한다.

정치는 행정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사건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정치, 외부 결정을 바라보는 정치로는 전북이 다시 설 수 없다.

구조를 바꾸는 정치, 주도권을 잡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이 지역이 다시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현장에서 수없이 들었던 "전북은 왜 항상 늦느냐" 는 질문에 앞으로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늦은 것이 아니라, 지금 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이야말로 그 길을 함께 그릴 때라고 말이다.

전북의 미래는 중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