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가 한국에 400조 원이 넘는 금액인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라고 압박하면서 양국 간 관세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타격을 입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9일(이하 현지시간)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3500억 달러의 '선불 현금 투자'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 요구하는 전리품"이라며 "한국 외환보유액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한국의 전략 중 하나는 (미국의) 법원이 트럼프의 관세가 무효라고 판결할지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일 수 있다"며 "이는 일본의 계획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이는 한일 양국이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심인 국제무역법원(USCIT)과 2심인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과 관련,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서 상호 관세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첫 변론이 오는 11월로 예정된 가운데,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나올 경우 IEEPA를 근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최종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결정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IEEPA가 아닌 무역확장법이나 무역법 등을 활용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 대법원 판결로 실제 상호관세가 없어지는 효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매체는 "문제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다. 트럼프가 한국의 관세를 인상할까?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공격할까? K팝 가수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부과할까? '안 된다'는 말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대통령이 무엇을 할지 누가 알겠나"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 외에도 또 다른 방법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매체는 "좋은 소식은 한국이 정말 큰 타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로부터 이후에 또 몇 차례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과거 한국이 위기를 헤쳐 나갔던 사례를 열거하며 이를 극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매체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국가 중 가장 먼저 회복했다. 2008~2009년 한국은 '리먼 쇼크'를 헤쳐나갔다.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발작'(예상보다 빠른 긴축을 시사한 연준의 움직임이 신흥국 자본유출을 촉발했던 사건)은 전세계 개발도상국을 뒤흔들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첫 무역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한국은 낮은 감염률의 모범 사례였다. 2021년 8월, 한국은행은 12대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고 덧붙였다.
매체는 "한국은 단순히 방어만 잘하는 나라가 아니라 가끔은 한 방을 날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과 관세 협상에 서두르지 않고 있는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기도 했다.
매체는 "이재명 대통령 측은 7월 말 합의한 관세 협정의 세부 사항을 두고 물러서지 않고 버티고 있다"며 그 사이 미국 측의 여러 가지 실수가 겹치면서 관세 협상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한국에 요구한 3500억 달러에 대해 "매우 서투른 표현"을 사용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관세 합의를 설득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한일 양국의 투자금액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라고 했고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백지수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국가·경제안보기금"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평가가 한국 등 상대국 국민이 협상을 받아들이는 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매체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정부 당국에서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450명을 구금한 사태도 관세 협상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매체는 한국뿐만 아니라 이미 관세 관련 합의를 마치고 문서화까지 진행한 일본에서도 협상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28일 일본 방송 후지테레비에서 주관한 자민당 총재 후보자들의 토론에서 차기 유력 주자로 꼽히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미일 관세 협상이 불평등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유일하게 손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양국 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협상) 운용 과정에서 일본의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불평등한 요소가 나온다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재협상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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