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살공화국' 한국에서 다시 읽는 뒤르케임

[프레시안 books] 김명희 <다시 쓰는 자살론>

'자살공화국'에서의 자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사회는 자살을 개인의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귀속시켜 왔다. 김명희 교수의 신간 <다시 쓰는 자살론>(그린비)은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저자는 자살을 개인의 병리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사실로 되짚으며, 한국 사회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유를 구조적 차원에서 묻는다.

<다시 쓰는 자살론>은 에밀 뒤르케임의 <자살론>을 오늘의 한국에 다시 호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왜 다시 뒤르케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뒤르케임이 제시했던 자살 유형 중 특히 '숙명론적 자살' 개념을 복원해, 권위적 억압과 통제 속에서 발생하는 죽음을 설명하는 데 주목한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재해석을 넘어, 한국 사회의 자살 현실을 읽어낼 정치적 창을 제공한다.

자살문제는 한국 사회가 매일 소리 없이 치르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참사이자 사회적 재난이다. 특히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일정한 집단군의 자사행렬 - 청소년들의 자살, 노인들의 자살,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자살, '가족동반자살', '과로자살', 및 간호사 '태움' 자살, 초등교사들의 연쇄자살, 집배원들의 자살 등- 은 우리 사회가 처한 재생산의 위기와 '삶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며, 자살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야 된다는 담론을 확대시키고 있다. 즉 한국 사회 자살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각 집단의 자살률 추이와 양적 변화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이론적 진단과 과학적 설명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8p)

책은 총 3부 9장으로 구성된다. 1부는 한국 자살예방정책의 의료화 과정을 짚으며, 자살이 어떻게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있는지 분석한다. 2부는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을 호명하며 정치적 맥락과 자살을 연결한다. 5·18 희생자의 죽음, 탈북민 자살을 한국사회의 사회적 맥락으로 설명한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초등교사들의 죽음에 대한 제도적 문화기술지적 분석은 직업집단의 구조적 조건이 자살을 촉발하는 방식까지 드러낸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에 관한 장이다. 저자는 재난으로 인한 직접적 사망뿐 아니라, 이후의 사회적 고립과 낙인, 제도적 부재 속에서 이어진 자살까지 재난의 연속적 과정으로 본다. 자살을 한 개인의 선택으로 분리하지 않고, 사회적·제도적 장치 안에서 발생하는 연쇄적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159번째 희생자의 자살을 '치료받지 않아서'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는 의료적 프레임이 159번째 희생자의 자살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살에 개입하는 사회적 조건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재난 참사 생존자가 인권침해를 경험한 피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이러한 맥락에서 159번째 희생자의 자살은 이태원 참사의 발생 국면만이 아니라, 참사 이후 피해자의 존엄과 애도할 권리를 중층적으로 박탈하는 연쇄적인 인권침해 과정에서 발현된 '복합 피해'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159번째 희생자의 자살은 트라우마로 인한 자살의 성격을 띠며 탈진실정치의 아노미적 조건에서 발현된 숙명론적 자살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377p)

저자는 한국 사회의 자살 정책이 의료화된 담론에 갇혀 있는 '공허함'을 강하게 비판한다. 정부는 자살예방 정책을 주로 정신건강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며, 사회 구조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그러나 자살은 단지 뇌과학적 이상이나 개인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고통의 총체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돌봄 체계와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노동·교육·복지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자살은 본디 연대의 문제이며, 연대 역시 인간존재의 관계적 차원을 질문하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 경제적 양극화, 신자유주의적 경쟁, 권위주의적 통치, 젠더·세대·지역 불평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실패한 개인을 사회가 구조하지 않고 방치하는 분위기가 자살을 가속화한다. 저자는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책은 여기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교사들이 서이초 사건 이후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 참사 피해자들이 고통을 공유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과정은 뒤르케임이 말한 '직업집단 연대'의 현대적 사례다. 저자는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곧 사회정의"이며, 불평등과 배제를 넘어 모두의 존엄이 보장되는 '좋은 사회'의 조건을 재설계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의 자살문제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의 문제를 궁극적인 성찰의 과제로 제기한다. 사랑, 돎봄, 연대활동의 불평등은 정서적 불평등의 한 차원이며, 그 수혜에서의 불평등은 다른 차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 돌봄은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경청을 함축하며, 이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응답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돌봄은 구조적 부정의에 공모하는 제도와 과정을 바꾸는 과정에 연대하고 행동하는 집합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함께 돌봄'에 해당한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 즉 돌봄의 생명정치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것이 바로 통치를 넘어서는 제도 정립적 생명정치가 열어야 할 전망일 것이다.(530p)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7일 오후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 예방을 위한 메시지가 적혀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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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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