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완전한 탈종교를 한 상태로 심리상담을 하다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모태 신앙인'으로 30년 넘게 살며 성실히 종교 활동을 했던 이유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부모와 싸우기에 자녀라는 지위가 너무 약해서'였다는 것이다. 쉬고 싶은 일요일에도 교회에 가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세계관을 철석같이 믿는 척, 심취하듯 연기하는 것까지. 돌이켜보면 모두 일종의 학대였다. 겨우 독립해서 지낼 수 있는 자취방을 구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
청소년기 다녔던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노방전도'라는 것을 나갔다. 공원이나 주택가 근처 놀이터 등에서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하여 교인들이 다 같이 찬송가를 부르고 큰 소리로 통성 기도 같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교회에서 그런 식의 거리 활동을 하는 것에 어떤 공권력의 규제도 없었다는 것이 놀랍다. 한국에서 집회, 시위를 하는 것이 종교의 거리 활동보다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회, 시위는 신고제로 관할 경찰서에 반드시 신고 후 진행돼야 하고 특정 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발생해서 안 되는 등 법의 규제 아래 통제된다. 반면 종교 활동은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명분 때문에 법적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광화문, 종로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서 수상하리만큼 성능이 좋은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귀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때려 넣는 이들이 있는 이유다.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 단체에 주어지는 혜택은 비단 규제 없이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껏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납세의 의무도 다른 노동자에 비해 비할 수 없이 느슨하다. 2021년 기준 종교인들의 실효세율은 0.7%로 일반 노동자가 6.5%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종교활동비 등의 소득은 비과세로 처리된다.
일부 종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긴 하나 전체 종교인 중 실제 과세 비율은 20% 내외다. 최저임금을 겨우 버는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조차 종교인들에게는 강제성이 없다 해도 무방하다.

특혜의 역사는 이승만의 '기독교입국론'부터 이명박 정부 기독교인 인사 대거 기용 등 기독교 편향 정책까지 이어질 정도로 길다. 한국 사회는 '정책적'으로 종교 특히 개신교가 다방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해왔다. 이런 기반이 한국에 50명이 넘는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교주가 있는 '재림 예수 최다 보유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각종 부패와 폭력 사건으로 언론에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 통일교, JMS, 신천지등이 모두 개신교를 뿌리로 두고 만들어진 교단이다.
이들의 활개로 발생한 폐해가 끝도 없다. 개신교에 입문한 개인들이 교단으로부터 재산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성폭력에도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국민저항권"을 운운해 서부지법 폭도들을 부추긴 전광훈 목사는 설교 중 '교회는 목사가 가스라이팅하는 곳'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을 두고 시인이라고 해야 할까, 고백이라고 해야 할까.
그뿐 아니다. '일부' 개신교인들의 욕망은 개인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에 개입한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통일교는 권성동 의원에게 1억 원의 정치자금을 송금하고 김건희에게 고가의 가방을 선물하며 윤석열 정부와 통일교 간의 정교유착 국정농단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23일 구속된 통일교의 한학자 총리 평소 통일교 교리에 맞는 '천주평화통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하며 일본 자민당, 미국 공화당을 후원했다. 국내에서도 통일교와 우호적 관계를 맺을 정치인을 물색했고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 힘 후보 공천에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정치와 종교의 통합을 꿈꾼 것이다.
용산에서 V0로 일컬어졌다는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 역시 각종 잡다한 샤머니즘적 주술 행위는 물론 통일교 등 다양한 종교와 유착관계를 맺어온 것을 이제 국민 중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이렇듯 한국 사회를 휘어잡으려는 일부 '종교'의 욕망을 접할 때마다 현기증이 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종교'가 관여된 것일까. 문득 새삼스럽게 달력을 보게 된다. 올해는 분명 2025년이 맞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세상만사 모든 것이 '신의 뜻'으로 정해진다고 믿었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일면 사람들은 신의 심기를 살피며 제사를 지냈다. 지금은 기상에 큰 이변이 생겨도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타격받아도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하늘의 뜻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과거 종교가 지배했던 논리는 끝났고 종교의 시대는 사실상 이미 끝난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이젠 과연 일부인지 의심이 되지만) 종교인들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그들은 개인들의 삶을 심리적으로 지배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통제하려고 하고 그 수준에서 넘어서 한국 사회 곳곳을 종교의 이름으로 망치려 한다. 종교가 정치와 사회 전반을 다스리는 중세 시대로 되돌리려든 듯 보인다.
매년 퀴어퍼레이드를 가면 지독한 혐오의 말들로 무장한 채 따라붙는 사람들은 일부 개신교에서 조직한 '혐오세력'이다. 또한 성별, 장애, 성적지향, 출신국가, 나이 등 21개 사유로부터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새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연기된 이유 역시 종교인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다. 이제는 사라진 '낙태죄'가 끝까지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천주교 세력이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비교적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교분리'가 흐려진다면,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들은 후퇴될 수밖에 없다. 사실 종교의 자유란 놀라운 합의 속에 탄생된 개념이다. '종교'의 이름으로는 그 무엇을 믿어도, 그 어떤 행위를 해도 다 용인되는 것이다. 당장 비종교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교 교리, 종교 의식 등도 모두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종교와 정치는 확실히 분리되어야 한다. 정치는 종교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합리성과 이성'에 근간을 둔다. 무엇을 하든 마음대로인 종교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시종일관 합리적인 추론 과정과 토론을 필요로 한다. 정치가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가 윤리이고 이것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자연의 상태'가 아니라 약자들의 권리가 존중받는 '문명사회'에 기반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제 초중고 의무교육에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기본부터 교육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기후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어린이, 청소년 등 다음 세대의 삶이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권리가 일부 '종교' 때문에 박탈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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