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왜 그래? 한국 엘리트 다수가 파시스트인 이유

[리얼 톡-심층 인터뷰] 김누리 중앙대 교수

"독일의 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하다. 저는 이 말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봐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끝났어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민주주의 파괴자들은 지금 무덤에 누워 있죠. 그런데도 윤석열 내란 같은 파시즘이 한국 사회에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들의 내면에 각인돼 있는 파시즘의 잔재들이 다시 표면화된 것입니다."

한국이 '후기 파시즘' 사회인 5가지 이유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등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24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후기 파시즘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그 의미를 설명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제도로서의 파시즘이 '전기 파시즘'(군사 독재)이라면, 내면에 각인되거나 잔재로 남은 태도로서의 파시즘이 '후기 파시즘'이다.

김 교수는 파시즘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5가지 특징으로 1)강자와의 동일시, 2)약자에 대한 혐오, 3) 다수에 동조하려는 강박, 4)폭력성, 5) 흑백 논리를 꼽았다. (영상 인터뷰 : "한국이 파시즘 국가"? 듣고도 믿기 힘든 5가지 이유)

▲김누리 중앙대 교수 인터뷰는 <프레시안tv>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프레시안

서울 법대 내란학과? 한국 초엘리트 다수가 왜 파시스트인가?

지난해 윤석열 내란 당시 내란 우두머리를 포함한 다수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서울 법대 내란학과'라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김 교수는 "거의 모든 고위직을 서울대가 차지하고 있는 서울대의 사회적 독재가 정치적 독재 못지 않게 심각하다"며 "한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김 교수는 "윤석열의 내란은 서울대의 사회적 독재가 정치 쿠데타의 형태로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파업 때 드러난 의사들의 인식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법조인, 정치인, 의사 등 왜 한국에서 최고의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파시스트인가"를 물었다. 그는 "바로 우리 교실이 파시스트들을 기르는 온상이기 때문"이라면서 경쟁교육의 폐해에 대해 지적했다. (영상 인터뷰 : 서울대 독재사회!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못한 이유)

"독일은 1970년대 히틀러의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해 일체의 경쟁교육을 없앴습니다. 히틀러의 주장 속에 경쟁, 우열, 지배와 복종이라는 파시즘의 세가지 기본 원리가 들어 있어요. 한국의 최고 엘리트라고 불리는 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파시스트인 이유는 한국의 교육에 그 원인이 있는 거죠."

정답을 강요하는 수능 vs. 자기 생각을 서술하는 아비투어

한국식 경쟁 교육의 정점에 서울대가 존재하며, 이런 교육에서 우수성을 인정 받은 엘리트들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파시즘적 인식을 내면화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현 대학 입학 시험인 수학능력평가(수능)도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육 개혁 시도는 항상 입시 개혁으로 끝났고, 입시 제도를 개혁하면 기득권들이 가장 빨리 적응을 합니다. 교육을 통해 한국사회 기득권은 오히려 강화돼 왔어요. 그래서 입시를 폐지하지 않는 한 한국 교육은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한국의 수능은 정말 아이들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는 시험입니다. 수능은 누가 채점합니까? 컴퓨터가 채점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명백한 정답이 있고, 정답을 고르라는 겁니다. 네이버에 물어보면 정답은 10초면 찾아요. 우리 교육의 목표가 성능이 뒤떨어지는 컴퓨터를 만드는 건가요?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이게 뭐냐'고 묻는 시험은 없어요. '이것에 대한 네 생각은 뭐냐'고 물어요.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아비투어 역사 문제를 봤는데, '1933년 괴벨스의 이 연설문에 대해 분석하라'는 것이었고, 5시간에 걸쳐 시험을 봅니다. 이걸 두 명의 교사가 채점을 하고, 채점자 사이의 점수 차가 크면 한 명이 더 채점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채점 비용이 많이 들죠. 컴퓨터로 하면 채점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아이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는 돈을 안 쓰면서, 1등부터 55만 등까지 줄을 세웁니다. 저는 이런 입시는 폐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처음 학계에서 나왔던 방안에서 변질된 측면도 있지만, 대학 서열화를 완화시키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에 대해선 평가를 했다. 그는 또 "한국은 사립대학 비율이 87%로 지구상에서 대학의 공적 성격이 가장 낮은 나라"라면서 국가 지원을 대폭 늘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6세대성숙한 민주주의자인가, 연성 파시스트인가?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일어난 서부지법 폭동 사태, 6.3 대선에서 70% 이상의 2030 남성들이 보수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는 등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 더 나가서 극우화 현상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 심각한 레드카드를 보인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이들이 성장하는데 발 맞춰서 파시스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고 했다.

