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번째와 째번’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이 지났다. 아직도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 본다. 필자가 참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에 ‘세계테마 기0’이라는 작품이 있다. 외국 여행 못가는 대신 대리만족을 누리기 위해 즐겨 본다. 내용도 좋은 것이 많아서 구석구석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요르단의 결혼에 관한 내용 중의 일부다.
오늘은 세 번째 아들의 결혼식 날이라 마을이 온통 축제분위기다
라는 자막이 올라 왔다. 전반적으로 위의 내용으로 보면 자칫 아들이 세 번째 결혼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특히 그 나라는 일부다처제도이기 때문에 결혼을 몇 번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면 ‘셋째 아들의 결혼식’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막을 쓰는 사람들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TV 자막을 쓰는 경우는 시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일부러 유행에 따르려 하는 경향이 심하다. 알 수 없는 표기도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과 같은 것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을 표시할 때, 이러한 표기를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놀이문화로 본다. 그렇다고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나는 자연0이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음식 자랑을 하면서 “어때, 맛이 틀리지?”라고 말하면 자막을 쓰는 사람은 “어때, 맛이 다르지?”하고 표기하는 것에서 배워야 한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이 잘못 표현했을지라도, 자막을 표기하는 사람은 바로 잡아서 써주어야 한다. ‘번째와 째번’에 대한 예문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베트남에 세 번째 가는 거야.
오늘은 저기, 셋째 번에 앉은 학생이 읽어 봐요.
위의 예문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 의도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베트남에만 세 번 간 것’을 말한다.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에 간 것은 제외하고 베트남에만 세 번 간 것이다. 그러나 아래의 문장을 보면 의미가 다르다. 앞에 있는 학생 두 명은 제외하고 셋째 번 자리에 앉은 학생만 지목해서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부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다.
도 보자. 보통은 “부아가 나다”라고 표현한다. ‘부아’를 ‘부화’로 표기한 것은 맞춤법을 모르고 평소에 하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부아’는 원래 ‘폐, 허파’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물론 과거 <훈몽자회 상 14>를 보면 ‘부화’라고 표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현재 표준어는 ‘부아’가 맞다. 그러면 ‘부아가 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허파가 커지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화가 나면 숨을 죽 들이 마신다. 화를 참기 위해서 맑은 공기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허파가 커지게 되어 있다. ‘나다’라는 말이 ‘싹이 나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면으로 나오다, 커지다, 자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부아가 나다’는 사실 ‘허파가 커지다’라는 말이고 이것이 변해서 ‘분하고 노여운 마음이 일어나다’로 바뀐 것이다. 예문으로는
태호는 이런 책망을 듣는 족족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와 같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가능하면 맞춤법에 맞게 표기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배우는 것인데, ‘사람들이 다 틀리게 한다’고 교양 프로그램에서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웃음을 주는 방송이 아니기에 더욱 바른 표기법 사용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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