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인질로 잡힌 '전북'…"국가예산에 '새만금' 분리, '페이스 메이커' 역할 하자"

새만금 예산 별도 관리론 재부상

정부의 '2026년 예산안'에 새만금 관련 예산이 1조원을 넘어서며 전북의 '국가예산 확보' 목록에서 새만금사업을 분리해 정부차원에서 책임지고 추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란 여론이 재부상하고 있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5일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 새만금사업 31건에 관련 예산 1조455억원이 반영됐다"며 "당초 부처안 7429억원보다 3026억원이 늘어난 규모"라고 발표했다. 정부안 반영률 역시 전년도의 99.4%에서 올해 140.7%로 크게 상승했다는 부연 설명이다.

앞서 새만금개발청은 이달 1일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등 9개 부처가 편성한 새만금지역 전체 내년도 예산안은 1조649억원으로 올해(7963억원)보다 2686억원, 33.7%가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힌 바 있다.

▲1991년 11월 첫 삽을 뜬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의 지나온 세월은 각종 논란과 시비와 굴곡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요동치는 곡절의 굽이굽이마다 발주처인 정부보다 오히려 전북도민들의 애가 타 속이 숯덩이였다. ⓒ새만금개발청

전북자치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집계한 최종 예산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한 해 새만금예산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을 계기로 "이제 본연의 업무대로 정부가 '새만금 메이커'인 만큼 전북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종 논란과 굴곡의 새만금 예산

1991년 11월 첫 삽을 뜬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의 지나온 세월은 각종 논란과 시비와 굴곡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요동치는 곡절의 굽이굽이마다 발주처인 정부보다 오히려 전북도민들의 애가 타 속이 숯덩이였다.

내부 개발예산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부 부처에서, 혹은 국회 심의 단계에서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를 거듭해왔다. 차라리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는 기후가 온난했던 간빙기(間氷期)라도 있었지만 새만금예산은 유독 '빙기(氷期)’의 연속이었다.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 등 3개 시·군의 앞바다를 메워 409㎢의 광활한 땅을 만드는 대역사의 총사업비는 22조7900억 원이었다. 이 중에서 국비가 53%인 12조1400억 원이었고 나머지는 지방비 9500억 원에 대부분 민자(9조7000억 원)로 충당하는 게 기본 골격이다.

최종 목표 완공연도가 2050년인 등 수십 년에 걸친 장기 국책사업이다 보니 정부의 투자는 '쥐꼬리의 연속'이었다.

1991년부터 2010년까지 방조제 공사에 2조9000억원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수질개선 1단계 사업에 1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등 사업 착공 이후 20년 동안 6조8000억원의 '찔끔 투자'에 만족했다.

전북도민들은 애를 태우며 신속 추진을 위한 예산반영을 주창했지만 지역의 목소리가 커갈수록 다른 지역의 보이지 않는 견제도 심해지는 '새만금 역설'을 낳았다.

역대 정부의 대선공약 단골메뉴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새만금이 개발 초기 20년 동안 매년 평균 3400억원 정도만 국가예산을 확보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예산의 진폭이 심하다보니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전북예산의 아킬레스건은 새만금이다. 새만금을 누르면 전북이 화들짝 놀란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전북이 새만금의 인질로 잡힌 셈이다.

노심초사 덕분에 2010년대 전반기의 새만금 한 해 평균 예산은 6500억원 수준으로 올라갔고 이후 수질 개선과 SOC 등을 총괄한 새만금 전체 예산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처음으로 1조원대에 진입했다.

수질개선비 등을 뺀 주요 SOC 예산만 놓고 봐도 2020년 4594억원에서 2022년에는 5677억원으로 치솟았고 2023년에는 5173억원을 유지하는 등 4년 평균 5027억원을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도당위원장과 이원택 국회의원이 2023년 12월 국회에서 새만금 예산 전액 복원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병도 의원 페북 캡처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새만금은 역대 최악의 시련기를 맞는다.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대 회의 파행이후 각 부처 요구액(6626억원)의 78%를 삭감한 채 1479억원만 '2024년 정부예산안'에 반영한 것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3000억원이 복원됐지만 새만금 SOC 예산이 정치적으로 휘둘린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새만금을 떼어내야 전북이 산다"

전북은 해마다 새만금 예산의 고통을 숙명처럼 머리에 이고 살아왔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노여움과 슬픔이 훨씬 더 큰 바다가 되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전북이 왜 이런 새만금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고 2014년 7월부터 시작한 송하진 도정 때에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전북 예산에서 새만금 예산을 제외하고 예산확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처음 꺼내기도 했다.

