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의 싸움' 몰린 전세사기 여파…이제 투기자본 들어오나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임대인 '낙인'으론 중저가 임대주택시장 문제 해결 못한다

서민주거지의 조속한 주거안정방안 마련을 위하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주최한 임대인 간담회에 비아파트 임대인 수십 명이 찾아왔다. 간담회에서 이들은 수년간의 전세사기 광풍속에서 버티고 버텨오다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임대인 A씨는 다가구주택 3채, 20여개 호를 갖고 있다고 했다. 임대인은 2019년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던 시절, 그간 건축일로 모아놓은 종잣돈으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집을 한 채 지어 갖고 있을 요량이었다. 건축비가 부족해서 대출을 받았는데, 다 지어놓고 월세를 내놓았지만 월세는 나가지 않았다. 부동산에서는 전세로 내놓으면 금방 나간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부동산은 20여개 호에 전세임차인을 금세 채워주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청년 임차인을 대상으로 선순위근저당이 있는 주택에도 저리의 전세대출을 쉽게 해줬다. 집값 상승기에 임차인, 부동산중개업소, 대출브로커 모두가 환호하는 상품이 전세였다.

결국 A씨는 임차인으로부터 '빌린' 전세보증금으로 집을 한 채, 한 채씩 더 지어나갔다. 어느새 다가구주택 3채를 소유하게 됐다. 그러나 곧 전세사기가 큰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세 수요가 뚝 떨어져 임차인 퇴거 시점이 되어도 후속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처음 몇집은 모아놓은 돈으로 보증금 일부를 상환하거나, 카드론이나 사채를 끌어와서 조금씩 사정해가며 돌려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십명에 이르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차인들은 계약만료가 될 때마다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임차인들로부터 경찰에 고소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기꾼 아니냐는 막말과 고성을 감내하고,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통사정을 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경찰서 문턱에도 가본적 없던 평범한 사람이 경찰서에 범죄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과도한 투자욕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라는걸 깨닫고 후회가 많았다. 고액의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주택인데도, 수억 원의 전세를 주고 들어간 임차인들 또한 적은 돈으로 더 좋은 집을 얻고싶은 욕심과 무지로 전세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최우선변제대상이 되지 못하고 후순위로 밀려난 임차인은 수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배당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남은 것은 파산이었다.

전세 사기 사태가 사회 문제가 된 당시, 임대인 중 일부는 사기꾼이었겠으나 상당수는 그간 경찰서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수천만원정도의 적은 여유자금으로 투자가 가능했기에 임차인과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이 임대인이 되어 뛰어든 주택시장, 바로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이 중심인 비아파트 시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전세사기의 또다른 피해자 임대인, 초토화되고 있는 중저가주택 임대차시장

서민들을 3억 미만 소형주택 투자시장으로 이끈 요인은 누가뭐래도 전세자금대출과 정부의 전세보증이다. 서민들의 보금자리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비아파트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전세시장에 전세대출 형태로 돈이 풀리자, 위험천만한 전세대출이 마치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정책인양 포장됐다. 손쉽게 깨끗한 새 집에 전세대출이 되는데다가 대출이자가 월세보다 훨씬 저렴하니 임차인들은 대출을 받아 전세를 얻었고, 이 전세금은 또다른 서민들을 갭투자시장으로 유인했다. 금융기관은 임차인에게 빚(전세대출)을 내주면서 빚(전세)을 끼고 상품을 팔았다. 임차인의 빚(전세대출)을 정부가 보증까지해주니, 은행은 마음놓고 전세대출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올렸다. 전세 폭탄이 터지자 이 손실은 은행이 아니라 HUG 등으로 넘어갔다. 전세보증 정책이 위험을 증폭시키면서, 비아파트 임대차시장의 시장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시장이 무너지자 일부 사기꾼을 제외한 임대인도, 젊은 임차인도 고통의 늪에 빠졌다. 임차인과 임대인의 고통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임대인의 고통은 중저가 비아파트 임대차시장의 주거생태계를 파괴하여 임차인의 고통으로 전가됐다. 이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세사기특별법상 임대차계약 만료일에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임차인들은 임대인에 대한 '수사개시, 기망, 보증금반환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임대인이 사기꾼이어야 임차인은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보증금미반환사고시 임대인 고소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의 광고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차인들은 어떻게든 임대인을 사기꾼으로 만들어야만하는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 모두가 우리의 이웃 서민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25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실태 조사 결과 및 피해자지원 현황 보고에 따르면 피해자의 75%는 2030청년층이며, 보증금 규모는 3억 원 이하가 97%다. 특히 2억 원 이하 주택이 84%, 2억 이상 3억 원 이하 주택이 13%이므로 소규모주택들이 주로 피해를 보고 있다.