그는 젊은 남성들의 극우화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에서 군사 독재 파시즘으로 이어진 과거사 청산이 한번도 없었던 우리 현대사를 거론하면서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반격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경우 '68혁명'을 통해 "일상의 파시즘을 극복하는 단초들을 사회적으로 학습"하는 기회가 있었던 반면 한국은 이런 경험이 없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68혁명과 비교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현재 86세대들이 한국을 주도하고 있으니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주제입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군사 파시즘과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과연 그들은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스스로도 일상의 파시즘에서 살고 있는가? 저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스트와 싸우는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다. 저는 민주당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끌고 갈 수 있는 내적 역량, 철학이 확고하게 세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 젊은 남성들이 급속하게 보수화 되는 3가지 원인

다시 2030 남성들의 극우화 문제로 돌아와 김 교수는 소셜미디어(SNS)의 등장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 신자유주의 경제에 따른 '각자도생 사회'로 내달리면서 나타난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는 없다"며 크게 3가지를 이유로 꼽았다. (영상 인터뷰 : 2030 극우 남성, 한국 사회 시한폭탄? 원인 따져보니...)

"첫째, 자본의 책략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 자본처럼 이렇게 갈라치기 책략이 능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모순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입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노동의 대응이 너무 취약한 상태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젊은 노동자와 나이든 노동자 등. 이런 대립구도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모두 일자리 때문인데, 자본은 갈라치기를 통해 양쪽을 서로 싸우게 만들면서 이득을 취하는 거죠.

둘째, 군대 문화. 군대에 가기 전까지 젊은 남성들은 부드러운 파시스트로 있다가 군대에 가면 일종의 집중 심화 과정을 밟게 되는 거죠.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집단적 문화에 완전히 물들어 확신에 찬 파시스트들이 돼서 나옵니다.

셋째,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서구에선 민주주의 수호자인 '고학력 부르주아', 한국은 과반이 윤석열 지지?

김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내란'을 옹호하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집단은 2030남성들을 포함해 보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과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서울 강남3구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 3구의 김문수 득표율은 50%가 넘었다.

"강남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방끈이 길고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독일에선 '교양 시민(Bildungsbürger)'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 이들은 민주주의의 수호자입니다. 프랑스대혁명을 이끈 계몽자들이었고, 이들이 외친 구호인 자유, 평등, 연대는 인류가 지향하는 이념이자 민주주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 그 지역에서 극우에 가까운 정당을 55%, 56%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에 아주 시뻘건 경고등이 커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민주주의교육원과 민주주의기념관이 필요한 이유

이런 이유로 김 교수는 "지금 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국가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과 통일부의 평화통일교육원의 기능을 통합해 "국립 민주주의교육원"(가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독일은 연방정치교육원(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이라는 정치교육과 시민교육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이 있습니다. 이 기관이 독일 민주주의 성숙을 길러냈습니다. 한국도 이런 기관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학교부터 평생교육까지 관장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또 한국의 국가 정체성으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꼽으면서,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독립기념관에 준하는 민주주의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광화문 바로 옆에 송현동에 10만평 부지가 비어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여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을 지으려고 했죠. 광화문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 중 하나입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대통령을 두번이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탄핵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지금 한국 뿐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기이기 때문에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민주주의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나도 파시스트"라는 고백을 하면서 '후기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들의 성찰을 강조했다.

"독일 유학 생활을 하면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 안의 파시즘의 잔재에 대해 크게 성찰하게 됐습니다. 68혁명 당시 가장 유명한 구호 중 하나가 '정치투쟁의 최전선은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태도, 감정, 사물을 대하는 감수성 등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런 노력과 힘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지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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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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