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종반부로 치달리고 있던 1953년 7월.
국군 제12사단 51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 나선 고(故) 박영순 상병은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지독한 포연 속에 사방의 구분이 안 되는 전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UN군과 북한, 중공군들은 종전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었지만 전장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골육의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고 박영순 상병은 고향인 전북 부안에 그리운 아내와 이제 막 말을 배워 재롱이 늘어가던 아들 종선을 두고 입대를 했다.
이제 얼마 후면 전쟁의 포성이 멎고 평화가 찾아오면 꿈에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달려가리라 다짐하곤 했던 박영순 상병은 치열한 전장에서 맥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고향의 가족들에게는 전사통지서가 전달되었을 뿐, 그로부터 72년간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렇게 묻혀버릴 것 같았던 박영순 상병은 화랑무공훈장에 혼이 담겨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의 품에 안겼다.
전장에서 스러진 박영순 상병은 결국 1953년 1월18일 무공훈장 서훈 대상자로 결정됐다. 한국전쟁 종전협정이 맺어지기 불과 8일 전이었다.
박영순 상병의 훈장은 어수선한 전쟁과 전후 복구의 혼란의 상황에서 잊힌 채로 있다가 국방부와 육군, 지방자치단체가 2019년부터 추진한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의 일환으로 아들 박종선씨와 연락이 닿게 된 것이다.
부친의 훈장을 수령한 자녀 박종선(76)씨는 "아버님의 유산인 훈장을 72년만에 찾을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면서 "국방부와 육군을 비롯해 훈장을 찾아주신 관계자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칼 앞에 몸을 던지신 고 박영순 용사님을 비롯한 모든 참전용사와 전몰군경, 전상군경의 헌신에 감사드린다"면서 "부안군은 앞으로도 보훈가족을 위한 맞춤형 보훈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현충의 정신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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