본래 매맷가 3억미만 중저가 서민주택인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다가구주택은 소유욕구가 낮은 주택이다. 대부분 서민들인 중저가주택 임대인들은 현금흐름이 없는 중장년층들이다. 이들은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중저가 주택 시장에 투자했다. 연금제도가 불충분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민간임대주택은 노령층의 연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해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전세제도와 함께 중장년층의 자가인건비를 포함한 저렴한 관리비용은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한 한국 현실에서 그간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민간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이제 비아파트 중저가 주택시장 생태계가 모두 파괴된 이러 상태에서 누가 이 시장에 다시 들어와서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할 것인가.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및 빌라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이제 투기자본에 중저가 주택시장 넘길건가

전세 사기 사태가 지나간 자리, 정부는 서민 임대인의 자리를 기업 자본으로 메우려 한다. 윤석열 정부 당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월 17일 전세 사기 위험이 큰 이유는 주택임대 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해서라며 기업형 임대주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우리 이웃의 임대인 상당수에게 '사기꾼' 낙인을 찍고 그 자리를 기업으로 대체하겠다는 주장이다.

현 여당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염태영 의원 또한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부동산 투자회사(리츠)가 100가구 이상 민간임대주택을 운영할수 있도록 하며, 임대료 상승제한 규제를 풀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전세제도에 대한 불신과 혐오, 임대인들을 향한 사기꾼 프레임을 등에 업고 고통받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앞세워서 여야가 합심하여 저가 민간임대시장을 개인이 아닌 투기자본과 기업에 넘겨주려는 것이다.

이미 외국계 자본의 국내 임대주택 시장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강동구, 금천구, 성북구 등에서 임대주택을 매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KKR, ICG, 하인즈(Hines), SC로위, 이지스자산운용, 골드만삭스 등과 같은 외국계 기업과 투자회사들이 속속 임대주택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지난해 11월 14일 발표한 '부동산 PF제도 개선방안'에서 은행, 보험사의 장기임대주택사업 참여와 장기임대주택사업 활성화를 위해 금융회사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은행, 보험법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외국계 회사뿐만 아니라 은행, 보험사도 장기임대주택사업을 영위하도록 하겠다는 소리다.

기업이 민간임대인이 되면 전세 사기가 사라지고 좋은 일만 있을까. 해외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고도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업 속성상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영국에서는 기업형 임대주택의 높은 임대료 상승률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미국에서도 기업형 임대주택이 임대료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대규모 임대주택단지에 투기자본이 집중되면서 공동체 문화를 파괴하고 주거불안정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에서도 최근 들어 기업형 임대주택 공급 증가가 주거 양극화 심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결국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이라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조합을 통해 부동산 시장 폭등기 막대한 이익을 올린 것 은행이었고, HUG는 거액의 손실을 떠안았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중저가 서민주택의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이제 은행과 투기자본이 단순히 전세자금 대출 이자수익을 올리는 걸 넘어 서민을 상대로 직접 임대료 수입을 올리려 한다. 이게 과연 정의로운 대안인가. 투기자본과 금융업이 서민의 고혈을 빠는 수단이 단지 이자수익에서 임대료수입으로 형태만 바뀔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기자회견에서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을 소개하며 사회에 억울한 이를 남기지 않겠노라 했다. 폐허가 된 저가 임대주택 시장을 돌아볼 때다. 대다수 임대인은 사기꾼이 아니라 정부 정책 실패가 낳은 또다른 피해자다. 진정 정부가 서민주거안정에 나서려면 한쪽 당사자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공존과 공생의 수단을 담아 비아파트 서민주거지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이 생태계가 조속히 정상적으로 순환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그 자리를 투기자본이 대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시민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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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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