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다녀야 해" 이딴 말만 하고 있을 것인가

[오찬호의 틈새] 노란봉투법은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반성문

"아니꼬우면 관둬라"

2000년대를 맞이한 캠퍼스에는 대학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알리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다. 공통적인 현상은 외주화였다.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소속이 달라진 것만이 아니었다. 비정규직이 됐고, 급여는 팍 줄었다. 호봉은 의미가 없어졌고, 당시 형편없는 수준이었던 최저임금에 급여가 맞춰지지 시작했다. 여기서 수수료라면서 또 돈이 빠졌다. 게다가 열 명이 책임 지던 건물에 심하면 다섯 명이 배정되기도 했으니 일의 총량은 두 배가 됐다. 노동자들은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학교는 언제나 "외주업체 소관"이라면서 선을 그었다.

10여 년이 지난 2010년 전후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당시 대졸자의 초봉이 3600(최상), 3000(상), 2400(중), 2000(중하), 1800(하)으로 구분되던 시절이었다. 이때, 청소노동자의 연봉은 10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월급이 80만 원대 초반이란 뜻이다. 인상을 요구한들, 대학은 묵묵부답이다. 자존심 다 버리고 식대만이라도 몇 백원 올려 달라고 간청한들, 역시나 돌아오는 건 무시다.

학생식당에서 한 끼 먹을 돈도 못 받으니, 그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와 화장실 옆 청소 도구함 보관실에서 밥을 먹었다.(화장실 안에서도 먹었다.)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휴게공간? 그런 건 없었다. 대학은 "근로자의 처우 문제는 외주업체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단체교섭은 언감생심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없이는 이 사태를 해결한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노조를 만들려고 하거나, 만들었거나, 만들고 민주노총 어디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그럴 시늉만 해도 이들은 하루아침에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이게 말이 되냐면서 단체행동을 한다. 파업도 하고 연대 투쟁도 한다. 대부분이, 육십 평생 시위 한번 안 해본 사람들이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단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모욕감을 느껴서다. 그 일이 고된 걸 알기에 참을 순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주제에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라는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 꿈틀거린다.

투쟁은 순항하지 못했다. 대학은 단체교섭도 없이 이루어지는 단체행동은 명백한 불법파업이라는 입장을 흘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 교수들은 학생을 볼모로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을 강의시간에 내뱉는다. 덩달아 학생들도 의견이랍시고 억울하면 공부해서 다른 일을 하라는 따위의 무례한 말을 드러낸다.

연대는 외부세력의 난입으로 해석되곤 했다. 대자보에서 노동자를 조롱하는 낙서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때 본 한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니꼬우면 관둬라."

그렇게 위험의 외주화란 말이 무섭게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대학 밖은 더 심했다. 속도는 빨랐고 강도는 거칠었다. 뉴스에서는 "사망자는 하청업체 직원이었습니다"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렇다만 교섭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단체행동을 하면 기업은 수십 명 변호사를 동원해 판사로부터 불법 파업이라는 확인을 받아내고 막대한 손해배상을 사람에게 청구한다. 죽으라는 거였다. 실제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지어 노동자 다섯 명에서 470억 원을 물어내라고 소송을 거는 기업도 있었다. 이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까불지 말라'고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 소송 당사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조선소에서 20년 동안 용접을 했거든요. 그리고 한 달에 250만 원 정도 되는 월급을 받고 있어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 숨진 재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충현 씨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엄수된 뒤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와 유족들이 김씨가 일하던 한전KPS 태안사업처를 행진하고 있다. 김충현 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께 태안화력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작업을 하다 공작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연합뉴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다녀야 해" 이딴 말만 하고 있을 것인가

노란봉투가 등장했다. 누군가가 47억 소송이 웬 말이냐면서, 4만7000원을 넣은 노란봉투를 언론사에 보냈다. 노란봉투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죽음에 대한 반성문이다. 죽음을 막으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만 했다. 하나는 경고성 손해배상 청구를 분명하게 금지하는 것, 하나는 노동자가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분명히 응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사용자 정의를 근로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이제, 하청도 원청과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이게 그렇게 큰일 날 일인 걸까.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에게 권리가 어딨냐는 사회풍토에 대한 반성문인데, 여기저기서 그 권리가 생기면 현장은 엉망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 권리가 없었을 때의 현장, 그러니까 사람이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현장은 엉망이 아니었나 보다.

비용 걱정에 사람이 죽으니 노란봉투법이 생긴건데, 사람 죽이지 않는 절차를 만드는 게 비용이면 여전히 누구는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와 교섭을 하는 게 걱정이라면 지금처럼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될 거다. 어찌하면 노동자들이 교섭을 요구하지 않을지를 고민하면, 교섭할 걱정도 줄어들 거다.

이 글을 꼭 써야겠다고 다짐을 한 계기는 청년이라는 이들의 노란봉투법 반대 기자회견이었다. 제2의 '인국공 사태'가 발생 할 거라는 MZ 노조의 대표라는 사람의 인터뷰도 이유였다. 교섭이 많아지면 원청은 그 일만 한다고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거다는 따위의 말은 들어줄 수 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걸 어찌 막을 수 있다 말인가.

하지만 뉘앙스가 너무 무례하다. 어찌 감히 하청업체 노동자들 주제에 교섭을 원하냐는 투다. 청년들이 분노한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교섭이 열심히 공부한 원청 정규직의 특권이라도 된다 말인가. 왜 하청 노동자들은 요구하면 안 되는가? 왜 부당함에 항의하면 안 되는가? 심지어 자신의 안전에 관한 문제인데, 왜 말하지 못하는가? 그게 인간이란 말인가? 헌법이 보장한 권리가 원청이냐 하청이냐에 따라 차등 부여되는 거라면, 세상에 남는 말은 "열심히 공부해서 하청업체에는 가지 말자"가 전부일 거다. 그걸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앞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면 노동자들의 파업이 흔해질 거라면서 빈정거리는 모습도 흔하다. 가슴이 아프다. 평소 이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도대체 어떻게 보았단 말인가.

어떤 노동자들도 신나서 파업을 하지 않는다. 파업은 다들 피하고 싶은 마지막 수단이다. 노동자들은 그냥 일하고 싶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이 단순한 일상의 반복 덕택으로 누군가를 부양할 수 있다는 보람을 원할 뿐이다.

그건 무사히 집에 돌아와야지만, 그리고 최소한 굽신거리며 생활하지 않을 수 있는 급여를 받아야지만 가능하다. 이를 보장해 달라는 거다. 파업을 해서라도 자신과 가족에게 떳떳하고 싶은 거다. 그러지 않고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파업하지 않을 거다.

설마 '공부해서 다른 직장 찾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누군가는 늘 죽을 것이고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는 말 따위가 명언이랍시고 계속 부유할 거다. 그 악순환에 대한 반성문이다. 노란봉투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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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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