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고마웠어요" 삽으로 맞으며 운동한 중학생, 폭행 백화점 K스포츠

[정희준의 어퍼컷] 대한민국 스포츠, 내 아이를 맡길 수 있나

모두 중학생들 이야기다. 올해 1월 철인3종 중학생 대표단 합숙 훈련 과정에서 3학년 남학생이 2학년 여학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여학생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학생 방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가해자는 성폭행뿐 아니라 불법촬영까지 했는데 이 영상을 가지고 또 협박해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 영상을 다른 선수들과 돌려보기까지 했다.

지난 6월 경북 상주의 한 중학교 씨름부 감독이 2학년 학생의 머리를 삽으로 폭행했다. 삽 날로 내리쳐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봉합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상처였다. 감독은 부모에게 세면대에 부딪혀 다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두 달간 이를 은폐했다. 피해 학생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그 학생은 7월 가족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아버지에게 발견돼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사 결과 1학년 때엔 감독에게 삽과 발길질로 폭행당했다. 2학년 때는 새로 부임한 감독에게 무릎 꿇린 채 삽과 몽둥이로 구타당했다. 두 감독의 공통점? 아이를 삽으로 팼다는 점. 그렇다. 이들은 형제였다. 서른아홉, 서른일곱, 친형제였다.

대한민국 스포츠, 아이들 가르칠 자격 있나?

지난 3일 전국 복싱대회 중등부 경기. 1라운드에 다운 당하는 등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했던 선수는 2라운드가 시작됐음에도 가드조차 못 올리는 비정상 상태였다. 상대 선수는 이를 보고 주춤했다. 그러나 코치는 이를 무시했고 심판은 경기를 강행했다. 곧 쓰러졌다. 경기장엔 119나 병원 구급차가 아닌 사설 구급차가 있었다. 운전자는 사이렌 켜는 방법도 몰랐다. 신호를 다 지켜가며 운전했고 병원도 찾지 못해 도로를 헤맸다. 병원까지 30분이 걸렸다. 뇌출혈이었다. 의료진은 "너무 늦었다"고 했다. 1주일 지나도록 의식불명. 분노한 아버지는 8일 대회 진행 중 링에 올라 자해를 시도했다.

안타깝지만 사건, 사고는 사회 어디에서나 생긴다. 문제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응하는 자세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철인 3종 성폭행 사건이 발생 후 열린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10대 때는 그럴 수도 있다," "강압에 의해 성관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더 많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나왔다. 참으로 '가해자스러운' 망언이다. 특히 철인3종은 5년 전 고 최숙현 선수가 감독, 선수들로부터의 폭행, 괴롭힘 때문에 생을 마감해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바로 그 종목이다.

그럼에도 협회는 '유포가 우려된다'며 불법촬영된 영상을 삭제해 결정적 증거를 없애버렸다. 증거인멸이다. 피해 학생 어머니에 따르면 협회는 "둘이서 저질러 놓고 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는 식이었고 범죄자 취급하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너 왜 그 방에 갔냐"면서. 결국 황당한 결정이 내려졌다. 성폭행은 '합의된 성관계'가 됐다. 또 남자 숙소에 들어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피해 여중생에게 출전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다.

삽으로 학생을 폭행한 씨름부의 경우 아들의 극단적 선택 직전 이를 발견한 아버지가 폭행 사실을 학교에 알렸으나 학교는 경찰에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지훈련 지원금을 위한 최소 인원 확보를 위해 피해 학생에게 전지훈련 참가를 강요했다. 참으로 담대하지 않은가! 전지훈련을 거부하자 학생부장은 뻔뻔스럽게도 '훈련 기간 집 밖으로 다니지 않게 하라, 지원금 반환해야 한다'며 피해 학생의 외출 금지를 요구한다. 이쯤 되면 미친 거다. 또 자살 시도 이틀 뒤 Wee센터에 신고하자 학생부장은 왜 신고했나며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피해 학생은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는 물론 심리 상담조차 거부한다고 기사는 전한다.

한국 스포츠의 튼튼한 기반 '가해자 중심주의'

그런데 씨름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징계 처분을 내린다. 피해 학생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1, 2학년 때 자신을 지도한 세 명의 감독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는데 징계를 받은 것은 중2 때 폭행한 '동생 감독' 한 명뿐이라는 것이다. 한국 스포츠에서 반복되는 확실한 패턴 중 하나는 바로 '가해자 중심주의'다.

연이어 사고가 터지자 대한체육회는 "미성년자 대상 폭행과 장기 가혹행위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징계 규정과 무관용 원칙을 전면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코웃음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게 체육계의 다짐이다. 그동안 바뀐 게 있나? 사과, 재발 방지, 강력한 징계는 대한체육회 등 우리 체육계가 입에 달고 다니는 못된 버릇 중 하나다. 지난 30여 년 반복적으로 접한 체육계의 폭행 사례들은 매우 창의적이면서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거의 폭행의 백화점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아동 폭력의 역사

작년 기고한 칼럼 <어른도 못 견딜 고문으로 네살 아이는 뇌사, 아동학대 K-스포츠인가?>에서 손축구아카데미 등 유소년 축구와 태권도에서 발생했던 충격적인 폭행 사례들을 소개한 바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 피해자들만 골라서 소개했다. 가장 어린 아이가 네 살. 태권도 관장이 돌돌 말아 세워놓은 매트에 아이를 거꾸로 집어넣어 20분간 방치했다. 아이가 "꺼내주세요," "살려주세요"를 애타게 외쳤지만 외면했다. 결국 사망했다. 그건 고문이었다.

분을 삭이던 중 또다른 기사를 접한다. 지난 21일 인천의 태권도학원 사범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구속됐다. 학원과 차량에서 13세 미만 초등생을 강제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다. 우리 체육계 아동 폭력의 역사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쉼 없이 반복된다. 외국에선 스포츠가 아이들의 천국인데 이 땅에선 아이들의 지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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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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