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성장드라마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한강버스가 지난 18일 운행을 시작했다. 20년 넘게 공공교통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왜 지금 서울에 한강버스인가? 라는 당연한 의구심이 생겼다.
한강버스 홈페이지에 나온 도입 배경을 살펴보자. 첫째는 도심 교통 혼잡 완화 및 대중교통 대안 마련이다. 출·퇴근 시간대 극심한 도로 정체, 혼잡한 대중교통 상황 정체와 혼잡에 대한 안전 문제, 불편함 증가, 이에 따른 정시성과 쾌적성을 갖춘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분석이고 두 번째는 수상 교통 인프라를 활용한 이동 편의성 향상이다. 한강이라는 자연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심 내 이동을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제공하는 수상 교통수단을 도입하게 되었고 이는 육상 교통망 보완, 시민의 이동 선택지 확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거대 도시 서울의 대중교통 환경을 알고도 위와 같은 도입 배경을 밝히고 있는 용감함(?)에 경의를 표할 정도다. 만약 서울 시장이 남산타워를 보완하는 거대 타워를 인왕산에 건설하겠다고 밝히고 대학입시에 고생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합격 기원 탑을 세워 수험생들의 고통도 완화하고 남산타워의 혼잡도도 줄이면서 새로운 관광인프라로서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면 그 시장은 어떤 평가를 받겠는가?
세상 모든 면들이 그렇듯이 도시도 역사가 있다. 그 발자취 속에는 지형적, 기후적 환경의 영향과 국가나 시의 재정 능력, 사회적 성숙도나 시민의식 같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정치적 조건, 산업환경, 상업적 요소들에 의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숨 쉬는 공간이 도시다. 도시 교통도 예외가 아니다. 한강이 교통인프라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면 우리는 진즉에 방콕 짜오프라야 강의 수상버스들처럼 한강을 달리는 배들을 봤을 것이다.
추정 가능한 의심은 이렇다.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한 시장이 임기 내 눈에 보이는 치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한강버스이다. 이미 한강 르네상스 사업 경험으로 인해 한강 연관 사업에 대한 미련과 자신감은 있던 차였다. 그런데 명분이 필요하다. 한강에 배를 띄운다면 단순한 유람선 수준이 아니라 무엇인가 공익적 필요가 요청된다. 하여 시가 운행하게 될 한강버스는 현재의 교통지옥을 완화해주는 대안 또는 대체 교통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든 말든 포장지는 그럴듯해야하니까. 시가 이렇게 발표를 하다 보니 추진 주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도입 배경을 진실한 신념으로 삼게 되고 현상과 데이터들은 이 신념 사업을 위해 왜곡된다. 힘을 가진 리더의 거스를 수 없는 제안 – 추종자들의 백업과 보완 – 상징 체계의 형성 – 외연화라는 신흥종교의 사업방식과 유사한 흐름이 생성된다.

평일 아침 서울에는 출근이라는 유일한 목적 아래 거대한 인파의 소용돌이가 형성된다. 출근시간 서울 지하철 10량 한 편성에는 2천명이 넘는 승객이 탑승한다. 시민들은 2-3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알루미늄 박스 안으로 몸을 밀어넣는다. 내가 이용하는 지하철에서는 발을 들여놓을 틈조차 없어 다음 열차를 기약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수천 명을 한곳으로 몰아넣는 이 기이한 힘은 출근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가진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가 발현된 현장이다. 서울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은 생동하는 거대 도시의 실체를 증명하는 곳이다.
출퇴근은, 특히 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출근은 정형화된 루틴이다. 시민들은 집-도보-지하철 또는 버스 정류장 – 도보 – 목적지라는 행로를 설정하고 최적화된 메인 루틴과 비상시 대체할 수 있는 대안 몇 개를 내재한 채 이동에 나선다. 경제든 출근이든 가장 위험한 것은 불확실성이다. 내가 설정한 루틴이 수시로 붕괴한다면 그 루틴을 더는 차용하지 않게 된다. 일상적 신뢰성이란 측면에서 지하철과 버스는 대체 불가능한 수단이며 덕분에 시민들은 출근 전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폭우나 결빙 등으로 운행 여부가 일정치 않은 교통수단은 시민들의 선택지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접근성이다. 역세권 집값이 비싼 이유는 바로 이 접근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출퇴근이라는 과업 이행을 위해서는 효율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한강버스의 효율성은 여러 가지 조건으로 인해 확보되기 어렵다. 특히 한강의 경우 강을 따라 시민 생활 환경과 단절된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이동 행로를 보자면 집 – 도보 – 자전거, 자가용, 버스 – 선착장 – 대기시간 – 한강버스 장시간 이동 – 선착장 – 자전거, 버스 – 도보 – 회사로 구성되는데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이 긴 여정을 완수해 낼 배포 큰 시민이 있겠는가?
