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 2015년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를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노역 사실을 적시하겠다던 약속을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유네스코에서 이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해 논의하려 했지만 위원국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 회의에서는 잠정 의제로 상정됐던 일본 메이지 산업유산과 관련한 '위원회 결정의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 안건을 정식으로 채택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군함도는 메이지 산업 유산에 포함된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 △정보센터 설치와 같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 등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이에 2015, 2018, 2021, 2023년 위원회는 일본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는 위원회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는데, 2023년 채택된 결정문에서 위원회가 일본에 '정식 보고서'가 아니라 '업데이트 보고서'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식 보고서의 경우 위원회의 자동 심의 대상이지만, 업데이트 보고서의 경우 자동 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이 문제를 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는데, 일본은 이 사안을 유네스코 차원이 아닌 한일 양자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이 안건을 제외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 수정안에 한국이 반대하면서 사무국이 결국 표결을 진행했는데, 21개 위원국의 비밀투표 결과 찬성 7, 반대 3, 기권 8, 무효 3표로 일본의 수정안이 채택되면서 '위원회 결정의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는 정식 안건으로 오르지 못했다.
위원국의 다수가 일본의 손을 들어준 배경으로 일본이 한국에 비해 약 3배 정도 많은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 양국 간 사안에 다른 국가들이 관여하는 것이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외교부는 이번 결과와 관련해 "우리 정부 대표단은 의제 채택과 관련 실시된 토의 과정에서 일본이 근대산업시설과 관련하여 스스로 한 약속과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이러한 세계유산위 결정 이행 문제를 위원회가 직접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가 확보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우리 대표단은 위원국들과의 사전협의 과정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채택한 결정의 이행상황을 위원회 차원에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원칙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많은 위원국들은 이러한 원칙에 대해 공감을 표한 바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이번 세계유산위 회의 기간 중 적절한 계기(의제 7 마무리 세션)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결정 이행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정식으로 다시 밝히고자 하며, 앞으로도 양자 및 다자차원에서 일본이 세계유산위의 관련 결정과 스스로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지속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해당 사안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듯 외교부는 "정부는 과거사 현안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 나가면서도, 일측과 상호 신뢰 하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이어나가고자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유네스코에서 해당 사안을 다루기 어려워진 만큼, 향후 일본의 이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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