새만금을 떼어내야 전북이 산다는 말도 이때 확산했다. "새만금은 전북이 짊어질 멍에가 아니라 정부의 국책사업인 만큼 국가에 맡겨두자"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떻게 하든 새만금이라도 껴안고 낙후 꼬리표를 떼야 한다"는 절박함에 밀려 허공의 바람처럼 유야무야 사라졌다.

'전북-새만금 예산분리론'이 다시 소환된 때는 잼버리 파행이후 새만금예산이 최악의 쓰나미에 휘말린 2023년 10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전북 연고 국회의원·전북 예산정책협의회 자리였다.

▲'전북-새만금 예산분리론'이 다시 소환된 때는 잼버리 파행이후 새만금예산이 최악의 쓰나미에 휘말린 2023년 10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전북 연고 국회의원·전북 예산정책협의회 자리였다. ⓒ전북자치도

김성주 전 의원(전주병)은 당시 "그간 우리는 새만금 예산을 우리 지역 예산으로 분류해 왔는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이것을 국책사업인 만큼 국가예산, 정책예산으로 분류하겠다"며 "올해부터 이것은 지역예산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주시고 새로운 미래산업을 위한 예산이기 때문에 반드시 복원해야 된다. 이러한 논리로 접근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원택 의원도 "이제 대응전략을 좀 (전북예산과 국가예산으로) 분리해서 대응하는 게 맞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전북예산은 예산대로 또 새만금예산은 예산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언급했다.

새만금 예산을 '전북 예산'에 포함한 것은 다분히 두 가지 성격이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만큼 땅을 갖고 있는 전북이 앞장서 신경을 써야 정부도 더 많은 예산을 반영할 것 아니겠느냐는 '현안 껴안기' 차원과 매년 국가예산 확보액을 늘려야 하는 '현실 강박론'이 그것이다.

전년 대비 당해 연도의 예산 증가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전북도 입장에서 어느 한순간에 새만금 예산을 빼면 전체 국가예산 확보액이 크게 흔들리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강박이 오늘까지 이른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한 문제 역시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새만금예산은 단 한푼도 전북자치도가 쓸 수 없는 정부예산임에도 전북 목록에 반영해 전북도의 국가예산 확보액을 부풀리는 '착시현상'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착시현상에 예산 빼먹는 지자체 오명까지"

'2026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된 전북도의 국가예산은 9조4500억원인데 이는 충북(9조5000억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새만금 국가산단 1공구의 모습 ⓒ새만금개발청

통계청의 시도별 실질 지역총생산(GRDP)을 비교해 볼때 충북은 73조6297억원에 달하는 반면에 전북은 51조6784억원에 만족하는 등 큰 격차를 보이지만 양 지역의 국가예산은 거의 똑같은 셈이다.

만약 내년도 예산만 1조원에 달하는 새만금사업 예산을 전북 국가예산에서 뺀다면 '착시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 문제는 '예산 빼먹고 싸움만 하는 지자체'라는 오명이다.

새만금예산은 주로 SOC 예산이 차지하고 대부분 1군 건설업체 잔치로 전락하고 있음에도 전북이 예산을 빼먹기 위해 집착에 가까운 집념을 보이는 것으로 폄훼되기도 한다.

잼버리 대회 파행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북 책임론'을 거론하며 "예산만 빼먹으려 엉뚱한 곳에서 잼버리 대회를 추진하는 꿍꿍이가 있는 지자체"라며 대거 공격에 나선 바 있다. 전북이 경제규모에 맞지 않게 많은 국가예산을 가져간다는 '착시현상'이 낳은 또 다른 문제이다.

앞으로 새만금예산이 늘어날수록 다른 지자체의 돌직구와 견제는 더욱 심할 수 있어 '국가예산의 덩치'만 키운 전북은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클 수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관할권을 둘러싼 전북 기초단체간 사활을 건 분쟁도 밖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내전(內戰)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역개발 전문가들은 "이제 전북이 새만금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만금 땅은 누가 가져갈 수 없는 전북 서해안의 땅이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세계적인 기업들로 꽉 찬 글로벌 기회의 땅이 될 것인 만큼 정부에 맡겨두고 전북자치도가 해야 할 일만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새만금에 기울인 정성과 노력을 다른 신성장동력 창출에 쏟아붓고 새만금사업은 정부차원에서 환경친화적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적극 주장하고 차분히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부의 비일관성이 '새만금의 비극'을 연장시켰다"며 "이재명 정부의 새만금 의지는 일관적이고 강력한 만큼 정부를 믿고 전북은 미래를 위한 발전구상과 기업유치에 필요한 규제완화 등을 강하게 건의하고 완공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