또 다른 문제는 수송 능력이다. 이용객이 몰려도 문제다. 어쨌든 큰맘 먹고 혼잡한 지하철 출근을 피해 볼 겸 선착장까지 도착했는데 내 앞에서 정원이 차고 다음 배는 1시간 후에 있다면? 한강버스의 정원과 운행시격을 고려하면 2-3분 간격으로 수천 명을 실어나르는 지하철은 물론이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보완하겠다는 시 당국의 발상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대형 프로젝트인 한강버스는 승객정원 194명에 현재 운행 횟수는 편도 7회 왕복 14회고 배차 간격은 1시간~1시간 30분이다. 시 종점 운행시간은 2시간 7분이 걸린다. 물론 앞으로 배도 더 도입하고 운행 횟수도 늘린다고 하지만 한강버스가 정상적인 교통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될 수 없다. 서울지하철 하루 이용객 660만 명 시대에 한강버스로 대체할 혼잡 완화와 시민 편익 증대는 어디에 있을까?
대도시들은 그 도시가 걸어온 역사에 따라 교통수단도 특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도쿄의 경우 철도가 절대적이며 버스는 미미한 보조 교통수단 역할에 그친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하철이 확장됨에 따라 버스는 그 지위를 철도에 양보했지만 현재도 지하철과 나란히 시민들의 주요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상버스가 자리 잡은 대표적인 도시는 방콕이다. 방콕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짜오프라야강에는 시민들을 실은 수상버스가 달린다. 겨울이 없는 나라라 결빙 염려가 없고 시내 교통 혼잡도가 높으며 도시철도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 속에서 방콕 수상버스는 시민들의 발이 되었다. 방콕 수상버스의 선착장은 한강과 달리 시민 생활 인프라와 붙어 있다. 싸톤 선착장에서 내리는 여행자는 걸어서 5분이면 방콕의 도시철도 BTS라인 싸판탁신역에서 전철을 탈 수 있다. 방콕 수상버스는 운행 노선과 급행 여부에 따라 다른 색의 깃발을 달고 있고 배차 간격은 10~30분으로 방콕 시민은 물론 색다른 체험을 하려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교통수단이다. 방콕에서 수상버스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시가 걸어온 오랜 역사 속에 존재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으로서의 한강버스는 서울이란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교통수단이다.
원래 배는 수로로 갈라진 두 육지를 이어주는 역할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한강에는 서울 남과 북을 이어주는 다리가 32개나 되기 때문에 선착장 환승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한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때문에 한강버스는 한강 줄기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운행해야 하는데 한강의 주변 환경이나 수상교통이라는 특성, 이미 잘 정비되어 있는 도시철도와 버스시스템이 존재하는 서울의 조건상 교통수단으로서의 효용성을 발휘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일부에서는 초기 운행 단계이지만 탑승률이 80%나 되고 있다며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서울시나 한강버스측에서 밝힌 도입 배경을 따져보면 의미 없는 수치이다. 설사 탑승률이 100%가 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의 교통분담률로 볼 때 한강버스 탑승 인원이 유의미하게 작용할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강버스를 탑승해 본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수상버스를 이용할 의사를 갖게 될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K문화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한국의 시민들에게 서울의 이색 탈거리 개념으로 접근했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시가 관광용 수상버스 사업에 세금을 쏟아부어 추진한다고 했을 때 시민들을 납득시킬 자신감이 없었을 것이다. 이때 “출퇴근용 수상버스”는 사업추진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창한 알리바이로 손색이 없다. 현실이 어떻든 출퇴근 지옥길을 고민한 시장이 시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로 포장하기에 딱 좋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중에 마을버스 회사들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환승할인제도에서 탈퇴하겠다고 하고 있다. 수상버스 탑승 인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서민들이 대중교통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다. 경영난 탓 늘어난 마을버스 배차 간격으로 인해 폭염과 추위 속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모습을 서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녕 서민들을 위한 시장, 시민들을 위한 시정을 바라는 것은 사치인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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